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강명 [먼저 온 미래] 감상문
그렇다. 이번 글의 주제 역시 AI와 인간이다.
(이쯤 되면 이 브런치는 AI시대에 점점 불안해지는 인간의 변화에 대한 사료로 써도 될 지경이다.)
[AI이후의 세계를 경험한 사람들]이라는 흥미로운 부제를 달고 있는 이 책은, 2016년 알파고 대전 이후 바둑계에서 일어난 변화를 출발점으로 앞으로 우리가 맞이할 서늘한 미래를 그려 낸다. 저자는 오랜 시간 인간이 소중히 여겨온 가치, 재미, 인간성, 창의성과 같은 개념을 다시 묻는다. 그리고 이러한 추상적 가치들이 인공지능 시대에 어떻게 재정의될지, 그 변화의 방향은 과연 바람직한지 탐색해 나간다.
내내 불안핑 같은 질문을 던지더니 결론은 인간 파이팅으로 끝난 저자의 고민에 동의하기도, 의문을 가지기도, 새로운 인사이트를 발견하기도 했다. 물론 선택권이 제한된 미래의 삶과 존재 이유를 고민하는 시간에 새로운 AI 도구를 하나라도 더 익히는 편이 생계에는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질문은 변화의 한가운데에 있는 인간만이 던질 수 있는 것이며, 그러한 지점에서 충분한 의미를 가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토템이 무너질 때
"인공지능을 사용하지 않더라도, 인공지능을 사용하는 다른 사람들 때문에 내가 추구하는 가치가 변하고 뒤바뀐다. 나를 둘러싼 기술- 환경이 바뀌기 때문이다."
알파고 이전의 바둑은 흔히 ‘예술’의 영역으로 여겨졌다. 단순한 승패를 넘어, 기사들이 만들어내는 창의적이고 독창적인 대국의 흐름 자체가 감상의 대상이었다. 그러나 AI의 포석이 새로운 정석으로 자리 잡은 지금, 바둑은 점점 예술이라기보다 정답을 풀이하는 게임에 가까워지고 있다. 기사 개인의 논리와 감각보다 AI가 제시한 수가 더 의미 있는 기준으로 받아들여지는 흐름 속에서, 일부 바둑계 인사들은 인공지능이 바둑의 예술성을 훼손했다고 말한다.
예술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 또한 비슷하다. 사무직 종사자가 ChatGPT로 작성한 보고서나 개발자가 Claude를 활용해 짠 코드에 대해서는 관대하면서도, 일러스트·웹툰·음악 같은 창작물에 AI가 개입하면 여전히 민감하게 반응한다. 이는 우리가 인간의 창의성과 고유성을 일종의 ‘토템’처럼 여겨왔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토템은 이미 균열을 드러내고 있다. 인간만의 고유한 가치와 권한, 주권에 대한 개념은 생각보다 빠른 속도로 재편되고 있다. 그 파급력에 비해 이를 성찰하고 견제할 제도적·사회적 장치는 아직 충분하지 않다. 우리가 무엇을 지키려 하는지, 그리고 무엇을 기꺼이 넘겨주고 있는지에 대한 논의가 필요한 시점인 것이다.
인간의 비즈니스
"인간 소설가의 영역은 인공지능이 잘하지 못하는 일로 축소된다. 그런 때 인공지능이 팔 수 없는 걸 내가 팔 수 있다면 든든하리라. 그리고 내 머리에는 나만이 팔 수 있는 상품으로 '내 사생활'이라는 답이 떠오른다."
인공지능이 압도적인 실력으로 점령한 바둑계에서, 이제 승부 자체는 예전만큼 절대적인 의미를 갖지 못한다. 아무리 노력해도 넘기 어려운 실력의 격차 앞에서 바둑계는 부흥의 조건을 다시 ‘인간’에게서 찾는다. 바둑판 안팎에서 프로 기사의 희로애락을 드러내고, 개인에게 열광하고 몰입할 수 있는 팬덤을 구축하는 방향으로 전략을 전환해야 한다는 것이다. 인공지능으로 인해 약화된 프로 기사의 위상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결국 인간만이 보여줄 수 있는 가치를 전면에 내세울 수밖에 없다.
실제로 미래에 살아남을 직업을 다루는 여러 전망에서도 상위권에는 인간의 신체성과 드라마가 중요한 직업군이 자리한다. 스포츠와 연예 산업에서 사람들을 움직이는 것은 단순한 결과물이 아니라, 그 과정에 담긴 노력과 서사다. 앞으로 AI가 완성도 높은 문학과 음악을 끊임없이 생산해 낼수록, 인간이 내세울 수 있는 가치는 ‘인공지능이 대신 팔 수 없는 것’으로 수렴할 것이다.
물론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가 단순히 각 산업이 스토리와 팬덤 중심으로 전략을 재편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그는 왜 산업의 구조와 인간의 삶의 방식이 AI 기업에 의해 재편되어야 하는지, 기술이 우리의 가치 판단까지 바꾸는 일이 과연 바람직한지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가치가 이끄는 기술
"가치의 근원에 대한 문제, 기술을 통제하는 방법에 대해서도 누군가가 근사한 아이디어를 낼 수 있지 않을까?"
기술과 과학의 발전이 우리에게 가져다주는 가치는 언제나 옳은 방향일까.
CCTV가 촘촘히 설치된 사회는 과거보다 더 안전해졌다고 말할 수 있을까. 항생제와 노령연금은 노후에 대한 불안을 완전히 덜어주었는가. 우리는 이전 세대보다 덜 외롭고, 덜 우울하며, 더 충만한 삶을 살고 있는가.
우리는 인문학적 성찰 없이 경제적 효용과 시장의 논리에 따라 선택적으로 발전해 온 기술을 당연한 진보로 받아들여왔다. 그러나 기술이 향하는 방향이 곧 우리의 삶의 방향이 되는 시대일수록, 무엇이 ‘좋은 삶’인지, 무엇이 지켜야 할 가치인지에 대한 고민은 더욱 중요해진다.
더 나은 미래를 믿고, 그것을 구체적으로 상상해보는 일은 여전히 인간의 몫이다. 인공지능과의 공존이 정해진 어쩔수 없는 미래에서 효율을 계산하고 최적의 정답을 도출하는 일은 그들이 더 잘해내겠지만, 어떤 미래를 바랄 것인지 결정하는 일까지 대신할 수는 없다. 결국 기술을 이끄는 것은 데이터가 아니라 가치이며, 그 가치를 꿈꾸고 선택하는 일은 여전히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영역으로 남아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