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공립 중학교 I

미국이면 다 좋을 줄 알았지?

by chorong

미국의 학기는 9월에 시작한다.


처음엔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였기에 모든 것이 설레었고, 새로운 환경에서의 시작을 좋아하는 나였기에 기분이 무척 좋았다.


첫 등교 날, 엄마 차를 타고 학교에 갔다.


내가 다니게 된 학교는 오클라호마시티에 있는 Central Middle School이었다.

학교의 마스코트는 Wild Cats였기 때문에 반 이름도 Tiger, Leopard, Lion처럼 동물 이름으로 정해져 있었다.


나는 7학년 때 Leopard 반에 배정받았고, 점심시간에 친구들이 "What's your class?"라고 물어보면 "Leopard"라고 대답하곤 했다.
그런데 내 발음을 아무도 못 알아들어서 어리둥절해하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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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학교는 넓고, 처음엔 조금 무서웠다.

처음 등교 날, 엄마를 따라 학교 안으로 들어갔고, 엄마는 나를 데리고 Administration Office로 향했다.
거기서 7학년 담당 어드바이저 선생님들을 만났는데, 이름이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Wenda였는지 Linda였는지…기억에 남는 건, 그 선생님이 금발에 안경을 쓴 아주 예쁜 40대쯤의 선생님이었다는 점이다.


처음 학교에 들어가자마자 ESL(English as a Second Language) 교실로 안내받았다.

영어 기본기가 거의 없던 나에겐 당연한 시작이었다.
매일 아침엔 ESL 수업을 2~3시간 듣고, 그 후엔 Homeroom 수업으로, 또 특별활동 수업으로 이동하며 하루를 보냈다. 하지만 교실을 옮겨 다닐 때마다 어디가 어딘지 몰라 정말 당황스러웠다. 넓고 낯선 학교는 미로처럼 느껴졌다.


ESL 교실의 담임 선생님은 Mr. Bunch였다. 젊은 미국인 남자 선생님이었는데, 그 당시 유행하던 영화 마스크의 짐 캐리와 닮았던 기억이 난다.


약 1년 동안은 이란 친구, 그리고 내 남동생과 함께 ESL 수업을 들으며 조금씩 안정을 찾아갔다.

문제는 Homeroom class에서부터 시작이었다.

우리 학교는 백인 학생들이 대부분이었고, 엄마는 한국인이 많은 지역보다는 원어민 학생들이 많은 환경에서 내가 영어를 익히길 원하셨다.


그래서 내가 ESL 수업을 마치고 애매한 시간에 Homeroom 교실 문을 열고 들어가면, 선생님은 "Welcome to class!"라며 나를 반겨주셨지만, 눈동자가 파란색, 초록색, 검정색인 친구들이 나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그들의 시선에서 이국적인 이름과 외모를 가진 나는 너무 달랐기에 그렇게 보았을 것 같다.


Homeroom 수업이 끝나고 특별활동 교실을 찾아가는 것도 어렵고 긴장됐지만,

가장 무서웠던 건 첫 점심시간이었다.


미국 학교의 점심시간은 Cafeteria에 가서 여러 섹션 중에서 원하는 음식을 골라 먹는 방식이었다.
음식을 어떻게 고르는지도 모르겠고, 내가 가진 Meal Plan 카드로 뭘 살 수 있는지도 몰랐다.


게다가 자리에 앉는 것도 자유라, 어디에 앉아야 할지 몰라 더 막막했다. 이런 자율적인 분위기가 나에겐 오히려 더 무섭게 느껴졌다.


점심이 끝나면 모두가 운동장에 나가 recess 시간을 보내고, 담임 선생님이 부르면 같은 반 친구들과 줄을 서서 다시 교실로 들어가야 하는데, 나는 반 친구들도, 담임 선생님도 잘 몰랐다.

결국 눈물이 터져버렸고, 넓은 학교 안을 울면서 헤매다가, 7학년 담당 선생님을 찾아가서 "Where should I go?"라며 겨우 물어봤다. 당시 타이타닉 영화를 정말 많이 반복해서 봤는데, 거기서 길을 잃은 여자가 선장에게 "Captain, Where should I go?" 대사를 했던 부분이 인상적이어서 기억에 남았었나보다. 그 당시 영어로 말할 수 있는 유일한 문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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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의 두 번째 눈물은 마지막 수업 시간에 터졌다.


수업이 끝나자마자 서둘러 사물함에 책을 넣고 스쿨버스를 타러 가야 했는데, 문제는 사물함의 자물쇠였다.
그 combination lock이라는 게 정말 까다로웠다. 숫자가 세 개여서, 오른쪽으로 두 번, 왼쪽으로 한 번, 다시 오른쪽으로 한 번 돌려야 문이 열리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긴장과 조급함 속에서 손이 덜덜 떨렸고, 몇 번이나 시도한 끝에 겨우 문을 열 수 있었다.

책을 급히 넣고 버스를 타기 위해 학교 바깥으로 뛰어갔지만, 이미 스쿨버스는 떠나버린 뒤였다. 눈앞에서 버스가 멀어지는 걸 보며, 또 한 번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결국 그날 두 번째로, 7학년 담당 supervisor 선생님을 찾아가야 했다.
눈물범벅이 된 얼굴로 선생님을 찾아가 "My bus is gone…"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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