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의 내가 30대의 나에게
오늘 묵상 부분은 베드로가 밤새도록 고기를 잡으려 했지만 못 잡았다가 예수님을 태우고 나가서 고기를 많이 잡았다는 부분입니다. 이 말씀은 여러 부분으로 묵상을 할 수 있는데, 오늘은 최선을 다하고 실패를 했을 때, 그 뒤에 있을 성공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1. 먼저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하나님의 계획에 동참하라.)
베드로는 먹고살려고 밤새 고기를 잡았습니다. 그러다가 돌아왔는데, 예수님께서 배를 타고 싶다고 하십니다. 이때 고기를 다시 잡자 이런 이야기는 하지 않으십니다. 그냥 배에 오르시고 나서 무리를 가르치시지요. 일단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자신의 삶을 내어 드리는 헌신 파트가 중요한 듯합니다.
2. 상황과 환경, 그리고 전문성보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으라
밤새 잡으려고 했지만 못 잡았습니다. 베드로는 고기를 잡는 것에는 전문성이 있었죠. 그리고 배가 보이는 낮에는 고기가 더 안 잡힐 수도 있었죠.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말씀을 마치시고 깊은 곳으로 가서 고기를 잡으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계획에 동참하였습니다.
혹자는 이런 이야기를 하더군요.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인데, 성공 말고도 여러 자식이 있는 거 아니야? 낙담, 좌절, 절망, 그리고 막내가 성공. 이런 식으로 요.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인생에 개입하고 싶어 하시는데, 그 이유는 우리가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축복을 주시기 위해서 인 듯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먼저 하나님의 개입을 원하지 않으면 기다리고 계신 것 같아요. 그리고 우리를 너무나 축복해 주고 싶으셔서 가끔 우리의 자유 의지를 "0"으로 수렴시켜 버리는 상황을 만들기도 하고요. 이게 때론 최선을 다한 뒤에 오는 실패로 보이기도 하지만, 우리에게 성공을 주시기 위한 하나님의 개입의 시작일 수 있습니다.
2012년 4월 28일 유학 중에....
유치 1부 예배를 준비로 분주했던 차에 선생님 한 분이 다가오셨다.
“어젯밤 꿈에 선생님께서 나오셔서 이제 음향은 이과 출신 말고 문과 출신이 합시다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러자 다른 선생님이 한 마디를 거드신다.
“혹시 계속 마음속에 품고 계셨던 거 아니에요?”
부족한 사교력을 감추려 어색한 미소와 함께 이렇게 응대했다.
“제가 그렇게 모진 말을 했으려고요."
오늘따라 손이 부족한 날이라 짧은 회동은 그렇게 막을 내렸고 이내 예배가 시작되었다. 음향과 카메라 조정으로 신경이 한창 곤두서 있던 시기가 지나가고 설교 시간이 되었다. 잠깐이지만 찾아온 조금의 안도감과 평화.
오늘의 본문 말씀은 예수님의 죽음 이후 흩어진 제자들이 다시 예수님을 만나게 되는 부분이었다. 밤새도록 물고기를 잡으려고 했지만 못 잡았고, 날이 밝았을 때 한 사람이 다시 한번 시도해 보라고 권한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 한 사람은 예수님이셨고, 그 권면에 의해 다시 한번 시도를 했던 제자들은 153 마리의 물고기를 잡게 되었다. 어릴 적부터 참 여러 번 들어왔던 말씀이었다.
유치부 아이들을 향한 전도사님의 설교를 들으면서 아침에 있었던 일이 뇌리를 스쳤다. 비록 이과 출신이지만 결국 문과 출신이 하는 일을 하고 있는 나. 자기의 전문성을 가지고 수고를 한다고 해서 꼭 결과를 기대할 수 없다는 거. 그리고, 전문성으로 성과를 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할 때 성과를 낼 수 있는 것.
이 두 꼭지를 가지고 인생 2회차라는 주제의 첫 번째 글을 쓸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열심히 인생을 살아온 만큼 어느 정도 성숙해져 있을 거라 생각했고, 나이를 먹은 만큼 어느 정도 완숙함이 드러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이러한 기대는 10년 전 글의 두 번째 문단을 넘지 못했다. 30대 초반의 나는 이미 이 사실을 아주 간명하게 위트까지 섞어서 정리해 놓았던 거다.
2012년의 나는 결혼하기 전에 미국에서 박사를 막 시작한 상태였고, 10년이 지난 지금은 박사를 마치고 세무법인에서 난데없이 세법을 공부하다가 제조업의 경영지원실장으로 1년 반을 보냈으니 경험의 폭은 훨씬 더 넓어질 수밖에 없었고, 그 과정에서 새로운 물을 받기 위해 고인 물들을 조금 빼냈던 것 같다. 그래서 예전에 알았던 것들도 잊어버리거나 알면서도 타협한 것들도 있는 것 같고.
이건 뭐 40대의 내가 30대의 나에게 충고를 해주기는 커녕 동등한 위치에서 대화를 하기에도 버거운 듯하다. 아니 오히려 변명을 하고 있는 꼴이다.
“결혼하기 전에 매일 기도로써 준비하던 영성과 가정을 이루고 반쯤 정신나간채로 살아가는 가장으로서의 영성은 차이가 날 수밖에 없지, 이 정도면 최선을 다한 거야.”
라는 말이라도 해야 인지적 부조화를 해결할 수 있는 이 상황. 10년이나 더 살은 40대인 내가 30대의 나에게 오히려 조언을 받아야 하는 이 상황을 직면하고 나니 첫 번째 글부터 내가 발가벗겨진 느낌이 든다. 답보도 모자라 퇴보를 하고 있는 모습.
비루한 40대의 아저씨지만, 30대의 청년에게 한 마디 해 줄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이 한마디는 가능할 것 같다. 결혼하면 있던 영성도 까먹으니 청년의 시기에 최대한 깊고 넓은 영성을 가지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