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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뱃살두툼 Oct 24. 2024

첫 명절에 만든 전 13가지

나는 결혼을 2월에 했다.

추운 겨울인 그때, 설이 얼마 남지 않았던 때였다.


새색시였던 나는 한복을 고이고이 챙겨,

버스를 타고, 택시로 갈아타며,

시댁에 도착했다.


새벽 2시에 도착했지만 시댁 잠자리가 낯선, 새색시이던 나는 한, 두 시간

잠을 자는 둥 마는 둥이었다.


이튿날 이른 아침,

시어머니의 달그락거리는 부엌소리에 맞춰,

멀뚱히 옆에 서 시어머니의 부엌일을 돕고, 또 아침을 차렸더랬다.


잘 넘어가지 않던 아침밥을 물린 후 시작된 첫 음식준비는 나에게 충격이었다.

만들어 내야 될 13가지의 전 재료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1. 오징어튀김

2. 꼬치 전

3. 동태 전

4. 배추 전

5. 납세미전

6. 육전

7. 동그랑땡

8. 깻잎 전

9. 고구마튀김

10. 새우튀김

11. 호박전

12. 연근 전

잘라서 바로 구워 낸 두부까지,

 총 13가지


지금, 이 순간

글을 쓰고 있는 이 시간에도 나는 아직 "왜?"라는 물음표를 달고 있다.



고모 넷과, 고모부 넷, 사촌들 아홉이,

1박 2일 먹고 자던 친정도,

전의 가짓수는 7가지가 최고였다.


명절 준비의 시작을, 배추를 사 와

새로 김치를 담그는 일로 시작하는 친정어머니를 둔 나다.

모든 전과, 생선, 명절의 기름진 음식과 조화를 맞출 밑반찬들을 만드는 우리 집 또한 만만치 않은 시월드가 도사리고 있는 집이었다.

그런 음식들은 그야말로 외며느리인, 친정엄마의 피와 땀으로 만들어진 음식이었다.


하지만 시댁은 전만 준비해,

당일날 큰어머니댁으로 이동해 상을 차리는 수순을 지키고 있었다.

큰댁 식구래야 큰어머니와, 아들내외

총 3명이었다.

'이 많은걸 누가 다 먹나? 왜 이렇게 많이 하지?'

혼자 마음속으로만 궁금해하는 나에게,

시어머니는 말씀하셨다.


'큰어머님이 음식을 많이 하는 걸 좋아한 다시며, 명절 음식을 많이 해오라 했다고.'

옆에 앉은 시누도 말을 보탰다.

"큰엄마가 푸짐한 걸 좋아하잖아"

그래서 재료를 많이 준비했다는 말이 곧이곧대로 들리지 않았다.

결혼식 올린 지 한 달도 안 된 새댁이었지만,

직감으로 그 정도는 알고 있었다.

절대로,

신랑의 큰어머님께서, 음식을 많이 해오라고 했을 리가 없다는 사실 말이다.


평생 속을 썩인 시아버지 대신,

집안의 가장이었던, 시어머니는 제사음식 준비가 익숙지 않으셨고,

미처 못 산 재료를 사러, 다시 마트를 가기 두 번,

아침 10시에 시작한 전 13가지 만들기는,

점심까지 굶어가며 만들어내어,

결국 오후 7시에 중국음식을 먹으며 마무리되었다.


왜 그러셨을까?

진짜 왜? 13가지나 준비하셨을까

요리에 서투신 분이 말이다.

그 후로 설, 추석 명절이 반복되면서

총 13가지 중, 11가지는 만들고

기름이 많이 튀는 오징어튀김, 새우튀김은 시장에서 사서 13가지를 맞추어,

큰집에 가지고 가셨더랬다.


그래도 시간이 많이 흐른 지금,

가뿐히 7가지로 줄어들었다.

참 다행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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