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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종종 Oct 11. 2023

별들의 도시

라라랜드

16년 12월 7일. 집에 혼자 계신 할머니를 모시고 극장에 갔다. 가장 보고 싶어했던 라라랜드를 향해. 개봉 때 지나쳤더라도 알게 될 영화가 아니었을까 생각을 하며 이야기를 이어 간다. 손주 손에 끌려온 할머니는 잠이 드셨다. 신경 쓸 겨를도 없이 예고편에 깔린 음악을 되뇌이고 되뇌었다. 현란한 장면들과 <Another Day of the Sun>..영화는 이에 부응하는, 어쩌면 그 이상의 것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인가(영화가 꼭 그럴 필요가 없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안다.) 영화가 시작되고 꽉 막힌 고속도로가 등장한다. 삐익 삐익 울려대는 경적이 어쩐지 싫지 않다. 파란 여름 하늘과 색색의 올드카들, 그리고 한 명씩 내려 노래를 부르는 사람들. 라라랜드의 오프닝 시퀀스를 사랑한다. 


보통의 사랑 이야기가 아닐까 싶던 영화는 주인공들의 꿈을 만나며 비틀어진다. 미아는 요즘의 재즈와 가까워진 세바스찬의 무대에서 멀어지고, 세바스찬 역시 미아로부터 멀어진다. 미아의 꿈은 배우고, 세바스찬의 꿈은 재즈바를 운영하는 것이다. 그 전에 재즈 피아니스트가 끼어 버렸지만. 생채기난 그들의 가슴이 울부짖듯 오븐이 비명을 지른다. 미아를 위해 만든 요리는 모두 탔다.


"우린 지금 어디쯤 있는걸까"

"모르겠어"

"어떻게 해야 하지"

"할 수 있는게 없어"

"그냥 흘러가는대로 가보자"


그리니치 천문대의 우리는 없다. 삶이 변화무쌍한 지도 모르고, 그걸 쥐고 살아가는 우리는 더 하면 더 했지 멈춰 있겠나. 우리의 춤만 추겠나. 흘러가는대로 가보자는 세바스찬의 말에 미아는 확신했을 것이다. 우린 아직 사랑해. 하지만 갈 길이 달라. 할 말과 흘릴 눈물이 덕지덕지 엉킨 미아의 얼굴이 자꾸만 생각난다.

미아는 유명배우가 되고, 세바스찬은 '셉스'라는 재즈바를 세운다. 둘은 둘에게서 몇 발자국 멀어진 뒤 다시 만난다. 피아노에 앉은 세바스찬이 미아를 보고, 재즈바를 나가는 미아는 세바스찬을 본다. 눈빛이 잠시 머무르는 동안, 많은 얘기를 한다. 그동안 잘 지냈어? 어떻게 지냈어? 다행이다. 너는 재즈 피아니스트 블라블라. 옆에 이제 그 사람은 없지만 함께한 시간이 남고, 응원한 꿈이 쌓여있다. '사랑하는' 사람의 행복을 기원하는 것이야말로 멋진 행위 중 하나가 아닐까. 누군가의 행복을 진심으로 기원하는 일은 생각보다 진심으로 이뤄지지 않으니까.


앞전에 미아 또는 세바스찬의, 그것도 아니라면 관객의 상상씬이 등장한다. 세바스찬에게 연주가 멋지다며 환호하는 미아에게 키스했더라면, 서로의 꿈을끝까지 응원해주고 미아는 최고의 배우가 되고 세바스찬은 잘 나가는 재즈바 사장님이 된다. 아이를 낳고 행복하게 산다. 이전 관람까지는 이렇게 시작됐더라면 둘 다 행복했겠다 싶었는데 이번 관람에선 확신에 자신이 없어졌다. 키스를 했더라도 둘의 상황은 달라졌을 것이고 벽이 생기고 이 벽을 돌파하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에 다다른 순간 둘은 흘러 가기를 결심할 것이다. 키스는 운명을 바꿀 만큼 거대하지 않다. (미아가 세바스찬의 공연을 함께 다녔더라면 세바스찬이 미아의 일인극을 보러갔다면, 텅 빈 객석을 채웠더라면 다른 결말이 났을 지는 더 생각해보고 싶다.)


https://www.youtube.com/watch?v=XCf_kdmmVNE

이번에 보면서 가장 울컥했던 장면. 미아의 일인극을 인상깊게 본 관계자가 미아를 부른다. 자신의 이야기를 해달라는 요청에 이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audition'. 제목부터가 오디션 장면에 딱인. 동시에 '나'이기를 도전하는 사람들을 위한 노래. 세상은 꿈을 꾸기에 차가우니까. (영화보다 현실이 더 영화 같다는 얘기들 하지 않나) 광대의 꿈을 꿔도, 작가의 꿈을 꿔도 괜찮다고 토닥여주는 미아의 노래. 'audition'을 통해 미아도 위로 받았길. 나도 당신을 열렬히 응원해. 우리는 모두 미아고 세바스찬이고 길 잃은 별들이야. 죽도록 노력해도 되지 않은 날이 있고, 죽어도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 삶일 수 있어. 하지만 중요한 건 나야. 내가 확신하면 돼. 할 수 있는 모든 걸 해보자. 꿈을 꾸는 바보가 되자, 기꺼이. 마침내, 마침내.


나 이 영화를 많이 좋아하는 구나. 볼 때마다 좋은 말을 하지만, 이번엔 더 많이 해주고픈 마음. 보는 것만으로는 부족한 영화. 수많은 사랑 속에 내가 택할 사랑은 무엇인가에 대해 묻는 영화. 무엇을 택해도 괜찮다고 라라랜드는 끊임없이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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