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말, 3박4일의 짧은 일정으로 생애 첫 중국 땅을 밟았다. 목적지는 상해.
깔끔떠는 한국인의 유구한 편견으로 내 생에 자발적으로 중국을 여행할 일은 없다고 생각했었지만, 무비자 정책 이후 인플루언서들의 컨텐츠 공습과 하루가 멀다하고 쏟아지는 주변인들의 본토 음식 간증에 못이기는척 대륙행 비행기를 예매하고 말았다.
그저 미식 여행만을 기대했던 기획자 파인은, 언제나 그렇듯 또 노예 근성을 버리지 못하고 이런저런 인사이트를 메모하기 시작했다.
슈퍼앱 알리페이
최근 한국인들의 상해 여행 코스는 너무나도 전형적이었기에, 갈 곳을 정하는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러나 역시 가장 큰 걸림돌은 고덕지도/알리페이/위챗 등 본토 앱의 사용법을 익히는 것이었는데, 카카오 왕국인 한국에서 여행이나 생활에 어려움을 겪는다는 외국인들의 심정을 단번에 이해할 수 있었다.
한국 번호로는 인증도 쉽지 않았고 영어로 기본 언어를 변경하면 사용 기능이 제한적이었기에 짜증이 나면서도, 한편으론 서비스 출시 때면 늘 리소스 부족을 핑계로 우선순위를 낮췄던 번역과 외국인 대응 일감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그 누구도 욕할 수 없는 심정으로 앱 이곳저곳을 눌러보며 열심히 사용법을 익혔고, 다행히 현지에서는 금방 적응하여 편리하게 앱을 사용할 수 있었다.
상해에서 더 이상 현금을 사용하지 않는 다는 사실은 미리 알고 있었지만, 그것보다 더 놀란 점은 결제 기능을 포함한 슈퍼앱들의 퀄리티였다. 많은 필수 앱들 중 특히 알리페이는 한글화도 잘되어있고 대중교통 결제와 택시 호출까지 커버하고 있기때문에 상시 실행 상태였는데, 앱이 커버하는 기능 대비 실행 속도도 빠르고 UI도 직관적으로 구성되어 있어 앱 사용에 어려움이 거의 없었다.
(위챗과 달리 알리페이는 기업에게만 미니앱의 입점을 허용하고 있다고 한다. 위챗보다 사용성이 좋은 이유 인듯?)
어떤 식당에 가서도 책상 구석에 QR만 스캔하면 주문부터 결제까지 일사천리로 진행되고, 사람이 북적거리는 가게 앞에서도 일단 출입문쪽의 QR만 찍으면 알아서 웨이팅도 걸어주고 이벤트까지 참여할수 있었다.
(주문하려고 카운터 앞에 서면 아무말도 하지 않고 그저 QR을 가르키는 상하이 MZ 직원들^^!)
알리페이 내부의 수십개의 미니앱은 마치 네이티브 앱처럼 유기적으로 실행되는데, 사용자 입장에서는 오프라인의 어떤 매장에 가더라도 서비스 이용을 위한 별도의 학습이나 인증을 하지 않고도 동일한 퀄리티의 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다. 사용자가 불편함 없이 사용하고, 공급자 입장에서도 손쉽게 영업하고 마케팅을 할 수 있는 생태계라면 이보다 더 좋을 수 있을까.
(물론 독과점 이슈야 있을 수 있겠지만, 편리하지도 않으면서 독과점인 앱들은 너무나 많다.)
조각난 디지털 일상에 대한 고민
한국에서는 일상적인 디지털 생활을 위해 카카오나 네이버를 비롯한 수많은 플랫폼의 앱을 설치하는 것이 일상이다. 하나의 브랜드 안에서도 서비스별로 앱이 나뉘어 있고, 서비스 간 연동성도 완벽하지 않다. 같은 브랜드의 앱임에도 불구하고 계정이 분리되어 있거나, 새로운 서비스를 쓸때마다 ID/PW 외에도 인증서, 공동인증, 간편인증 등 수많은 본인 확인 절차를 반복해야 하는 상황이 비일비재하다. 사용자는 어떤 서비스를 언제 어느 앱으로 사용해야 하는지 익혀야 하고, 업데이트나 정책 변경이 생길 때마다 적응해야 한다.
물론 카카오톡이나 네이버앱도 명실상부한 ‘슈퍼앱’이다. 두 앱 모두 하나의 앱 안에서 많은 기능을 제공하고, 정보 접근이나 콘텐츠 소비, 일부 결제 및 예약 기능까지 가능한 구조를 갖추고 있다. 하지만 모종의 이유(...)로 인해 실제로는 완전한 통합을 이루지 못하고, 같은 브랜드의 서비스라도 운영 주체가 분리되어 있는 경우가 많아 사용자는 그 복잡함을 감당해야 한다. 특히 외부 사업자와의 연결점이 필요한 상황에서는 이런 구조적 단절이 더 크게 느껴진다.
앱 하나만 익히면 생활에 필요한 대부분의 활동을 끊김 없이 이어갈 수 있는 슈퍼앱의 진짜 위력을 온몸으로 체감하고 나니, 원래는 크게 관심 없던 중국이라는 나라의 일상이 점점 궁금해졌다.
이토록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디지털 라이프를 누리는 사람들의 생활은 어떨까,
그 일상엔 또 어떤 방식으로 철학과 기술이 스며들어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