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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종종 Sep 01. 2023

아무데나, 당신이 원하는 곳으로.<중경삼림>

2023년 9번째 재관람

제목: 중경삼림(重慶森林: Chungking Express)

감독, 작가: 왕가위, 출연: 양조위(경찰 663), 왕페이(페이), 임청하(노랑머리 마약밀매상), 금성무(경찰 223)

줄거리1994년 홍콩, “내 사랑의 유통기한은 만 년으로 하고 싶다” 만우절의 이별 통보가 거짓말이길 바라며 술집을 찾은 경찰 223 고단한 하루를 보내고 술집에 들어온 금발머리의 마약밀매상 "그녀가 떠난 후 이 방의 모든 것들이 슬퍼한다" 여자친구가 남긴 이별 편지를 외면하고 있는 경찰 663 편지 속에 담긴 그의 아파트 열쇠를 손에 쥔 단골집 점원 페이 네 사람이 만들어낸 두 개의 로맨스 새로운 사랑을 만나는 방법에 대한 독특한 상상력


21년도에 처음 만나 지금까지 꾸준히 보고 있는 영화. 왕가위 영화 중 최애로 꼽는다. 아침에 본 탓에 살짝 졸았으나 보고 나서 남는 좋은 감정은 언제나 한결같다. 

#1. 마약 밀매상과 가게에 처음으로 들어오는 여자를 사랑하겠다는 경찰

어쩌면 다음에 소개할 다른 두 주인공들보다 특별하게 다가온다. 경찰223은 유통기한이 '5월 1일'인 통조림만 먹는다. 그날은 여자친구와 헤어진 지 한 달 째 된 날이면서 자신의 생일이기 때문이다. 4월 30일, 그가 돌아오지 않을 것을 자각한 223은 술집에 가 이곳으로 들어오는 첫번째 여자를 좋아하기로 마음 먹는다. 달랑. 선글라스를 끼고 풍성한 금발을 자랑하는 여자가 하나 들어온다. 223은 그의 옆에 앉아 말을 걸지만 귀찮은 기색을 보이는 여자. 그는 마약 밀매를 함께 준비하던 동료(?)들에게 배신을 당하고 술을 마시는 중이었다. 술에 거하게 취한 여자는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다. 그의 곁을 지키던 223은 그를 부축해 호텔방으로 온다. 그가 편히 잠을 잘 수 있게 신발을 벗겨주고, 우걱우걱 통조림을 먹는다. 몇 시간만 있으면 그의 생일. 그는 새 사람으로 태어나기 위해 러닝을 한다. 힘찬 러닝이 끝나고 여자친구와의 추억이 담긴 삐삐를 두고 가려는데..삐리리리~삐리리리~"702호 투숙객 분이 메세지를 남기셨습니다. 생일 축하해요."


#2. 페이와 경찰663

경찰663은 근무 중에 매번 샐러드를 사간다. 또 샐러드냐며 여자친구가 좋아할 피시 앤 칩스도 사가라고 한다. 그러나 663은 이별을 했다. 항로를 틀어버렸다고 한다. 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페이는 그에게 호기심이 생기고 마침내 사랑하기에 이른다. 마침 그의 여자친구가 이별의 편지와 함께 그의 집 키를 두고 갔다. 그가 없는 시간에 그의 집에 가 이런저런 집안일을 해주고, 그가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지나갈 때면 소리도 왁!하고 지른다. 페이의 끝날 것 같지 않던 꿈이 끝나갈 때 즈음, 663도 페이를 사랑하게 된다. 비가 추적추적 오는 저녁, 둘은 '캘리포니아'에서 만나기로 한다. 하지만 둘은 서로 다른 '캘리포니아'를 향해 날아간 뒤였다. 일 년 후, 페이는 승무원이 되어, 663은 샐러드 가게의 주인이 되어 다시 만난다. "어디를 가고 싶죠?" "아무 곳이나. 당신 가기 좋은 곳으로."


223과 마약 밀매상의 사랑은 단시간에 이뤄졌다는 것에서 인상깊었다. 지무가 마약밀매상을 좋아한 지, 좋아하지 않은 건지 알 수 없지만 그가 착한 사람이라는 것은 알았다. 그리고 마약밀매상을 생각하는 마음까지도 진심이라는 것을. 진심은 통한다. 새로운 시작을 당기려던 지무에게 "생일 축하해"라는 말은 얼마나 큰 위로가 된 건지.

663과 페이 부분은 한 장면도 빼지 않고 기억한다. 내가 어찌 이걸 잊나요...페이가 크게 튼 캘리포니아 드림을 휘젓고 유유히 걸어오는 663과 멋대로 리듬을 타는 페이, 663의 집에서 맞닥뜨린 둘, 마지막 장면까지. 모조리 기억할 것들이다. 다 좋았지만 서로가 사랑했던/사랑하는 존재가 되어버린 주인공들이 사랑스러워 죽어버릴 것만 같다. 하필 스튜어디스와 샐러드가게 주인을 시켜놨는지 ㅠㅠㅠㅠ 역시 배운 변태시군요 왕가위 감독님.. 대체 어떤 사랑을 하신 겁니까...여름만 되면 찾게 되는 중경삼림. 다음 해 여름에도 내 너를 꼭 찾아가길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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