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클라호마 2년, 나를 키운 시간

이직 후가 더 힘든 이유를 깨닫게 된 어린 날의 기억

by chorong

오클라호마에서 지낸 지 어느덧 1년이 지났다.


나는 ESL 수업을 수료했고, 이제 8학년이 된 나는 원어민 친구들과 함께 정규 영어 수업을 듣게 되었다.

그때 처음 접한 것이 바로 ‘미국 교과서’였는데, 빨간색 커버였던 걸로 보아 아마도 Treasures 또는 Wonders 시리즈였던 것 같다.


첫 수업에서 배운 것은 '시(Poetry)'였는데, 얼마나 어려웠던지 하나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후 이어진 수업은 Social Science(사회) 시간이었고,
그 수업에서는 미국 중부 지역의 Native Americans (원주민)에 대해 배웠다.

Cherokee라는 이름만 겨우 기억나고, 정말 너무 어렵고 막막했던 기억만 남아 있다.


지금 생각해보면, 8학년 수업의 수준이 생각보다 꽤 높은 편이었다.


Elephant라는 단어의 스펠링조차 몰랐던 내가 그 수업들을 따라간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이었을까.


그런데 신기하게도, Science 수업은 상대적으로 쉬웠던 기억이 있다.

시험이 대부분 교과서를 중심으로 출제되어서, 교과서만 달달 외우면 되었기 때문이다.


특히 기말고사는 학기 동안 본 시험 중 3~4개 시험지에서 문제를 추려서 출제되었기 때문에,
열심히 외우기만 하면 항상 괜찮은 점수를 받을 수 있었다.
그 덕분에 항상 중간 이상, B 정도의 성적은 유지할 수 있었다.


어느 날, Science 기말시험을 앞둔 날이었다.
나는 그동안 봤던 시험지들을 모아 달달 외우기 시작했다.
예전에 한자 경시대회에서 우수한 성적을 받았던 내가, 익숙한 방식대로 시험지를 붙잡고 암기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본 엄마는 무척이나 뿌듯해하셨다.


낯설고 어렵고, 말도 잘 통하지 않는 환경이었지만
나는 그런 환경 속에서도 나만의 방식으로 조금씩 적응해갔다.


어떻게 하면 내가 더 편해질 수 있을까 고민하며, 스스로 나의 보금자리를 만들어갔다.

돌이켜 보면, 이런 경험이 성인이 되어 사회생활을 하는 데에도 큰 영향을 준 것 같다.

어디에서든 새로운 환경에 적응할 수 있는 용기, 그 시작이 바로 그때였던 것 같다.

그래서 나는 나름 ‘프로 이직러’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문제는 항상 ‘이직 후’에 찾아온다.


새로운 회사에 가면, 다들 이미 친해져 있는 상태라
내가 끼지 못한 채 서로 속닥거리는 모습이 종종 보인다.


그럴 때면, 미국에서 처음 학교에 갔을 때가 떠오른다.

외국인 아이들이 나를 보며 속삭이던 그 장면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 기억이 문득 떠오르면 마음이 참 힘들어진다.

아마 이런 걸 트라우마라고 하는 거겠지.


그래도 결국엔, 그럴 때마다 또다시 혼자서 버텨내고, 적응하고, 방법을 찾아낸다.
그게 내 방식이기도 하니까.


지금은 한 직장에서 근무한 지 벌써 3년이 넘다 보니,
이제는 어디론가 새로 떠나고 싶지도 않다.
그냥 이곳에서 적당히 타협하고, 편하게 지내는 게 더 안정적인 건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한다.


물론, 또 모르는 일이다.

어느 날 문득, 다시 새로운 도전을 하고 싶어질지도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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