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돌릴 수 없는 상실

<그림자의 강> 레베카 솔닛

by 명규원

우리는 자연으로부터 그 혼란스러운 아름다움으로부터 얼마나 멀어졌는지 모른다. 어디를 가나 잘

다듬어지고 가꾸어 놓은 자연을 접하게 된다. 보기에 좋기도 하지만 때론 엉클어지고 부서지고 나뒹구는

자연 그 자체를 찾고 싶어 진다. 책을 들춰보다가 뒤엉킨 것, 덤불이나 잡석 더미 같은 복잡하고 질감이 잘

드러나는 소재를 사랑했던 사진작가 머이브리지에 관심이 갔다. 물론 세계 최초로 말의 연속 동작을 찍은 업적으로 유명한 작가지만,

그는 원시적인 자연의 모습과 웅장함, 개척 시기 원주민의 모습, 제국주의 문명의 폐허 등을 기록으로 남기기도 했다.

지금은 물질적 대상보다 이미지를 선호하고 소비하는 사회가 되었다. 우리는 더 이상 '근원'이라는 문제로

속 썩 일 필요도 없다. 예술이라는 형식은 이제 대중문화에서 값싸고 이동 가능한 것이 된 지 오래다. 어느새

지식을 쌓거나 기억할 필요가 없어졌다. 검색하면 다 나오고, 각자가 지닌 스마트 폰에는 무수한 순간을 기록하고 추억을 간직한 장면들이 저장되어 있다. 기억의 확장일 수 있지만 마음에 남겨지지 않는 상실일 수도 있다.

그런데 본격적인 사진의 시대를 열고 영화의 시대를 앞당겨 이미지의 시대를 연 에드워드 머이어브리지를 얼마나 알까? 나도 이름조차 몰랐다. 바로 그가 말의 연속 동작 사진을 찍었고 사진으로 역사를 변화시킨 사람이다. 이 책을 통해 오늘날 화려한 이미지와 정보기술의 뿌리를 드디어 찾을 수 있게 되었다. 솔닛이 왜 그를 오늘날 할리우드와 실리콘벨리로 대표되는 '현대의 아버지'로 확장 해석하는지도.


1872년 모션 픽쳐(활동사진)를 개발한 "머이어브리지는 하나의 입구, 구세계와 지금 우리 세계 사이에 있었던 하나의 축이다. 그리고 그의 행적을 따라가는 것은 지금 우리를 있게 한 선택들을 따라가는 일이다."

기차와 전신, 사진은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벗어나게 하는 엄청난 변화가 시작되었다. 특히 시간의 강에서 낚아 올린 순간인 사진은 이미지를 대량 생산하게 하고 사라지지 않는 존재로 소유가 가능하며 물적 증거가 되었다는 점에서 근본적인 변화였다. 그런데 다른 한편으로 현실을 지워버리는 이미지의 힘이 크다는 사실을 간파한 사람들은 그 이미지를 조작하고 환상을 곁들여 권력과 금전적 이익을 얻게 되었다는 점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현대적 삶의 수수께끼 중 하나는 어떤 대상을 재현한 작품이 원래의 대상을 무시하는 사람들을 매혹시킨다는 점이다. 솜씨, 매체, 기술 자체, 어떤 해결책에 대한 약속 또는 그저 다른 사람들이 이미 돈을 내고 구경했기 때문일 수도 있다. "


레베카 솔닛은 '맨스 플레인(man+explain)'을 통렬하게 비판한 페미니즘 저자로 알려졌지만 이 책은

역사학자이자 사회학자로서의 면모가 가장 잘 드러난 역작이다. 사진의 역사와 철도의 발전이 미국 서부

캘리포니아(자신이 성장한 곳이고 자신의 일부로 받아들인 땅)에서 서로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고, 서로를

어떻게 가능하게 했는지를 알게 해 주는 매우 독보적인 책이다. 캘리포니아에서 시작하여 세상을 크게 바꾼 두 가지는 말과 카메라로 했던 실험들이다. 스탠퍼드는 대륙횡단철도를 개설하는 일뿐만 아니라 이동 수단

에서 탈락한 말에 대한 관심이 많았다. 그는 말을 잘 관리해서 경주에 내보내고 싶어 했고 스포츠 산업으로

만든 대형 목장주였다. 그래서 말의 연속동작을 찍는 머이어브리지의 사진 프로젝트를 후원했다. 과학과

산업의 일체화를 믿던 그가 세운 대학은 몇 세대 후에 실리콘벨리를 탄생시키게 되었다. 그러므로 미국에서 캘리포니아가 지니는 의미는 전 세계에서 미국이 지니는 의미와 같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


