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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인생여행 Jan 07. 2025

술아 고마웠다. 이제는 우리 끝내자.

너를 처음 만난 건

술을 마시면 온몸이 노곤해지면서 기분이 좋아진다. 평소에 하지 못했던 이야기도 술을 핑계 삼아 꺼내놓을 수 있다. 쉽게 다가가지 못했던 사람과도 술의 힘을 빌어 말을 걸어보기도 한다. 단, 다음 날 어색해질 때도 있다. "야 우리 이제 놓는 거야." 의기양양 호기를 부려놓고 다음 날 "안녕하세요." 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 때로는 술 한잔에 속상했던 마음을 털어내보기도 한다. 이런저런 이유로 난 술을 좋아한다. 그렇다고 술을 잘 마시진 못한다. 특히나 요즘은 술을 좀 마시고 다음날이 되면 무슨 얘기를 나눴는지 기억이 나질 않을 때가 있어 이제 점점 작별을 고할 시간이 다가오는구나 싶다.


술이란 친구를 처음 안 건 중학교 3학년 어느 가을이었다. 동네친구, 그중에서도 술을 멀리해야 하는 교회 친구들과 이런저런 수다를 떨다 술맛이 문득 궁금해졌다. 한창 호기심이 많았던 우리는 집에서 몰래 맥주를 한병 들고 아파트 옥상으로 올라가는 데 성공했다. 정말 딱 한병. 종이컵에 쫄쫄쫄 따라 드디어 맛을 보려던  찰나, 어떤 아저씨 한 분이 아이와 함께 올라오셨다.

"너희들 거기서 뭐 하는 거야?"

"...,,,"

"너희들 어디 살아?"

"요 아파트예요."

"허어.... 어린놈들이 술을 마시네. 너희 어디 학교야?"

"아... 아녜요. 저희 처음이에요. 고등학교 입학시험 일주로 마셔보려 한 거예요."

사실 100일 전은 아니었고 비슷한 날짜여서 문득 생각난 핑곗거리였다.

"정리하고 얼 내려가. 또 한 번 걸리면 너희 학교에 얘기할 줄 알아!"

안 그래도 주임 선생님처럼 무섭게 생긴 얼굴로 호통을 치니 우리는 고개도 못 들고 덜덜 떨며 그 자리에서 술을 따라 버리고 재빨리 옥상에서 내려왔다. 우린 이처럼 순수한 아이들이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우리들이 옥상에 올라가는 걸 그 아들이 보고 아빠에게 얘기했고 혹시나 이상한 짓을 할까 하여 걱정되어 올라오신 거였다.


소소한 일탈에 실패한 우리는 소위 말하는 뺑뺑이(100% 추첨)로 인해 서로 다른 고등학교로 흩어지게 되었으며, 버스를 타고 한참을 가야 했던 친구들과는 달리 다행히 걸어서 15분이면 갈 수 있는 가장 가까운 고등학교에 배정받았다. 모두들 나를 부러워했고, 나 역시도 1시간씩 차를 타고 다니는 오빠를 봐왔던 지라 친구들과 같이 가지 못한 것은 아쉬웠으나 남들보다 1시간은 더 잘 수 있으니 다행이다 생각했다. 드디어 입학식을 갔고, 교장선생님 훈화 및 선생님들의 소개자리가 이어졌다.. 뜨아.. 저... 저분은... 그.. 그랬다.

그분은 다름 아닌 불량학생을 선도하는 호랑이 학생부장 선생님이었다.

그날 고개를 숙이고 있었고 오랜 시간이 아니었기에 날 기억 못 하시겠지. 날 못 봤겠지 하며 알아차리시지 못하기를 간절히 바랐는데 그분은 나를 용케 기억해 주셨고, 같은 아파트 주민으로서 선생님으로서 친근(?)하게 여기로 왔냐며 잘 지내라고 얘기해 주시는데 이것은 격려인가 앞으로 잘하라는 협박인인가 구분이 안되었다. '딴 길로 새지 않고 잘 지내야 한다'처럼 들린 것은 나의 착각이었을까.

가끔 하굣길에 마주쳤는데 종종 "공부는 잘하고 있어?"라고 물으셨는데 괜스레 마음이 불편하여 3년 내내 가급적 마주치지 않게 피해 다녔다.


선생님의 선도 덕에 그로부터 2년 뒤인 고2 때 나는 처음으로 술을 마시게 되었다.

글을 쓰다 보니 문득 깨달았다.

 그 선생님이 나처럼 순진하고 착한 학생을 오해했다고 여태껏 생각하며 살았는데 생각해 보니 혼날 짓을 하긴 했구나.


역시 아이들에겐 어른들의 관심과 사랑이 필요하다. 더군다나 호기심이 왕성해지는 질풍노도의 시기 청소년 때에는 더더욱 말이다. 

그런 주변의 관심들로 인해 소소한 일탈들은 있었지만 다행히 정도에서 벗어나지 않고 잘 성장할 수 있었고, 이제는 내가 그런 어른이 되어 아이들을 지켜줘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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