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대의 내가 30대의 나에게
올 6월이면 나도 한 아이의 아버지가 될 것 같다. 나는 아직 뭘 해 먹고 살지도 결정하지 않았는데, 곧... 아니 이미 한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되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하지만, 정말 좋은 아내를 만나서 그 부담감 보다는 기대감이 좀 더 크다.
이제 아내 뱃 속에 있는 아이도 많이 커서 성별을 알 수 있게 되었고, 남자 아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 아이를 잘 키우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라는 것은 감히 상상하기도 어려운 문제이기 때문에 짐작도 못해 보았고, 아이와 어떻게 하면 잘 놀아줄 수 있을까 라는 다소 작은 문제부터 생각해 보았다.
남자 아이니깐 같이 공놀이도 해 주고, 달리기 시합도 하고... 3번 정도 시합을 하면 세상의 험난함을 알려 주기 위해 3번 다 이겨야 할까, 아니면 자신감을 심어주기 위해서 아슬아슬하게 결승선을 통과하며 3번 중에 2번을 이겨주어야 할까? 아니면 아예 3번 다 져 주어야 할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를 이기는 것은 자기의 능력이 상대방보다 뛰어나면 그리 어렵지 않게 할 수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상대방을 배려하기 위해서는 상대방보다 능력도 뛰어나야 하지만, 그 전에 상대방에 대한 사랑의 마음이 우선적으로 있어야 하는 것 같다.
사회도 이런 것 같다. 상대방을 경쟁 상대로만 보라고 가르친다면 능력 향상만 가르치면 되겠지만, 같이 살아가야 할 사회의 구성원으로 가르치려면 능력도 키워야 하고, 사랑도 가르쳐야 할 것 같다.
어느 정도 가닥은 잡힌 느낌인데, 나도 능력이 부족하고, 나도 사랑이 부족한데, 누가 누구를 가르칠 수 있을까 생각하니 다른 종류의 부담감이 새로 생긴 느낌이다.
뱃 속에 있던 아이는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었고, 둘째 아이도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두 명의 아이를 둔 아빠가 되었다. 꽤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저 글에 미소가 지어지기 보다는 다시 한 번 마음이 뭉클하는 건, 그동안 풀 엄두조차 나지 않아서 마음 한 켠에 쌓아두고 외면했던 문제 들을 예전에는 그래도 풀려고 시도는 했었구나 하는 자책 때문일까.
아이를 키우는 아빠로 살다보니 내가 알고 있는 것과 아빠로서 당연히 알아야 된다고 생각했던 것이 차이가 나서 얼굴이 화끈거리기도 했다. 또, 내 마음이 원하는 것과 아빠로서 당연히 원해야 된다고 생각했던 것이 달라서 뜨금했던 적도 있었다. 뭐, 그런 빈도가 점점 줄어들기는 했다. 그런 일을 안 만들어서라기 보다는 마음이 단련되어서랄까..
예전에는 아이들이 어디에서 무엇을 하는지 다 알고 있었는데, 이제는 데리러가야 하는 마지막 학원의 시간과 장소를 잊지는 않았는지 확인 하는 것으로 아빠로서의 책무를 다했는지 평가하기도 한다. 좋게 말하면 내가 나이를 먹은 만큼 아이들도 나이에 맞게 잘 자라준 것이고, 그래서 아이들의 성장에 맞게 다 챙겨줘야 했던 1살 아이의 아빠에서 이제 어느 정도 스스로 하게 놔둬야 하는 십대 아이의 아빠로 나의 역할을 바꾸어 가고 있는 것이기도 하고. 물론 이걸 다 핑계로 본다면 아이들에 대한 관심을 줄여 나가고 있는 중이고, 이 나의 부족함을 아이들이 스스로 성장이라는 것으로 잘 매꿔줬으면 하는 기대도 있고.
보통 5년 이상 같은 분야에 종사하면 그 분야의 전문가로 본다. 10,000시간의 법칙이랄까. 그렇게 따지면 나는 10여년 넘게 아빠로 살았으니 아빠로서 전문가여야 한다. 그런데 나는 아빠로서의 역할만큼은 이게 맞나 라는 의구심을 가지고 싶은 듯 하다. 1살 아이의 아빠가 처음이었듯, 9살, 10살의 아빠도 처음이니깐.. 그리고 처음이라는 단어에는 용서, 이해, 관용이라는 말이 좀 더 잘 어울릴 수 있으니깐. 계속해서 나의 능력 부족에 대해 면죄부를 주며 내 마음을 토닥이려는 시도를 하고 있는 걸까.
이렇게 아직도 풀지 못한 문제를 풀려고 했던 과거의 나에게 한 마디 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마디를 꼽자면, 아이들은 나의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자랑스럽게도 나이에 맞게 잘 자라주었고, 아직까지는 나에게 사랑스러운 존재들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