나는 어릴 적 서부영화에 나오는 카우보이가 멋있었지만 인디언들을 더 좋아했다. 과학과 기술의 발전,

세계관의 변화와 동떨어진 채 자연과 더불어 전통적인 방식으로 살아가는 모습이 흥미로웠다. 그들은

조상들의 영혼이 깃든 땅에서 전적으로 자유로운 삶을 원했고 보호구역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대부분의

원주민 공동체는 특별한 장소들과 이어져 있었고 그런 장소를 잃는다는 것은 힘과 영혼과 종교와의 관계가

끊어진다는 의미였다. 이 대목에서 그동안 '세계화'에 따라 '지역성'이 더 중요해지고 '장소성'이 의미를

갖는다는 담론을 잘 이해할 수 있는 실마리를 얻었다.


"풍경에 이야기가 새겨져 있었고 장소는 상징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었으며, 계절에 따른 행위들은 특정

현장과 뗄 수 없었다."


머이브리지는 요세미티라는 미지의 땅에 대한 무한한 가능성을 보여주면서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모든 이들을 만족시킬 이상적이고 탁월한 이미지를 제공했다. 그러나 마치 외로운 군인들이 벽에 걸어두는 배우들의 사진처럼 보이기도 한다. 사람과 깊은 관계를 맺고 있는 '장소'가 아니라 그저 갈망의 대상인 이상적 자연인 것이다. 원주민 모도크족에게 톨레 호수가 지니는 의미는 질적으로 완전히 다른 것이었다. 이미 자연의 경계가

사라진 현실이지만 그 친숙함, 양식, 주위에 쌓인 이야기 등 사진 속에 드러나지 않는 모든 것이 가치가 있었기 때문이다. 세상의 시작과 끝, 성스러운 시간과 관련되어 늘 같은 곳에서 지내왔던 모도크족 원주민 문화의 중심을 가진 세계관은 자연과 밀접한 '장소성'에 기인한 것이었다. 솔닛은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전쟁과 협상 과정에서 백인과 어울려 평화롭게 살기를 소망한 이유와 어떻게 대응했는지를 보여 주고 감정 이입하기도

한다. 그 당시 과학과 새로운 기술에 대한 열의가 컸던 시대적 분위기, 미지의 것을 위협이 아니라 도전으로

여기고 시간을 더 빨리 돌리고 얼른 지나 보내야 하는 것으로 여기는 조급증을 이해하지 않으면 머이브리지의 삶에 다가갈 수 없을 것이다.

영화관의 어둠 속에서 강처럼 흐르는 빛과 그림자가 만들어내는 이미지의 신세계가 어떻게 열리게 되었는지 이제 제대로 알았다. 솔닛은 빗줄기가 스크린에 투영되는 마법이 시작된 최초의 순간 속 그 배경과 이야기로 우리를 초대한다.


"사진은 그런 사회에서 가장 모순적인 발명품이었을지도 모른다. 그것은 단절을 통해 과거를 계속 유지하려는 기술, 늘 앞으로 나아가지만 또한 늘 뒤를 돌아보는 기술이었다."


미국에서 할리우드로 대변되는 영화가 세계적으로 영향을 마치고 새로운 문화 산업의 지위를 얻게 된 이유가 무엇일까? 캘리포니아의 다양한 자연환경과 위치 상 정부의 간섭을 덜 받는 자유로운 분위기나 파산할

경우 멕시코 국경을 넘기 쉬운 점도 작용했다. 또한 몰려다니며 비교적 값싼 오락문화를 찾게 된 대중들의

요구 때문이기도 하다.

이제 세상은 과학기술의 발전 속에서 시간의 중요성과 속도를 다투게 되었다. 인간 존재가 계속 앞으로

나아가기만 할 수 있을까? 캘리포니아의 서부시대라는 되돌릴 수 없는 과거를 마음에 담아두고 미래를 예측해보고 싶은 욕망과 맞았기 때문이 아닐까?


“인간은 보통 잃어버린 시간, 놓쳐버린 시간, 또는 아직 성취하지 못한 시간 때문에 영화관에 간다.”

- 안드레이 타르콥스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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