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래만드는 AI와 빨래 개는 나

AI와 인간의 창의성 경계에서

by 파인

초등학교 시절, 과학의 달엔 항상 공상 과학 그림 대회가 열리곤 했다. 단골 주제는 하늘을 나는 자동차, 우주의 집, 집안일하는 로봇 정도였고 당시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던 나는 로봇이 나 대신 숙제나 청소를 하고 나는 좋아하는 그림을 그리고 있는 장면을 그렸던 기억이 난다.

그렇다, 우리 모두가 기대하던 이상적인 미래는 로봇은 육체노동을 하고 인간은 창의적인 활동만 하는 세상-

인간의 고유한 예술 능력이 필요한 화가나 작가, 음악가 등은 인공지능이 대체하기 힘들 직업으로 손꼽히기도 했다.

그러나 단 몇 년 만에 세상이 바뀌어버렸다.

그림, 음악, 영상 제작 등 재미있는 건 AI가 하고 있고, 나는 아직도 빨래를 개고 있다.




AI가 만든 음악 '고스타그램'

몇 주전 '특이점이 온 AI 노래'라는 제목으로 유투버 심통봇이 공개한 고스타그램 (GHOSTagram) 이라는 노래와 뮤직비디오가 커뮤니티를 휩쓸었다. 작사, 작곡, 보컬, 뮤직비디오까지 100% AI가 만들었다는 이 노래는 2010년대 감성의 멜로디에 최신 트렌드의 가사가 접목되어 있다. (물론 프롬프트는 알 수 없기에 생성자가 어디까지 관여했는지는 알 수 없다.)

처음 이 노래를 들었을 때, 가사와 멜로디는 그렇다 치더라도 저승사자와 처녀귀신의 대화 형식으로 전개되는 독특한 플롯이나 고된 현대인들을 위로하는 메시지가 AI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믿기 어려웠다. AI가 만든 노래를 듣고 '저 아직 MBTI가 뭔지도 잘 몰라요'라고 말하는 처녀귀신에게 안쓰러운 마음이 들고, '복수하고 떠날래도 다들 이미 너무 불행해 보이네요'라는 말에 공감하는 스스로가 낯설게 느껴졌다.

어쩌면 나는 AI가 만들어내는 작품의 기술적인 진보는 불가피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여전히 인간만이 표현할 수 있는 독창성이나 감성은 담을 수 없다고 믿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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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버는 AI밴드의 등장

지난 6월 돌연 등장하여 유럽 음악차트 1위에 올랐던 더 벨벳 선다운(The Velvet Sundown)은 100% AI로 만들어진 밴드로써, 1970년대 올드룩 분위기를 재현한 음악으로 스포티파이에서 순식간에 100만명의 청취자를 끌어모았다. 이는 AI가 만든 음악이 대중의 인정을 받을 수 있음을 증명함과 동시에 정규 음악 시장의 판도에도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 첫 사례로 볼 수 있다.

한 옥스퍼드대 AI 분야 교수는 “벨벳 선다운 같은 밴드가 월간 청취자 수 100만 명을 확보하게 되면서 감동적인 노래는 인간만이 쓸 수 있다는 오랜 믿음에 균열이 생겼다”며 “알고리즘이 사람 감정까지도 자극할 수 있다면, 우리는 인간과 기계의 창의성을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지 다시 생각해 봐야 한다”고 말했다.

과연 창의성이란 인간만의 고유한 능력인 것일까?


news-p.v1.20250710.64521517e56c4229bd786db1076fcb30_P1.jpeg 누가봐도 어색한데 속은 사람이 있던걸까?


창의성의 새로운 정의가 필요한 시대

사실 아직 현시대에서 AI는 스스로 질문을 던지고 자율적으로 사고할 수 없기 때문에, 창의성은 인간 고유의 능력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인간과의 대국에서 알파고가 새로운 전략으로 승리할 수 있어도, 바둑이라는 게임 자체를 창조하지는 못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창의성의 정의는 '새로운 생각이나 개념을 발견하거나 기존 개념을 조합해 새로운 것을 생각해 내는 특성'으로써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행위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만약 AI가 기존의 지식을 기반으로 인간이 시도하지 않았던 새로운 조합을 찾아내어 답을 제시한다면, 그것을 창의적인 결과로 인정하지 않을 이유가 있을까?

실제로 알파고의 후속 모델인 알파고 제로는 더 이상 인간의 기보를 학습하지 않고 스스로 독학하고 발전하고 있으며, 바둑계에서는 AI포석이 정석이 되어 바둑 생태계 전반이 변화를 겪고 있다고 한다. 수백 년간 쌓아온 바둑의 생태계 질서는 한순간에 무너졌고, 그것은 이제 다양한 산업 분야에서 매일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어쩌면 창의성이란 인간만의 전유물이 아니라, 시대와 도구에 따라 확장되고 재정의될 수밖에 없는 개념일지도 모른다. AI를 ‘창의성이 없는 존재’로 단정하기보다, AI의 진보를 수용하고 인간의 창의성을 확장시키는 새로운 동반자로 받아들여야만 하는 시점이 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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