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여름, 처음 미국에 가보다
녹음이 짙은 어느 여름, 매미 소리가 창밖에서 요란하게 울려 퍼지던 1998년.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열네 살, 중학교 1학년 여학생이었다. 내 방 한쪽에는 삼성에서 나온 노란색 Frog CD 카세트 플레이어가 있었고, 그 안에서는 핑클의 ‘Blue Rain’이 끊임없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우리 집은 1층 복도식 아파트의 한 가구였고, 그곳에 이사 온 지는 약 1년쯤 되었을 무렵이었다. 집에 들어가기 전엔 항상 경비실을 지나야 했는데, 그곳엔 덩치가 큰 경비 아저씨가 계셨다. 늘 꾸벅꾸벅 졸고 계시던 모습이 기억난다. 그런데 정말 신기했던 건, 매일 그렇게 주무시면서도 누가 언제 우리 집 앞을 지나갔는지 전부 기억하고 계셨다는 거다.
“야, 초롱아~ 너 오늘 우편함에 뭐 왔다~ 들고 가라~!”
능력치 100의 경비 아저씨였다.
그 동네에 산 지 얼마 안 된 나는 내성적이었고, 아직 친구도 제대로 사귀지 못해 늘 혼자 놀았다. 그 시절 나는 혼자 놀기의 끝판왕이었다. 어느 날은 심심한 나머지 창밖으로 “Hello~ I'm 김초롱! What is your name~?” 하고 외치고는, 재빨리 창문을 닫아버린 적도 있다. 그러면 밖에서 중학교 남학생들이 깔깔대며 웃었고, 나는 그 소리를 들으며 벽 뒤에 숨어 나도 낄낄댔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렇게 찐따 같던 나와 결혼해준 지금의 남편에게 새삼 고마운 마음이 든다.
당시 내가 다니던 중학교는 단지 후문 안쪽에 있어서, 집에서 도보로 5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설레는 마음으로 입학한 첫날, 그리고 그 다음 날, 나는 인생에서 두 번째로 돈을 빼앗기는 경험을 하게 되었다. 학교에 매점이 있다는 말에 친구들과 함께 찾아갔는데, 키가 다섯 뼘은 넘을 것 같은 남학생들을 보고 한 번 놀라고, 벽 코너로 밀쳐지는 것도 모자라, 깻잎머리를 한 2학년 언니들이 “천 원만 줘봐”라고 했을 땐 두 번째로 놀랐다. (그땐 명찰 색으로 학년을 구분할 수 있었는데, 1학년은 노란색, 2학년은 파란색이었다.) 초등학교 땐 한 번도 겪지 못했던 일이었다. 인생 첫 용돈 강탈은 6학년 때, 친구들과 함께 갔던 어린이대공원 한복판에서 일어났던 일이다.
이렇게 다소 충격적인 중학교 신고식을 치른 후, 나는 다른 초등학교를 졸업한 친구들과도 점점 친해졌고, 그 즈음 펜팔이라는 걸 시작했다. 삐삐는 있었지만 핸드폰은 없던 시절이었기에, 펜팔은 꽤 유행이었다. 나는 한 페이지를 쓰면 친구가 다음 페이지를 쓰는 식으로 노트를 주고받았다.
한 친구는 아예 노트를 칼로 반으로 잘라 세로로 길쭉한 형태로 만들자고 제안하기도 했다. 당시 ‘playcolor’라는 색펜이 인기였는데, 얇은 펜으로 제목을 쓰고 두꺼운 펜으로 한 번 더 테두리를 그려 텍스트 아트를 하기도 했다. 그 시절만의 감성이다.
이 사인펜으로 펜팔을 쓰면, 그 당시 ‘트렌디한 여학생’의 반열에 오를 수 있었다. 초등학교 시절에는 다이어리 꾸미기, 이른바 ‘다꾸’가 엄청난 유행이었고, 중학교에 들어와 열네 살이 되어 처음 펜팔을 시작하면서는 “이게 바로 멋진 경험이구나” 싶어 매일 학교 가는 일이 설레기까지 했다.
중학교 입학 후 처음 만난 내 짝꿍은 아주 성실하고 모범적인 학생이었다. 나는 주로 내 자리 뒤에서 세 번째 줄에 앉은 친구와 펜팔을 주고받았지만, 내 옆에 앉은 짝꿍은 약시가 있어서 두꺼운 안경을 쓰고 항상 영어 단어를 달달 외우던 학생이었다. 여름쯤, 그 친구는 학교에서 뽑는 방송반에 들어갔고, 그때부터는 방송 대본 쓰랴, 발성 연습하랴 늘 분주하게 연습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진짜 늘 성실함의 상징 같은 아이였다.
내 바로 뒷자리에 앉은 친구는, 초등학교 6학년 때 내가 1반이면 그 친구는 2반에 있던 학생이었는데, 당시에도 모범생으로 꽤 유명했던 기억이 있다. 6학년 때까지만 해도 공부에 큰 관심 없던 내가, 중학교 첫 중간고사를 보고 충격을 받았던 것도 그 친구 때문이었다. 전 과목 100점이라니… 정말 놀라웠다.
그 친구는 항상 노트 필기를 엄청 깔끔하게 했고, 절대 남에게 안 보여줬다. 필기할 땐 팔로 가리고 쓰고, 내가 “한 번만 보여줘” 해도 단칼에 거절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지금도 생생한 기억 하나—점심시간에 도시락을 먹을 때마다, 반찬 하나 먹고 도시락 뚜껑 닫고, 또 다른 반찬 하나 먹고 다시 뚜껑 닫고… 매번 그랬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킹받는’ 스타일이었지만, 그때의 나는 그걸 이상하다고 말도 못 하고, 오히려 “얘랑 빨리 친해지고 싶다”는 생각만 했던 것 같다.
그렇게 매일 6교시 수업을 마치고 집에 돌아오면, 나는 교복을 벗고 소파에 털썩 앉아 텔레비전을 켰다. 그 순간이 하루 중 가장 편안했던 시간이었다.
내 방은 현관을 들어서자마자 바로 왼쪽에 있는 작은 방이었다. 방 한쪽에는 침대가 놓여 있었고, 맞은편엔 엄마가 집 앞 가구점에서 사주신 하얀색 화장대가 자리하고 있었다. 그 화장대를 책상 삼아 숙제를 하기도 했고, 유리 선반 아래에는 사진을 꽂아두며 나만의 공간처럼 꾸몄던 기억이 난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방이 내 세상의 전부였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