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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네살 II

뭐라고? 미국 간다고?

by chorong

중학교 1학년 첫 중간고사를 치른 뒤, 시간이 흘렀다.

흰색 화장대 앞에서, 나름 처음으로 ‘공부’라는 걸 해보겠다고 새벽까지 책을 붙잡고 있었던 기억이 난다. 5~6학년 시절에 기본기를 제대로 쌓지 못했던 나는 공부 방법조차 몰라서 많이 헤맸다.

그러다 수학과 대학원에 다니고 있던 외삼촌에게 수학을 배우기 시작했고, 덕분에 기말고사는 열심히 준비할 수 있었다. 그 결과 성적은 크게 올라, 등수가 30등 이상 오르기도 했다. 기말고사 성적표를 기분 좋게 받아들던 날, 엄마는 나와 동생에게 마치 ‘통보’처럼 한 가지 이야기를 꺼냈다. 우리는 곧 미국으로 가게 될 거라고.

엄마는 아빠에게도 휴직을 권유했고, “지금 미국에 가지 않으면 이혼하겠다”는 말로 자신의 뜻을 강하게 전달했다고 한다.


그리고 나는, 미국에 도착했다.

도착한 곳은 미국 중부의 텍사스주. 우리가 살게 될 오클라호마로 가기 위해서는 비행기를 한 번 더 갈아타야 했다. 당시 8월의 날씨는 무척 더웠지만, 습하지 않아서 참 신기했다. 공항 특유의 냄새와 공기, 카펫이 깔린 미국 공항의 촉촉한 느낌, 성조기 무늬, 그리고 다양한 외국 사람들… 모든 것이 낯설고 놀라웠다. 무섭기도 했지만, 그만큼 새로운 세상이 펼쳐진 느낌이었다.


오클라호마에 도착하자, 현지 한인 교회의 집사님이 우리를 마중 나와 주셨다. 엄마가 미리 오클라호마에 사는 한국인들에게 연락해 도움을 청했나 보다.

그 집사님 댁은 미국에서 처음 방문한 한인의 주택이었다. 영어 발음이 엄청 좋았던 5살 남자아이와 7살쯤 되어 보이는 여자아이가 우리를 환하게 맞아주었다. 냉장고 안에는 생전 처음 보는 캔음료들이 가득 들어 있었고, 다양한 음식으로 가득 찬 부엌이 인상적이었다. “어떤 걸 먹어보고 싶어?” 하고 묻던 여자아이는 밝고 예뻤다. 그 모습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집사님의 도움 덕분에 우리는 아파트를 월세로 계약하고, 그곳에서 살게 되었다.

아파트 이름은 Wedgewood Village였다. 한국의 아파트와는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 단지 안에는 큰 공용 수영장이 있었고, 하나의 건물이 여러 세대로 나뉜 타운하우스 형태의 빌리지였다. 낯선 공간이지만, 곧 우리의 새로운 보금자리가 되었다. 우리 엄마, 아빠는 영어를 다른 사람보다 잘 했다. 그래서 아파트 계약하는 오피스에 가서도 능수능란하게 영어를 하며, 계약서를 적어 내려가는 엄마,아빠를 보면서, 나도 저렇게 멋지게 영어를 하고 싶다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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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좋은 아파트에 살아보는 건 정말 처음이었다. 미국에 온 것이 너무 설레고 기뻤다.

집 안에는 식기세척기와 세탁기를 제외하곤 아무것도 없었다. 그래서 엄마, 아빠, 동생과 함께 가구와 가전제품을 사러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는데, 그마저도 우리에겐 즐거운 모험 같았다.


어느 날은 Walmart에 갔는데, 디즈니 캐릭터 이불을 파는 코너가 있었다. 나는 곰돌이 푸우가 그려진 이불을 골랐고, 그날 밤은 그 이불 하나만 덮고 맨바닥에 누워 우리 아파트에서의 첫날밤을 보냈다. 아무것도 없었지만, 그 순간은 설렘으로 가득 찼다. 모든 게 새롭고 특별하게 느껴졌던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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