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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과커몰리 Apr 20. 2023

"집사야 물을 내놔라!" '빱'친 토마토의 울음소리

식물은 유체역학 마스터?

 영화 <해리포터> 시리즈에 나오는 마법 식물, 맨드레이크를 아시나요? 겉으로 보기엔 평범한 화초처럼 보이는 이 식물은 뿌리를 뽑아내면 사람을 기절시킬 수 있을 정도의 고음의 울음소리를 내요. 흙에서 뽑힌 스트레스를 울음소리로 한껏 표현하는 거예요. 식물이 소리를 지르다니, 정말 판타지 세계 속에서나 나올 법한 이야기죠? 그런데 사실 이런 설정이 완전히 허구 속 말도 안 되는 이야기는 아니라는 흥미로운 연구 결과가 있어 소개하려 합니다. '식물도 스트레스를 받으면 소리를 낸다는 사실'이 국제 학술지 <셀>을 통해 공개되었거든요. 


 이스라엘 텔아비브 대학의 릴라크 하다니(Lilach Hadany) 교수 연구팀은 지난 몇 년간 식물이 내는 소리에 대한 연구를 이어왔어요. 2019년, 토마토와 담배가 사람이 듣기 힘든 고주파의 소리를 낸다는 사실을 최초로 발견했고, 추가적인 실험과 연구를 거쳐 2023년 3월 말 그 결과를 공개했죠. 연구팀은 20~150 kHz 사이의 고주파 소리를 녹음할 수 있는 초음파 마이크로 식물이 내는 소리를 녹음했는데요, 식물이 내는 소리는 "뚝!"하고 무언가 끊어지는 소리, "빱!"하고 터지는 뽁뽁이 소리와 비슷했어요. 스트레스를 받지 않은 식물은 1시간에 1번 미만으로 소리를 냈으나, 물을 적게 주거나 줄기를 잘라 스트레스를 받은 식물은 1시간에 30번 이상의 소리를 내며 성질을(?) 부렸죠. 아쉽게도 우리는 이 소리를 들을 수 없지만, 고주파의 소리까지 들을 수 있는 곤충이나 작은 포유류는 식물이 내는 소리를 들을 수도 있다고 해요. 


실험 과정 요약 이미지.  사진/ Cell

 연구팀은 토마토와 담배로 외에도 밀, 옥수수, 포도나무 등 다른 식물을 활용해 동일한 실험을 반복했고, 각 식물마다 고유의 소리가 있으며 스트레스를 받으면 더 자주 소리를 낸다는 사실을 발견했어요. 이후 실험의 데이터를 활용해 식물의 소리를 구분할 수 있는 머신러닝 알고리즘을 만들었죠. 즉, 식물의 소리만 듣고도 식물의 품종을 구분할 수 있음은 물론이고 식물의 스트레스 원인까지도 알 수 있게 된 거예요.


 그런데 여기서 잠깐, 식물은 입도 없고 빠르게 움직이지도 못하는데 어떻게 소리를 낼 수 있는 걸까요? 아직 정확한 이유를 밝혀내지는 못했지만 연구팀은 식물의 줄기에서 일어나는 '공동현상'을 가장 유력한 원인으로 꼽았어요. 공동현상은 공대생들의 영원한 적! 유체역학에 나오는 현상으로 빠르게 이동하는 유체에 '기포'가 생기는 현상을 말하는데요, 식물이 "뚝, 빱!"하고 우는 소리는 사실 작은 기포가 터지며 나는 소리라는 거죠. 또 재미있는 점은 사람의 몸에서는 비슷한 원리로 소리를 낼 수 있다는 것! 한국 영화의 클리셰로 "자~ 선수 입장!"을 외치는 장면에서 배우는 손가락 마디를 꺾어 "뚜둑"하고 뼈 소리를 내곤 하죠? 이 소리는 사실 뼈에서 나는 소리가 아니라 뼈를 연결하는 관절의 윤활액 속 기포가 터지며 나는 소리예요. 기포가 생기는 원리는 다르지만, 식물이나 사람이나 기포를 터트려 의견을 표출한다는 점은 동일하네요. 


 말도 못 하고 조용한 줄 알았던 식물이 의외로 열심히 소리 내고 있었다는 것을 알아낸 오늘의 과학배설! 연구 결과를 활용하면 아픈 식물의 상태를 진단할 수 있음은 물론, 농업에도 큰 도움을 줄 수 있을 거라고 해요. 반려 식물을 키우는 식집사님들에게도 정말 좋은 소식일 것 같네요. 



* 과학배설에서는 흥미로운 과학 썰을 편하게 쭉쭉 배출해보려 합니다. 

* 오늘의 배설은 Cell의 오픈액세스 논문(Cell, DOI: 10.1016/j.cell.2023.03.009)을 참고했습니다.

* 제 모든 썸네일은 인공지능에게 맡기고 있습니다. 오늘의 썸네일은 '아숙업 Askup'이 만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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