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사랑과 맥주는 쌉싸름하다

말할 수 없는 비밀

by 인생여행

우리 어렸을 적에는 교회에서 길거리 전도를 많이 했었다. 나도 놀이터에서 놀다가 전도사님을 따라 주일학교를 한번 간 적이 있었다. 그 뒤로 주일 아침마다 초인종을 누르시며 데리러 오셨는데 아무런 믿음 없는 아이에게 주말 아침 재미있는 만화 볼 시간에 교회를 나가는 것이 쉬운 일이었겠는가. 엄마에게 나 잔다고 해줘. 하며 조용히 누워있는 척을 하면 전도사님은 하는 수 없이 다른 집을 방문하러 가셨다. 열정이 많으셨던 전도사님은 그 뒤로도 한동안 오셨지만 어느 순간부터인가 포기하셨는지 오시지 않으셨다.

그런데 중학생이 되어 내 주변을 둘러보니 동네친구들이 다들 그 교회를 다니고 있었다. 친구들과 주말에 놀기 위해서는 나는 다시 교회를 다녔다. 우리 집은 제사를 지내고 매년 초가 되면 절에 가서 연등을 올리는 불교와 무교의 중간 어디쯤이었지만 여자는 결혼하면 출가외인이라 생각했던 엄마는 내가 교회를 다니는 것에 대해 별다른 제지를 하시진 않으셨다.




그렇게 시작한 나의 교회 생활은 오전 주일예배를 드리고 교회에서 점심을 먹고 오후 중고등부 예배를 드리고, 예배가 끝나면 교회에서 게임이나 수다를 떨거나 떡볶이집이나 근처 노래방을 갔다. 주말에 하루 종일 놀고도 주중에는 교회 앞에 있는 독서실을 다닌다 하고 가방만 던져두고 교회에서 또 놀았다.

동네친구이자 교회친구였던 '십알모임(10대부터 알게 된 모임)'친구들과 노는 것은 그때나 지금이나 재미있다. 이 중에 현재 교회를 다니지 않는 사람이 나 포함 절반이 넘는 것은 아쉬운 일이지만 그래도 언젠간 주님의 곁으로 돌아가지 않을까 한다. 여하튼 이 친구들과 놀기 위해 교회를 다니기도 했지만 또 다른 이유는 '교회오빠' 때문이었다.

우리 교회 중고등부는 자매가 많고 형제들이 귀했다. 그중 유일하게 열심히 다녔던 형제는 이 오빠뿐이었다. 중학생 때 개구리란 별명을 가졌던 장난꾸러기 오빠는 고등학생이 되고, 찬양리더를 하면서 분위기가 확연히 달라졌다. 교단 중앙에 서서 기타를 치며 찬양하는 리더가 얼마나 멋있어 보이는지 교회를 다녀본 사람이라면 공감할 것이다. 특히 난 멋있어 보이고 존경할만한 부분이 있는 사람에게 잘 반하는 편이다. 찬양리더에 기타와 드럼도 가르쳐 주고 늦게 끝날 때는 집 앞까지 데려다 주니 얼마나 멋져 보였겠는가. 생일에는 기타 반주를 녹음해서 선물로 주었는데 나중에는 테이프가 늘어날 때까지 정말 열심히 귀에 꽂았다.




고등학교 2학년 어느 날 그 오빠가 야간 자율학습 시간에 보자 해서 몰래 땡땡이를 쳤다. 한참 호기심이 많던 나이에 갑자기 맥주 얘기가 나왔고 맥주 500ml짜리 2개를 사 와서 어느 아파트 옥상으로 올라갔다. 설렘과 짜릿함에 술까지 들어가니 정신이 약간 혼미했고, 이대로 시간이 멈췄으면 좋겠구나 싶었다. 그런데 맥주를 처음 마셔봐서 간과한 것이 있었으니 금세 소변이 마려워졌다. 분위기상 화장실 다녀오겠단 말이 도저히 나오지 않아 다리를 배배 꼬았다. 열심히 참고 참아봤는데 이제는 소변 생각밖에 나지 않는 상태가 되었다.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여기는 아파트 옥상이라 근처에 화장실이 없는데 도대체 어디로 가야 할까. 이제는 시간이 없다. 화장실 다녀오겠다는 말을 남긴 채 냅다 엘리베이터로 달렸고 엘리베이터에 탄 순간 난 놓아버렸다... 그 와중에 바지가 아니라 다행이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정신이 확 들어왔고, 근처 화장실을 찾아 대충 뒷수습을 한 뒤 다시 옥상으로 갔고 얼마의 시간이 지나 집에 가기 위해 엘리베이터를 탈 때 난 혼신의 연기를 해야 했다.

"오빠, 그쪽 엘리베이터는 타지 마. 누가 오줌 싸놓았더라고...."

얼굴을 찌푸리며 마치 못 볼 걸 봤다는 듯이 말이다.




그날은 내 인생에서 지우고 싶은 하루였지만 아파트 옥상에서 바라보았던 그날따라 유독 더 붉고 아름다웠던 노을은 여전히 생각이 난다.

쌉쌀한 맥주를 마실 때면 가끔 그 오빠가 생각난다. 나에게 그는 커다란 의미였지만 그에게 난 그 정도의 의미가 되지 못했겠지 씁쓸한 마음이 드는 걸 보면 그를 참 많이 좋아했었구나 싶다. 스물두 살 때인가 어느 날 갑자기 그 오빠는 교회에서 나간 뒤 종적을 감추었고 그 뒤로 여태까지 본 적이 없다. 이삼십 대 때에는 왜 갑자기 교회를 나갔는지 궁금했고, 한 번쯤 마주치지 않을까 기대도 해보았다. 이제는 그냥 어디서든 잘 살기를 진심으로 바 뿐이다.


일의 특성상 매년 같이 근무하는 사람들이 바뀐다. 나와 잘 맞는 사람들을 만날 때도 있고, 그저 한 해가 빨리 지나가기를 바랄 때도 있다. 좋은 사람들과의 시간은 쏜살같이 지나가 버린다. 시간을 다시 되돌릴 수 없지만 추억은 언제나 되살릴 수 있다. 올해도 기억될 수 있도록 좋은 사람들과 좋은 시간을 많이 보내야겠다.

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