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의 내가 30대의 나에게
유학을 와서 보니 돈 많은 집 자식과 그렇지 못한 집의 자식이 조금 다르게 생활하고 있는 듯 하다. 타고 다니는 차도 다르고, 씀씀이 자체도 다르고..^^
하지만, 나는 그게 크게 문제될 소지가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돈이 적고 많고의 문제가 아니라 그것으로 인해서 발생되는 갈등이 문제이기 때문에 이 갈등을 해결할 기제를 만들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갈등을 제대로 봉합하지 못하고 자신의 상황에 만족함을 느끼지 못하는 학생들이 있었다.
그런데 그게 과연 부모를 잘 못 만나서 일까?
나는 누구처럼 그렇게 이야기를 할 생각은 없다.
너가 정말 열심히 하려는 마음이 있으면 길은 열리는 거야.
돈이 없어서 못하는 거라면 그건 진짜 하고 싶은 게 아니야.
라는 말들...
사람들을 자극할 수는 있겠지만, 그것이 진정으로 사회를 치유할 수 있는 방법일까....
아닌 것 같다.
아무리 미시적으로 그렇게 보이더라도 확률적으로는 누군가는 힘들어 하고, 또 어려워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저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시스템 적으로 그 확률을 줄여 나가는 것 뿐......
어쨌든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부모님 잘 만나서 좋은 것을 가질 기회가 많아지고, 더욱 나은 삶을 가질 기회가 생기는 거라면, 그러면 부모 잘 만나면 모든 것들이 다 해결되는 것이라면....
그러면 내가 비록 육의 부모는 객관적으로 봐서 부족할지라도, 영의 부모는 정말 이세상 누구보다 뛰어난, 그리고 나를 너무나 사랑해 주시는 분을 우리가 믿음이라는 수단을 통해서 결정할 수 있지 않는가....
1. 외로움과 수고로움
회사 근처에서 5일간 숙식을 한 적이 있었다. 생수 500ml 30개와 초코파이 한 상자, 그리고 콜라 한 병이 내가 필요한 전부였다. 먹고 싶을 때 먹고 싶은 만큼 먹고, 자고 싶을 때 자고 쉬고 싶을 때 쉴 수 있는...외롭긴 했지만 몸은 편했다. 출퇴근도 부담스럽지 않았고.
집에는 아내와 아이들이 있다. 때되면 집안일도 해야 하고 아이들도 씻겨야 하고 재워주기도 해야 한다. 공부를 봐줄때도 있고 같이 놀 때도 있고.
극단적으로 간단하게 표현하면 외로움과 수고로움 사이에 선택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2. 토익
토익 시험을 봐야했다. 따로 준비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뭘 가져가야 되는지 뭘 가져가지 말아야 하는지 시험 시간은 얼마나 긴지 알아보기 위해 검색을 했다. 요즘은 토익 볼 때 연필과 지우개, 그리고 신분증만 가지고 시험을 봐야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검색하는데 둘째가 와서 아빠 나랑 놀아줘~ 라는 명령어를 시전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아빠 이거 좀 봐야되니깐 조금 있다가 하자. 라고 했다. 둘째가 화면을 쭉 보더니 연필이 필요하네 내가 빌려줄께~ 라고 하더니 자기 새연필을 가져와서 연필 깎기로 깎기 시작했다. 다 깎은 뒤에는 다른 연필 2자루와 지우개까지 빌려주었다. 아빠 시험 잘 보라고..
토익 시험 당일 연필 세자루와 지우개 그리고 신분증을 챙겨서 갔다. 이름 마킹하고 서명하고 기다리는데 연필이 눈에 확 들어왔다. 연필에 둘째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이 나이 먹고 유학까지 다녀와서 토익이나 보러 다니는 내 신세가 처량하게 느껴질 뻔 했는데, 아들 이름 새겨진 연필을 보는 순간 더 부끄러운 아빠가 되지 말자 라고 다짐하고 더 집중하자 라는 마음으로 시험에 임했다.
3. 아들 둘
아들 둘 아빠라고 하면 위로를 하는 사람들이 많다. 힘들겠다고. 맞다. 육아를 하다보면 힘들 때가 많다. 그래도 그 힘듦이 기억나지 않게 하는 때도 많다. 그리고 나같이 부족한 사람을 부모로 만들어 주고 아빠라고 불러주는 게 참 감사하다.
유치부 아이들을 보면서 딸이 있었으면 어땠을까 라는 생각을 종종 하긴 하지만, 난 우리 아들 둘이 훨씬 좋다.
4. 보호자
어느 순간부터 나는 이 아이들의 완벽한 보호자가 될 수 없겠구나 라는 사실을 느끼기 시작했다. 첫째는 나보다 스키를 잘타기 시작했고 나보다 수영을 더 잘하기 시작했다. 나보다 피아노를 더 잘 치기 시작했고, 나보다 게임을 더 잘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놀이기구도 더 잘타기 시작했고... 난 이제 멀미나는데...
우리 세대보다 다음 세대가 더 못살게 될 가능성이 과거 어느 시점보다 높아진 지금, 아이들이 앞으로 잘 살아갈 수 있을까 하는 염려가 된다. 그래서 내가 조금이라도 해줄 수 있는게 있을 때 더 많이 가르쳐 주고 더 많이 준비시켜 주고 싶은데, 그게 아이들에게 부담으로 작용할까봐, 아이들과 사이를 멀어지게 만들까봐 걱정이 된다. 이게 맞는 걸까 하는 생각도 들고.
내가 입버릇처럼 말하는 이 녀석들 밥 벌어 먹고 살 수는 있어야 할텐데 라는 걸 언제쯤 안할 수 있을까.. ^^
5. 새로운 보호자 소개.
우리 아이들은 내가 보호자로써 부족하지 않다고 느낄까?
우리 아이들은 내가 본받을 만한 사람이라고 여길까?
우리 아이들은 내가 믿을만한 사람이라고 느낄까?
꼬리를 무는 물음들에 대한 답은 점점 자신감이 없어져 갔다.
아이들에게 나의 부족이 자신들의 한계를 설정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심어주기 싫었다.
내가 이 곳에 없더라도 의지할 수 있는 존재를 만들어 주고 싶었다.
그래서 우리 아이들에게 소개시켜 주고 싶었다. 내가 의지하고 살아가는 그 분을.
아빠는 너희들에게 해 줄 수 있는 게 그 것 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