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정 [완전한 행복] 감상문
몇 년 전 정유정 작가의 악의 3부작인 [7년의 밤], [종의 기원], [28]을 몰아 읽은 뒤, 작가 특유의 생생한 묘사에 압도되어 한동안 인물들의 감정 속에 깊이 빠져 허우적거렸다. 그 여파로 정서적 휴식을 위해 의도적으로 그의 작품을 멀리해 왔다.
오랜만에 선택한 그의 작품은 욕망 3부작의 첫 시작인 [완전한 행복]이었는데, 고유정 사건을 모티브로 하는 무려 524쪽에 달하는 두꺼운 분량의 스릴러 소설이었다. 과거보다는 단단해진 멘탈과 산전수전(?)의 경험이 더해져서 소설 따위에 휩쓸리지 않겠다고 자신했지만, 쉴틈없이 몰아붙이는 전개에 어김없이 과몰입하고 말았고 그날 밤은 되강 오리가 소리가 들리는 반달늪에서 쫒기는 악몽을 꿧다.
완전한 행복을 꿈꾸는 나르시스트
주인공인 유나는 자신의 삶에서 발생하는 불행 요소들을 직접 제거하며 행복한 인생을 완성하려고 하는 나르시스트이다. 자신이 꿈꾸는 완전한 세계를 만들기 위해 강박적으로 주변의 상황과 사람들을 통제하려고 하고, 그 제거의 희생양들은 가장 가까운 가족들이었다.
역행하는 소설의 구조상 소설 속에서 발생하는 모든 사건의 범인은 유나인 것을 처음부터 유추할 수 있지만, 이 소설은 범인을 찾는 단순한 스릴러 소설이 아니었다. 많은 사람들이 정답을 찾아 헤매는 '행복'의 조건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무결한 행복'의 달성 가능성에 대해서도 고민하게 만든다.
우리는 타인의 행복에도 책임이 있다.
유나는 어린 시절 자신에게 트라우마를 주었던 원인부터, 완벽한 연애, 행복한 결혼 생활에 방해가 되는 타인을 제거하는 방식으로 자신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결국엔 또 다른 방향에서 삶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는 타인으로 인해 파국을 맞이하게 된다. 자신만의 행복을 위해 타인의 행복을 짓밟았던 대가를 치르게 된 것이다.
행복은 덧셈이 아니야. 행복은 뺄셈이야.
완전해질 때까지 불행의 가능성을 없애가는 거.
작품은 ‘완전한 행복’이란 결국 존재하지 않으며, 인위적으로 만들어내는 나만의 행복의 결과엔 책임이 뒤따른 다는 점을 날카롭게 지적한다. 작가의 말처럼 우리에겐 행복할 권리도 있지만, 타인의 행복에 대한 책임도 함께 있는 것이다.
'행복 강박증'에 시달리는 시대
각자의 조건과 환경 속에서 최선의 행복을 찾던 과거와는 달리, 온갖 매체를 통해 행복 이미지가 과잉 노출되는 사회에서 '완전한 행복'의 정답을 찾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어떤 순간에는 달성이 어려워 보이는 호화스러운 행복을 보여주며 열성을 다해 그것을 달성하는 것만이 행복의 완성이라고 말하기도 하고, 또 다른 순간엔 출근길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모금이나 퇴근 후 맥주 한 잔이 행복의 전부라고 말하기도 한다. 인스타그램 스토리엔 당일의 소소한 행복 인증이, 피드에는 목표를 달성하여 행복하고 성공한 삶을 사는 나를 자랑하는 내용이 가득하다.
그러나 사실 우리 모두는 알고 있다. 행복에 대한 절대적인 기준과 정답을 정할수록 삶에 대한 만족도는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행복 그 자체를 목표로 살아가는 것은 실제 하는 삶을 객관적으로 인지하지 못하고 허상을 좇는 것뿐이라는 사실을.
행복라이팅에 지친 현대의 우리들에게 필요한 것은, 불완전하고 서러운 삶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 속에서 작은 기쁨을 찾아가는 태도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