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주전 '슬립노모어'라는 Immersive 공연(관객 참여형 체험극)을 관람하였다. 아무 사전 정보도 없이 보러 갔다가 여러모로 문화 충격을 받았지만, 공연이 끝나고 한참이 지나서까지도 가슴이 두근거릴 만큼 흥분했기 때문에 나의 '취향'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을 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이 빠르게 변하는 세상과 콘텐츠의 홍수 속에서, '트민녀'를 추구하는 나의 취향과 사고방식은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기록으로 남겨두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정기 시리즈물로 도전해보고자 한다. (과연...)
25년 상반기의 공연 : 슬립노모어
서두에서 언급되었던 '슬립노모어' 공연에 대한 소회를 이어보자면, 대체로 덤덤충인 내가 '와 세상에 아직 재미있는 거 많네'라고 느낄 만큼 강렬함을 주었던 경험이었다. 건물 6층을 통째로 누비며 배우와 스토리를 직접 찾아가는 경험은 상상해 본 적도 없었고, 누구든 순식간에 몰입할 수 있을 정도로 실감 나게 구현된 무대 장치와 배우들의 열연은 공연 내내 '미쳤다... 끝내준다...'라는 혼잣말을 되뇌게 만들었다.
공연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최소 2번은 더 봐야 할 것 같은데 손 떨리게 비싼 가격은 불호 포인트 ㅠㅠ
방탈출 게임을 좋아하고, 대탈출류의 콘텐츠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최고의 도파민을 느낄 수 있는 공연일 테니 츄라이해보시길 -
25년 상반기의 여행 : 구례
올 상반기는 심란한 마음을 핑계로 유난히 많이 돌아다녔지만, 3월 초 도망치듯 떠났다가 마음의 평안을 얻고 돌아왔던 구례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힐링을 하기에는 아직 꽃도 피지 않은 쌀쌀한 날씨였지만, 자세히 보아야 보이는 새싹들과 꽃봉오리들이 역설적으로 희망을 주는 것 같다고 느꼈던걸 지도 모르겠다.
고즈넉한 사성암도 좋았고, 슴슴한 사찰 음식도, 뜬금없이 나타나는 힙한 카페들도 모두 좋았다. 여행의 하이라이트는 비구니 스님이 호스트인 에어비앤비였는데, 고민 상담을 기대했던 차담 시간에 역으로 스님의 에어비앤비 사업 마케팅 상담을 해주면서 현실로 빠르게 복귀할 수 있었다.
그렇게 수행을 하는 스님도 현실의 고민과 무게를 벗어나기 힘든 것인데 한낱 중생이 뭘 어쩌겠는가. 그냥 버텨야지.
25년 상반기의 유투버 : 정서불안 김햄찌
3개월 만에 50만의 구독자를 모은 슈퍼 루키 캐릭터이자, AI로 만든 캐릭터나 가상아이돌 등의 인기를 신기하게 생각했던 내가 처음으로 호감을 가진 콘텐츠였기 때문에 상징적인 의미로 픽해보았다. 김햄찌는 1분 내외의 짧은 콘텐츠 안에 직장인들이 공감할만한 에피소드와 최신 유행어들을 깜찍하고 시니컬하게 풀어낸다.
김햄찌 이전 이후에도 동물이 주인공인 AI 콘텐츠는 너무나 많지만, 김햄찌가 선보이는 스토리 라인과 센스는 독보적이기 때문에 AI가 아무리 발전해도 아직까지는 감독 역할을 하는 '사람'의 능력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체감할 수 있다.
또 흥미로운 점은 폭발적으로 인기가 많아진 캐릭터지만, AI로 생성된 캐릭터이기 때문에 카카오 이모티콘 제작도 불가하고 마케팅에도 일부 제약이 있다는 점인데, 앞으로 쏟아질 더 많은 AI 캐릭터들에게 이런 허들들이 어떻게 사라져 가는지 세상의 변화를 지켜보는 것도 관전 포인트일 것 같다.
25년 상반기의 영화 : F1더무비 / 드래곤 길들이기 4D
'4D 아니면 영화관 안가' 병에 걸린 나에게 올 상반기 최고의 만족감을 주었던 영화들이다. 최근의 4D 영화들은 단순히 의자가 흔들리는 수준을 넘어서 물, 바람, 불, 향기, 연기까지 총 동원하여 상영 내내 엄청난 몰입감을 제공하고 있는데, 실제로 드래곤 길들이기의 바다 비행씬에서는 물과 바람을 활용한 실감 나는 연출에 실제 투슬리스를 타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어 살짝 눈물이 나올 뻔도 했다.
F1 더무비에서는 경기 중 사고 장면이 특히 인상 깊었는데, 몸이 공중에 뜰 정도로 엄청난 충격 효과와 함께 의자는 뜨거워지고 극장 앞부분엔 연기까지 자욱해서 이러다 진짜 영화관에 불이 나도 효과인가 보다 하고 안 나갈 거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OTT의 발전으로 영화 산업이 위기라고는 하지만, 영화관에서만 줄 수 있는 이러한 새로운 경험이 지속적으로 제공된다면 영화관은 단순 관람 공간을 넘어 테마파크의 어트렉션 대체할 수 있는 특별한 공간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