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장. 나를 바라보는 시간

기억을 걷는 시간

by 고우린


인생은 굴곡이 있다. 기쁜 시절들만 있다가도 한없이 추락하는 시간들도 있다. 추운 겨울 많은 일이 있었다. 흔히 말하는 아홉수라고들 하던가. 아홉수를 제대로 겪었다. 불행이 한 번에 나에게로 다가오는 느낌이었다. 얼마 전에 눈이 정말 많이 왔다. 많은 사람들에게 연락이 왔다. 밖에 눈이 아주 많이 오고 있다고. 언제 부턴가는 눈이 싫었다. 어릴때는 눈 오는 날이라고 하면 나가서 놀아야겠다는 생각밖에는 안 들었는데 이제는 예쁘다는 느낌보다는 하늘 위에서 내리는 덩어리로 밖에 안보였다.


“ 눈 오는 거 봤어? ”


난 아니라고 대답했다. “ 나가서 한번 봐봐 진짜 펑펑 와~ ” 그 말에 나는 그냥 침대에 누워있을래라고 대답했다. 나가기가 싫다고 창문 여는 것도 귀찮았다. 마음이 쇠약해지고 있는 걸 느꼈다. 아무것도 하기 싫었다. 그냥 이대로 침대에서 나오기 싫다. 무기력이 나를 감쌌다.


그러다 갑자기 나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는 지인에게 연락해 대뜸 오늘 볼 수 있냐고 물었다. 지인은 약속이 있다고 했지만 왜 그러냐 물어봤고 나는 3년의 연애의 종지부를 찍었다 말했다. 그러자 지인은 바로 자기가 오겠다고 했다. 나는 약속장소로 향하면서 너에게 온 마지막 연락을 읽어보았다. 같이 예약한 일본 여행을 가기 바로 이틀 전이였다. 아침에 일어나서 본 메시지는 미안해로 시작하는 단어였다. 나는 바로 직감했다. 이별을 말하는 거구나. 일본 여행도 같이 못 갈 정도로 집안 사정이 안 좋아졌다고, 그런데도 널 너무 사랑해서 연애할 상황이 아니었지만 그냥 너 하나만을 바라보고 지금까지는 어떻게든 버텼는데 이제는 여러 일을 해야 될 정도로 힘들어졌다고 말했다. 전화나 만나서 이야기를 해야겠다고 생각했지만 그러면 자신이 무너질 것 같다고 끝까지 이기적인 자신을 용서하지 말라고 했다.


단어 하나하나를 곱씹어보았다. 하루 전날까지만 해도 나의 부모님 이야기를 할 정도로 화기애애했다. 하지만 나는 정작 너의 슬픔을 들여다보지 않았다. 너는 너 혼자만 끙끙 앓고 있었구나. 그렇게 될 때까지 나에게 힘들다는 말 한마디도 없이 버텨보려고 노력했구나. 버스에서 갑자기 눈물이 터져 나왔다. 같이 헤쳐나가 보자고 이야기했지만 너는 끝내 아니라고 했다. 연애할 시간도 없어졌을뿐더러 상황이 조급해지니 마음이 안 좋아질 거라고. 나는 마지막으로 물어봤다. 마지막으로 목소리를 안 들어도 내 얼굴을 안 봐도 후회하지 않을 거냐고. 그냥 이렇게 끝을 낼 거냐고.


세 단어로 마무리가 됐다.


미안해.


그 단어를 보는 순간 나는 알 수 있었다. 정말 끝났구나. 내 옆을 한결같이 지켜주던 너. 결혼 이야기를 하면서 우리 4년째 되는 날 프로포즈 할게라고 말했던 너. 우리의 미래는 이별로서 사라졌구나. 처음에는 원망과 분노 슬픔 모든 감정이 나를 감쌌다. 이럴 거면 왜 해외여행 일정을 잡았는지 왜 지키지 못할 미래에 대한 약속을 했는지. 내가 조금만 더 나의 마음을 들여다보려고 했다면 하는 후회도 들었다. 너는 항상 먼 거리에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나를 데려다주고 데리러 왔다. 후회됐다. 고맙다고 사랑한다고 더 말해줄걸. 마지막엔 내가 너무 원망 섞인 말들만 내뱉은 건 아닌지.


헤어지기 전날 나는 혼자 만약의 우리라는 영화를 봤다. 그들은 서로 사랑했지만 현실을 마주하며 서로를 놓친다. 사랑해서 떠난다는 말을 나는 세상에서 제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너는 어떤 생각으로 나를 떠나갔을까 너도 내 생각을 하며 괴로워했을까? 나를 놓친걸 조금이라도 후회할까.


내 옆에 소중한 사람들이 떠나갈 때 나는 비로소 나 자신을 들여다본다. 내 감정이 지금 어떤지 그 사람이 나한테 어떤 존재였는지. 많은 사람들이 내 곁을 떠나갔어도 서로 가장 힘든 시기에 서로를 놓고 각자의 자리로 돌아가니 마음이 더 아팠다. 나는 끝없는 우울에 잠길 것 같았다. 계속 생각에 잠겨 후회를 했다. 그러지 말걸, 더 잘해줄걸. 너를 더 들여다볼걸. 나를 들여다보는 시간들은 아프다. 아파도 나의 감정들을 마주해야만 했다.


어느 날 지하철을 타고 가는데 드라마를 보면서 항상 지나가던 풍경을 바라보았다. 여배우의 내레이션이 나오고 풍경들을 바라보는데 전혀 다른 풍경으로 나에게 다가왔다. 내가 어떻게 바라보는지에 따라 같은 풍경도 이렇게 다르게 보이는구나.


언젠가는 지금 겪었던 이 감정들도 나에게 다르게 다가오겠지. 아무렇지 않아 질 순간들도 분명히 올 거다. 시간은 나를 비웃기라도 하듯이 빠르게 지나가니까.


내 옆에서 잠에 들던 너, 내 손이 차갑다며 손을 꽉 잡아주던 너, 아프지 말라며 우리 집 현관문 손잡이에 약봉투를 걸어놓고 가던 너, 슬퍼하지 말라며 나를 꽉 안아주던 너, 춥다고 얼른 집에 들어가라며 우리 집 현관에서 내가 들어가는 걸 하염없이 보던 너


너는 이제 없다. 네가 없는 나도 이제 익숙해지겠지. 사랑했던 시간들은 추억으로 묻어두자. 언젠가는 이 추억을 들여다보았을 때 좋은 기억으로 남을 때까지.

월, 목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