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닝크루, 달리기만 하는 사람들.

이럴 때만 진짜를 따라 하지 않는 가짜들.

by 민태선


달리기가 유행이다.

몇 년 전만 해도 마라톤은 일부 마니아들의 영역이었다.


새벽에 혼자 조용히 뛰는 사람들, 완주 메달 하나를 위해 몇 달을 준비하는 사람들.

그들은 대부분 조용했다.

달리기 자체에 집중했고,

그 행위가 주는 고독과 성취를 스스로 즐겼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달라졌다.

매스컴이 달리기를 다루기 시작했고,

SNS에 러닝 인증숏이 넘쳐나기 시작했으며,

러닝 크루라는 이름의 무리들이 도시 곳곳에 생겨났다.


달리기는 건강한 취미에서 하나의 문화가 되었고,

그 문화는 빠르게 퍼져나갔다.

달리기 자체는 좋은 일이다. 이것은 부정할 수 없다.

몸을 움직이고, 체력을 기르고, 스트레스를 해소하는 것.

이보다 건강한 취미를 찾기도 어렵다. 문제는 달리기가 아니다.


무리가 문제다.

혼자 달릴 때와 떼로 달릴 때,

사람은 달라진다. 혼자일 때는 자신의 페이스를 지키고,

주변을 의식하고, 타인에게 민폐를 끼치지 않으려 한다.


하지만 무리가 되면 그 감각이 희미해진다.

내 옆에 같은 방향으로 달리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일종의 면죄부처럼 작동한다.

우리가 함께 하고 있으니 괜찮다는, 우리가 많으니 틀리지 않았다는 착각이 생긴다.


이른 아침 혹은 늦은 밤,

도심 한복판을 수십 명이 무리 지어 달린다.


구호를 외치고, 음악을 틀고, 행인들을 밀치듯 지나간다.

그 굉음은 주변 사람들을 놀라게 하고,

그 광경은 두렵기까지 하다.


그들은 건강한 취미를 즐기고 있다.

하지만 그 취미가 타인의 공간을 침범하는 순간,

그것은 더 이상 개인의 건강한 선택이 아니다.

달리기가 문제를 만든 것이 아니다. 달리는 사람들이 문제를 만들고 있다.


여기서 중요한 질문이 생긴다.

우리는 보통 행동을 보고 판단한다.

달리기는 좋은 것이다, 운동은 권장할 만한 것이다, 건강한 취미를 갖는 것은 훌륭한 일이다.


이 판단은 행동을 기준으로 한다.

하지만 같은 행동이 누구의 손에 있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를 만들어낸다면, 행동을 기준으로 한 판단은 얼마나 의미가 있는 걸까.


달리기는 중립적인 행위다.

칼이 중립적인 도구인 것처럼.

요리사의 손에서 칼은 음식을 만들고,

그릇된 손에서 칼은 누군가를 해친다.

칼 자체가 선하거나 악한 것이 아니다.


그것을 쥔 사람의 성향이 칼의 용도를 결정한다.

달리기도 마찬가지다.


타인을 배려하는 사람이 달리면 그 달리기는 조용하고 단단하다.

자신을 과시하고 싶은 사람,

무리 속에서 자신을 잃어버리는 사람,

타인의 불편함을 인식하지 못하는 사람이 달리면 그 달리기는 소음이 된다.

행동이 문제가 아니다. 행동을 다루는 사람이 문제다.


이것은 달리기에만 해당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독서 모임이 있다. 책을 읽는 것은 분명 좋은 일이다.

하지만 독서 모임이 배타적인 집단이 되어 자신들만의 우월감을 확인하는 장이 된다면,

그 독서가 만들어내는 것은 지식이 아니라 분열이다.


봉사활동이 있다. 타인을 돕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다.


하지만 봉사를 SNS 콘텐츠로 소비하며 자기 이미지를 관리하는 도구로 쓴다면,

그 봉사가 향하는 곳은 타인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다.


행동의 이름이 무엇이든, 그것을 다루는 사람의 성향이 그 행동의 실제 방향을 결정한다.

선한 이름을 가진 행동도 그릇된 사람의 손에서는 문제를 만들어낸다.

반대로 별것 아닌 행동도 단단한 사람의 손에서는 조용한 선함이 된다.

그래서 행동을 보고 사람을 판단하는 것은 본질을 비껴간다. 무엇을 하는지가 아니라,

어떻게 하는지. 그리고 더 근본적으로는, 어떤 사람이 하는지가 중요하다.


그릇된 성향을 가진 사람은 어떤 일을 해도 문제를 만들어낸다.

이것은 냉정한 말처럼 들리지만,

오랜 시간 사람을 관찰하다 보면 부정하기 어려운 결론이다.


환경을 바꿔도, 취미를 바꿔도, 직업을 바꿔도 그 사람이 만들어내는 결과의 패턴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문제를 만드는 것은 상황이 아니라 사람이기 때문이다.


반대도 성립한다.

단단한 성향을 가진 사람은 어떤 환경에서도 문제를 최소화한다.

불편한 상황에서도 타인을 배려하는 방법을 찾고,

집단 안에서도 자기 자신을 잃지 않으며,

유행이 와도 그것에 휩쓸리지 않고 자신의 방식으로 소화한다.


결국 우리가 봐야 하는 것은 그 사람이 무엇을 하느냐가 아니라,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이냐다.


달리기를 하는지 여부가 아니라,

달리면서 옆 사람을 생각하는지 여부.

취미가 무엇인지가 아니라, 그 취미를 어떤 마음으로 대하는지.

행동의 목록이 아니라 행동 뒤에 있는 사람.


유행은 계속 올 것이다.

달리기 다음에도 무언가가 올 것이고,

그것이 무엇이든 좋은 사람들이 하면 좋은 문화가 되고,

그릇된 사람들이 모이면 또 다른 소음이 될 것이다.


그것은 유행의 문제가 아니다. 사람의 문제다.

그래서 새로운 유행 앞에서 우리가 물어야 할 것은 "이게 좋은 취미인가"가 아니다.

"이것을 하는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인가"이고,


더 나아가서는 "나는 이것을 어떤 사람으로서 하고 있는가"다.

행동은 사람을 만들지 않는다.

사람이 행동을 만든다.

그리고 그 사람의 성향이 결국 모든 것의 선과 악을 가른다.

달리기가 세상을 더럽히는 것이 아니다. 세상을 더럽히는 사람들이 달리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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