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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종종 Oct 01. 2023

시리도록 신 그 밤의 귤,<여름의 귤을 좋아하세요>

2023년 8번째 책

제목: 여름의 귤을 좋아하세요

작가: 이희영

줄거리서랍 속에 감추어 둔 비밀을 꺼내 사랑하는 너에게 전하는 뒤늦은 안녕 40만 베스트셀러 『페인트』 이희영 작가가 써 내려간 서로 다른 기억, 모두 같은 마음에 대하여

청소년이 부모를 면접한다는 파격적인 미래를 그린 『페인트』부터 『나나』, 『테스터』, 『소금 아이』 등 다채로운 상상력과 탄탄한 서사로 큰 사랑을 받으며 청소년문학 대표 저자로 자리매김한 작가 이희영이 다시 한번 독자들의 마음에 선명하게 각인될 인상적인 이야기를 펼친다. 『여름의 귤을 좋아하세요』(창비청소년문학 122)는 고등학생 선우혁이 십여 년 전 세상을 떠난 형이 다니던 학교에 입학해 벌어지는 일들을 그리며 자신과 타인에 대한 다면적인 이해를 넓혀 가는 성장의 과정을 깊이 있게 조망한다. 형의 메타버스 비밀 공간에서 마주친 ‘곰솔’이라는 인물의 정체가 궁금증을 자아내며, 설레고 가슴 아픈 첫사랑 이야기가 마음을 울린다. 소문이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생한 학교의 모습과 자연스럽게 묘사된 메타버스 세계 역시 풍성한 재미를 더한다. 무엇보다 이희영 작가는 선우혁과 형 선우진, 그리고 곰솔의 이야기를 통해 생명력이 가득한 여름이라 할 성장의 한 시기를 지나는 청소년의 마음에 서늘하게 깃든 겨울 그늘 같은 아픔을 짚으며, ‘여름의 귤’처럼 이르게 찾아온 설렘과 이별의 경험을 간직한 이들에게 새콤하고 달콤한 위로를 건넨다. 눈 깜짝할 사이 환상적인 풍경으로 우리를 데려다 놓는 작가 이희영의 세계로 새롭게 빠져 볼 시간이다.


남들은 웃어넘기는 이야기를 주의 깊게 들어주는 이가 있다면, 귤을 먹고 싶다는 한마디에 달려와주는 이가 있다면 나는 그 사람을 좋아하게 될 지도 모른다. 그러나 첫사랑은 늘 저릿하고 어색하다. 당신은 내가 볼 수 없는 차원 너머로 사라져버렸다 다시 나타났다. 4,140일만에 말이다.


'내게도 이런 일이 일어난다면'을 상상하며 읽으니 모든 문장들이 얼떨떨하게 다가왔다. 나에게 별 관심이 없던 첫사랑이 내 앞에 나타난다는 것부터 믿기지 않는다며. 하우스 귤처럼 쉽게 까지지 않던 껍질은 곰솔과 혁의 우연한 만남들이 차곡차곡 쌓여 이내 벗겨지고 만다. 알맹이를 드러낸 귤은 혁도, 엄마, 선생님 심지어는 절친이라고 자부한 수민도 알지 못했다. 알맹이의 주인은 다른 누구도 아닌 곰솔이기 때문이다. '가우디'에 둘만의 집을 지은 것도, 귤이 먹고 싶다는 한마디에 달려간 것도 모두 그 때문이었으니. 형 때문에도 머리 아파 죽겠는데 혁의 머리를 아프게 한 것이 한 가지 더 있었다. 바로 친구 도운! 도운은 본의 아니게 주희의 오해를 사 반 아이들에게 괴물이라는 소리나 듣고 앉아 있다. 혁은 두 인물을 통해 '사람은 사람의 보이는 면만 본다'라는 점을 깨닫는다. 사람의 모든 면을 다 볼 수 없다는 의미이다. 그렇기에 혁은 형의 보이지 않는 모습에 더 다가가지 않는다. 


책을 읽으며 나는 그 사람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웃고 울고 시덥지 않은 대화부터 진지한 대화까지 나누면서 보고 알게 된 것들은 무엇일까, 보았다고 다 알 수 있을까 같은 생각들을 하게 됐다. 아주 가까이의 예를 들자면, 나조차도 집과 학교에서의 모습이 다르다. 친구들은 딸로서의 나를 모를 것이고 가족들은 학생으로서의 나를 잘 알지 못할 것이다. 그래서인지 나는 상대의 예상치 못한 모습을 발견하면 기쁘다. 어, 이 사람이 이런 면이 있구나 싶고 그를 더 잘 알게 됐다는 신호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소설에서 이 메세지를 중요하게 다루지만 이것만 다뤘더라면 무거워질 것을 대비해 달콤쌉싸름한 첫사랑 이야기도 준비해놓으셨다. 지금은 종종 꺼내보는 추억이 되었지만 나도 첫사랑을 꽤나 앓았었다.

칠 년 정도 좋아했으니까 말이다. 오랜만에 소설로 첫사랑 이야기를 읽으니 마음이 몽글몽글하고 그렇다.


한 챕터 한 챕터 읽어가며 곰솔이 누굴까 골몰하고 도운이와 주희는 어떻게 된 거지 머리를 싸매다 그 가운데에 서 있는 혁과 함께 자랐다. 나라면 형의 모르던 모습을 찾으려 애썼을텐데 우리 혁이가 더 어른스럽다. 이제는 잠시 켜뒀던 XR 헤드셋을 벗어둘 시간. 책에게 안녕히 손을 흔들어본다. 다시 만나는 날, 환히 웃으며 너를 다시 보리라 다짐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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