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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일기 12.

콩나물과 콩나무

by Staff J

1. 축구시합


우리 아들은 운동을 제법 잘한다. 줄넘기도 잘하고, 축구도 잘하고.

코치님의 권유로 두달여 전에 일반반에서 선수반으로 축구반을 바꿨다. 선수반에 들어가더니 조금 힘들어 하는게 눈에 보였다. 쉬는 시간도 별로 없다고 하고.

얼마 전에 축구 대회가 있다고 해서 아들과 같이 갔었다. 꼬맹이들 축구 경기에 대학교 축구장까지 빌리고 심판들까지 모신 꽤 큰 경기였다. 우리 아들 팀은 조 1위로 예선을 통과하더니 준결승을 거쳐 결승에서 승부차기로 이겼다. 선수반에 들어가서 첫번째 나간 대회에서 우승을 해버리다니...



2. 우승 후 헛헛함.


다른 집 부모들과도 그 때 거의 처음 뵈었는데, 서로 같이 기뻐하며 우승의 기쁨을 나눴다. 서먹서먹한 관계에서 우승 트로피를 나눠들고 더 친해졌다고 해야 하나.


돌아오는 차 안에서 아들은 피곤했는지 이내 골아떨어졌다. 그리고 나는 혼자 조용히 집에 오면서 여러 생각을 했다. 생각을 너무 깊게 한 나머지 나가야 할 길에서 못 나가기도 하고.


우리 아들이 일반반에서는 월등히 잘했는데, 선수반으로 가니 우리 아들 보다 잘하는 애들도 많았다. 그래서 우리 아들은 6번의 경기에서 5번은 수비를 한 번은 골키퍼를 했다. 평소 하고 싶었던 공격을 하지 못해서 속상한 마음이 있었나 보다. 나도 속상했고.



3. 콩나물과 콩나무


같은 콩이라 하더라도 집에서 햇빛 못보게 물만 주고 기르면 콩나물이 되고 땅에 콩을 심으면 햇빛을 보고 땅의 양분을 받아 콩나무가 된다.


우리 아들을 안전한 콩시루 속의 콩나물로 키우고 싶은 생각은 없다. 우리 아들이 비바람을 맞아가면서 서로 부대껴가며 콩나무로 살아 남았으면 좋겠다. 그래서 이번의 속상한 경험을 통해 경기에 몇 번 못 뛴 후보선수들에게 먼저 손을 내밀어 잡아줄 수 있는 아이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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