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형수의 눈물, 무대가 남긴 질문

뮤지컬 [사형수는 울었다] 감상문

by 파인

사람을 죽인 사람과 사람을 죽일 수밖에 없게 만든 사람.

그들 중 더 큰 죄인은 누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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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등산 타잔 이야기

뮤지컬 [사형수는 울었다]는 1977년 발생한 실화를 모티브로 하고있는데, 바로 무등산 타잔 박흥숙 사건이다. 이 사건은 2020년 방송 프로그램 꼬꼬무를 통해 다시 한번 조명되면서 많은 이들의 관심을 끌었다. 극은 도립공원 개발을 위해 무허가 판잣집이 철거되는 과정에서 철거원 4명을 살해하고 결국 사형을 당한 주인공의 일대기를 다룬다.


당시 언론과 행정 담당자들은 인권을 무시한 무자비한 철거라는 사건의 본질보다 광기에 사로잡힌 살인마에 대한 묘사에 집중했고, 법조인을 꿈꾸던 청년은 '가난한 국민을 불쌍하고 가엽게 여겨달라'는 유언을 남기고 형장의 이슬이 되었다. 물론 살해당한 철거원들 또한 명령을 따를 수밖에 없는 소시민이었기 때문에 그의 죄가 정당화될 순 없지만, 극이 담고 있는 '무등산 타잔 이야기'는 70년대 당시의 비인간적 시대상과 편파적인 언론 보도의 민낯을 엿볼 수 있는 사건으로 평가되고 있다.



대한민국 헌법 제34조
모든 국민은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가진다.

극 중 가장 인상 깊으면서도 마음을 아리게 했던 부분은, 담당 공무원으로부터 퇴거 명령을 전달받고 판자촌 주민들이 절망에 휩싸이던 중 주인공의 여동생이 삽을 높이 들고 "땅굴을 파고 들어가자"라고 외쳤던 부분이다. 전달하는 공무원 입장에서야 '땅 속으로 들어가는 한이 있어도 제발 눈에 띄지 말라 '는 마음에 던진 말이었겠지만, 당장 갈 곳이 없는 그들에게는 실제로 땅을 파서 들어가는 선택지 밖에 남아 있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고 이 장면에서 수많은 사건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지나간 시대의 비극이라고 하기에는 멀지 않은 2009년도에도 핍박받으며 하늘에 집을 지은 철거민들이 있었다.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거주 공간을 보장받지 못하고, 얼마 없는 자산마저 지키지 못하고 살려달라고 우는 이웃들의 이야기는 극 속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개발과 성장, 발전이라는 명복하에 얼마나 많은 눈물들이 땅 속으로 처박혀왔을까.


머릿속을 맴도는 잔혹한 현실과 배우들의 간절한 목소리가 담긴 합창이 더해져 극이 진행될 수록 소시민들의 고통이 더욱 선명하게 느껴졌고, 이미 정해진 비극적인 결말이 더 가슴 아프게 와 닿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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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의 이면을 바라보는 예술의 본질

사실 나에게 문화생활은 스트레스 해소의 수단이었기 때문에 실화를 바탕으로 한 작품, 특히 그것이 비극적인 사건일 경우 더욱 피하는 경향이 있었다. 극에 몰입할수록 현실을 직시할 수밖에 없고, 감정이 해소되기는 커녕 극복할 수 없는 현실의 무게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그러나 공연 관람 후 복잡한 심경으로 후기를 검색하던 중 발견한 연출가의 인터뷰는, 현실을 피하려고만 했던 내 태도를 되돌아 보게 만들었다.


그는 작품이 사회적 메시지를 담고, 소외되고 억눌린 목소리를 대변할 수 있는 창구가 되길 바란다고 했다. 하나의 작품이 사회를 바꾸지는 못하더라도, 사건을 다양한 시선으로 바라보게 만드는 것이야말로 예술의 본질이라고 강조했다.


현실에 지친 나는 예술은 단순히 쾌락이나 위로를 주는 도피처로만 여겨왔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진정한 예술이란 때로는 현실을 직시하게 만들고, 질문을 한다. 이번 공연이 내게 던진 질문과 마음의 파동을 오래 기억해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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