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마주친 놈 촘스키

by 필레말

<놈 촘스키: 현대 아나키즘과 반제국주의의 기원을 찾아서>(박홍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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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어 공부를 하며, 독일어뿐만 아니라 '언어'라는 것 자체가 나의 관심을 끌어당겼다. 독일어를 공부해 본 사람은 알겠지만, 정관사, 부정관사 또는 형용사는 뒤에 오는 명사의 성과 수에 따라 변화한다. 모국어가 한국어인 나의 입장에서는 먼저 말할 정관사, 부정관사, 형용사의 변화형을 뒤에 나중에 말할 명사의 성과 수를 미리 생각하고 말하는 것이 매우 어려웠다. 독일어를 공부한 지 1년이 조금 넘어 점차 익숙해져 글을 쓸 때는 그나마 생각할 시간이 있어 실수를 덜 하는 편이지만, 바로바로 말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적지 않은 실수를 계속한다.


최근 영화관에서 재개봉한 <컨택트>를 보고 왔다. 컨택트는 사피어-워프 가설을 기반으로, 즉, 언어의 구조와 어휘가 언어 사용자가 세계를 인식하고 생각하는 방식을 형성하고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가설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영화이다. 반면 놈 촘스키는 그러한 언어 상대주의를 비판하는 언어 보편주의론에 있는 학자이다. 다시 정리하자면, 언어 상대주의는 언어 간의 차이가 중요하고 그 차이 때문에 사고와 세계관이 다르다고 보지만, 언어 보편주의는 언어가 표면적으로 차이가 있어도 본질적으론 같기 때문에 사고와 세계관의 차이는 언어가 아니라 문화에서 나온다고 여긴다. 영화를 보고 이와 관련하여 간단하게 검색해 본 것이 다지만, 다른 언어를 배우고 있는 나의 입장에서는 이에 관해 엄청난 흥미가 생겼다.


일주일 전, 집에서 책장을 정리하던 중 놈 촘스키에 관한 책이 꽂혀 있는 것을 보았다. 내가 구입한 책은 맞는데, 그 당시에 내가 왜 이 책을 샀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현재는 놈 촘스키라는 이름을 보고 이 책에 관심을 기울일 수 있게 되었다.


173페이지의 크기가 작은 책이라 읽는 데에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워낙 천천히 읽는 편이라 그래도 며칠이 걸리긴 했다. 여러 개의 챕터에 따라 놈 촘스키의 일생, 저서. 생각, 영향을 받은 사람과 더불어 지필 한 책 등을 소개한 책이다. 나열식으로 되어있어서 목차에서 원하는 챕터로 가 읽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중간중간 책 이름과, 놈 촘스키의 주변 사람들이 쭉 나열된 구간은 건너뛰며 읽었다. 다만, 내가 원하던 내용인 언어학의 대가로서의 놈 촘스키 부분은 많이 없었다. 대부분 놈 촘스키의 사회 운동가적인 면을 부각하여 쓴 책이었다. 물론 그러한 부분을 알게 되어 놈 촘스키라는 사람에 대해 더욱 관심이 높아졌지만, 내가 기대한 바와는 달라 아쉬웠다. 당연히 제목만 봐도 어떠한 내용을 주로 다룰지는 알 수 있었지만 말이다. 00주의, 00니즘 등의 단어가 많이 나와 이쪽으로는 개념이 부족한 탓에 검색과 정리를 해가며 읽었다.


전반적으로 나열로 진행되는 책 중간중간 놈 촘스키가 책에서 썼던 말 등이 인용되어 있다. 그중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학교가 경쟁을 강조하고 부추기는 것은 학생을 통제하는 최선의 방법이기 때문이다"라는 부분이다. 나는 평소 경쟁이라는 단어에 민감하게 반응해 왔다. '경쟁에서는 이길 것', '패배는 아름답지 못하고, 그 안에서 재미를 찾을 수 없다', '경쟁은 나를 발전시킨다' 등의 생각을 가지고 살아왔다. 지금도 내가 한 생각들이 완전히 틀렸다고 보지 않지만, 이러한 생각들을 가졌던 것이 '내가 단순히 학교라는 시스템에, 또는 범위를 넓혀 대한민국이라는 나라 안에서 세뇌된 것이 아닌지'에 대한 깊은 반성을 했다. 직간접적으로 세뇌를 많이 당했다고 생각한다. 어른들로부터 뿐만 아니라 친구들로부터의 영향도 컸다. 경쟁에서 이기면 좋다. 1등 해서 좋지 않은 것은 없다. 승리의 기쁨을 당연히 누려야 한다. 하지만, 이기지 못한 사람들에 대한, 경쟁을 위해 준비해 온 노력들도 봐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자 마음먹었다. 1차원적인 이유로 내가 언제나 승리자가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열심히 노력했지만, 여러 상황으로 내가 그 노력에 상응하는 결과를 받지 못할 수도 있다. 또 다른 이유로는, 그런 마음가짐을 가져야 더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또한, 단순히 승리만을 목표로 삼는다면 승리하지 못한 순간들은 고통으로만 존재하고, 다른 사람의 노력과 가치를 인정하는 자세를 가질 수 없다. 다른 사람의 결과뿐만이 아닌, 과정을 이해하는 것은 나 자신에게도 관대해지는 계기가 된다. 경쟁을 넘어선 연대와 이해의 가치를 깨닫는 것이야말로 내가 앞으로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책 마지막 부분에는 놈 촘스키의 주요 저술 목록이 나온다. 그중 내가 읽고 싶은 것은 <통사 구조>이다. 언어학의 패러다임을 바꾼 책이기에 관심이 안 갈 수가 없다. 검색해 보니 도서관에 가면 빌릴 수 있을 것 같아 조만간 몇 년 만에 도서관 방문을 소극적으로 계획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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