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다를 수 없는 나라> 크리스토프 바타유
'확신이 없기 때문에...'
어떤 일이든 나아지고 달라지는 것은 뭔가 내적 만족을 주는 것을 찾아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의지가 생기기 때문일 것이다. 다다르기 어려운 경지를 앞서 보여준 사람들을 부러워하면서 나도
추구하다 보면 조금은 그런 세계를 맛볼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했다. 그리고 능력의 차이가 있더라도
각자 고유한 삶이 있기에 비교할 수 없는 것이라고 스스로를 다독여 욌다. 몇 해 전 여름에 도서관
서가에서 책으로 여행을 떠나보려고 하다가 이 책을 만났다. 작가를 모르지만 오직 번역자인 김화영
교수를 보고 골랐는데 편집이 남달랐다.
소설의 무대인 베트남에 예수회 신부를 포함한 프랑스인이 최초 방문한 시기가 1620년이라면 꽤 오래전 일이다. 프랑스는 베트남 왕조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쳤는데 18세기 혁명 후 중국과의 관계로 인해
베트남이 기독교를 탄압하게 된 시기가 이야기의 배경이다. 원제 <Annam>은 과거(679년)에 중국이
직접적인 통치 아래 둘 수 없지만 지배력을 인정하기 위해 남쪽에 설치한 '안남 도호부'에서 따온 것이다.
베트남에 선교사로 파견된 수사와 수녀들은 본국에서 잊힌 채 생존해 나가기 위해 베트남 농부들의
삶에 완전히 스며든다. 그리고 교회라는 소명을 내려놓게 되면서 역설적으로 신앙의 기쁨을 깨닫는다.
"농부들은 복음서를 경청했다. 그리고 여전히 계속하여 그들의 옛 신들을 믿었다. 베트남은 어느 것
하나도 버리지 않은 채 다 간직했다. 그래서 모든 것이 영원 속에서 한데 뒤섞였다. 존재들은 논 위로
불고 지나가는 바람처럼 지나갔다. 논에 심어 놓은 벼가 그 즐거운 푸른색으로 허리를 굽혔다."
순수했고 생각이 깊었던 카트린느 수녀를 통해 참된 신앙인의 모습이 간결하게 표현된다. "그녀의 생활은
은밀했고 헌신은 소리가 나지 않았다." 그러나 내면의 공허가 점점 더 넓어지면서 모두 외롭고 지쳐간다.
신앙을 위해 모든 삶을 바친 존재와 삶이 벼처럼 뿌리를 내리지 못한 채 바람처럼 사라진다니 얼마나
시적이고 은유적인 표현인가! 가톨릭의 신을 받아들이는 내적인 변화는 없었다. 단지 스스로를 미미한 존재로 여기는 베트남의 농부들에게 온화한 미소로 다가온 서양의 선교사들이 그들처럼 똑같이
일하는 모습에서 신의 사랑을 느꼈을 뿐이었다. 그리고 밑바닥 삶에서 운명을 받아들이고 타인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는 베트남 농민들과의 만남이 이어졌던 것이다. 선교의 목적은 달성하지 못했지만 노동과 기도라는 수사와 수녀들의 생활은 가장 본질적인 것에 가까워지게 했다.
카트린느는 내면의 공허를 느끼면서 "하느님, 저에게 당신을 사랑할 힘을 주소서."라고 절박한 기도를
드린다. 고독한 생활에서 자신들의 마음속을 헤아려보는 방법을 배우게 되고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욕망이 점점 더 줄어들었다. "프랑스의 여러 도시에서 벌어지는 소란이 공연한 짓거리로만 여겨졌고 외관의
세계가 부질없어 보였다."
"물을 대놓은 평야가 까마득히 펼쳐져 있었고, 그 빛나는 초록색은 짙은 푸른색이다 못해 이내 하얗게
변해 버리는 하늘과 잘 어울렸다. 이른 시간이었는데도 벌써 더위가 짓누르는 듯했고 바람 한점 없었다."
"가느다란 안개비가 고원을 뒤덮었다. 영원히 그칠 것 같지 않았다. 허연 구름들이 가까운 산들은
밑바닥부터 끊어놓고 있었다."
마치 동양의 산수화 한 폭을 보는 듯하다. 이야기가 전개되면서 넓은 여백에 짧은 문장들과 절묘한 표현
들이 나온다. 더 이상 이야기할 것이 없다는 듯이 섬처럼 고립된 문장은 침묵의 공간처럼 적막한 존재를 비춰보고 있다.
그동안 살아온 인생으로부터 지워지고 농사꾼들처럼 살았던 그들 가운데 수사 도미니크와 카트린느는 살아
남았다. 종교적 확신들이 침식되어 갔고 오직 시편들과 기쁨만을 남겨 놓았다. 그들은 상대의 존재 속으로
빠져들어갔고 서로를 꼭 껴안은 채 잠들어 있었다. 선교사들의 흔적을 좇던 군인들은 두 사람을 찾아내고 어떻게 해야 할지 망설인다. 육체를 서로 나누는 법을 모르는, 눈이 매섭고 공격적인 남자들과 여자들로 기대했는데...
"바다는 찬란한 모습으로 푸른 바람을 끝없이 반사하고 있었다."
신의 자비는 한계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