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랑한 도시의 순간들 1

by 파인

나의 사주에는 '역마살'이 있다.

성인이 된 이후로는 해마다 한 번 이상 해외로 나가고, 국내 여행은 한 달에 한번 꼴로 나가고 있다. 주말이면 근교의 쇼핑몰이라도 아득바득 기어 나가야 직성이 풀리는, 그야말로 운명에 순응하는 삶을 살고 있다.

그리고 그렇게 많은 곳을 떠돌며 비로소 깨달은 점이 있다. 나는 웅장한 자연이나 화려한 휴양지보다는 도시를 사랑하는 '시티매니아'라는 점이다.

시티매니아로부터 합격점을 받을 만한 도시는, 화려한 도심에서 최신 문화를 경험할 수 있어야 하며, 동시에 도심 외각에서는 도시의 역사와 일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을 엿볼 수 있어야 한다.

여행자로서 낯선 도시가 주는 쾌적함이나 안전함을 선호하는 것도 있지만, 정확히는 무수히 많은 사람들과 시간이 모여 만들어낸 '도시의 서사'를 사랑하는 것이다.

그리고 여기, 내가 사랑한 도시들에서 행복을 찾은 순간들이 있다.




평화로운 예술의 도시, 치앙마이

3년 전 처음 찾은 치앙마이의 첫인상은 '아기자기'하다는 것이었다. 태국은 이미 방콕을 4번쯤 여행했었기 때문에 큰 기대가 없는 상태였는데, 도심지라고 하기엔 다소 작고 좁고 낡은 올드시티의 모습이 오히려 흥미를 끌었다.

다닥다닥 붙은 가게들마다 디지털 노마드를 실행 중인 여행객이 가득했고, 화려한 색의 꽃들과 무성한 나무 그리고 그래피티로 가득한 거리는 이국적인 느낌이 물씬 났다. 도심 어디에서 눈을 돌려도 쉽게 볼 수 있는 화려한 사원 안에는 사랑을 가득 받은 동물들이 제 집처럼 늘어져있었고, 주말이 되면 도심 전체가 거대한 마켓이 되어 다양한 볼거리를 제공했다. 낮에는 커피 향이, 밤에는 재즈 소리가 가득한 이 작은 도시는 며칠 밤낮을 하루 종일 걸어 다녀도 질리지 않았다.


스크린샷 2025-10-12 오후 11.47.26.png 정적이면서도 동적인 치앙마이 스타일


특히나 인상 깊었던 것은 상점들의 인테리어 감각이었는데, 성수동이나 연남동에서 그렇게 강조하는 '치앙마이 스타일'의 본고장은 뭔가 달랐다. 태국의 지역 예술가와 수공예 장인들이 모여 산다는 치앙마이 스타일은 히피스러움을 기반으로 하는 것 같았는데, 자유롭고 정형화되지 않은 배치와 과감한 색감들은 푸르른 자연과 뒤섞여 묘한 조화를 이루어 내었다.

가는 곳마다 감탄을 자아내는 광경 속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카메라를 꺼내고 지갑을 여는 것뿐이었다.



치앙마이의 미소

오버투어리즘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방콕에서 현지인들의 친절도가 점점 낮아지는 걸 경험한 나로서는, 치앙마이에서도 친절함을 크게 기대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대화하는 모든 순간마다 미소를 지으며 다정함을 건네는 치앙마이 사람들은 태국에 대한 호감도까지 다시 올려놓았다. 낯선 외국인에게 느릿하게 건네는 어설픈 영어와 귀여운 인사 덕분에 마음을 놓고 도시에 녹아들 수 있었던 것이다.

치앙마이에서 내가 가장 행복했던 순간은 화창한 징짜이 마켓에서 미소 짓는 코끼리 인형을 만났을 때였다.

플리마켓의 다양한 수공예품들 사이에서 행복한 고민을 하고 있을 때 눈에 들어온 코끼리 인형은 친절한 치앙마이 사람들이 나에게 보여주던 수줍은 미소를 그대로 담고 있었고, 이 친구를 데려가야만 치앙마이에서 느꼈던 행복의 순간들이 이어질 것만 같았다.


IMG_4331.HEIC 이 귀여운 코돌이는 한동안 출근 가방에 부적처럼 달고 다녔다.


소박하면서도 다채로운 문화의 도시 치앙마이에서 내가 찾은 것은 '사소한 행복'이었다. 슬리퍼를 끌며 거리를 걷고, 햇살을 받으며 커피를 마시고, 친절한 사람들과 인사를 나눌 때 내 안에서는 설명할 수 없는 행복이 샘솟았다. 내가 사는 도시에서도 할 수 있는 일상적인 일들이 행복의 순간이 될 수도 있다는, 잊기 쉬우면서도 당연한 사실을 깨달았던 것이다.

여행이란 결국 익숙한 풍경 속에서 잊고 지냈던 마음을 되찾고, 익숙한 삶을 새롭게 바라보는 과정이 아닐까.

아마 내가 도시 여행을 사랑하는 이유도 그 안에서 일상의 나를 다시 발견하기 때문일 것이다.

다음은 또 어떤 도시에서 잊었던 나를 발견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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