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망과 질시를 넘어서

양심과 자유, 책임은 어떻게 발명되었는가?

by 명규원

<개인의 탄생>, 래리 시덴톱


한때 선망과 질시(嫉視)의 대상이던 '서양'은 오늘날 비판과 반감의 대상이 되었다. 서양의 기독교는

우리나라에도 전래되어 일제시기를 겪고 6.25 전쟁을 치르면서 전통사회가 해체되고 짧은 시기에

근대화를 이루는데 큰 역할을 했다. 기독교에 기반한 서양문화는 무엇보다 신 앞에 모두가 '평등한 영혼'

이라는 자각을 갖게 만들어서 민주주의 체제를 수용하게 만들었다. 오늘날 우리나라를 비롯해서 세계의

많은 국가들이 자유롭게 왕래하면서 발전하고 풍요로운 사회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미국을 중심으로 한

'브레튼 우즈 체제'덕분이라고 한다. 하지만 미국의 우월한 힘과 지위에 대한 부정적 인식도 반대

급부적으로 널리 자리 잡게 되었다.

'기독교 세계'로 통했던 국가들에 대한 이런 경향은 911 테러를 비롯해 이슬람 극단주의 테러단체인 IS

(이슬람 국가)의 결집으로 표면화되었다. 이슬람 근본주의의 등장과 테러리즘은 종교법이 세속 영역을

배제한 우월한 것으로 만들고 또 여성들의 예속과 억압을 당연시하는 것이므로 세상을 위태롭게 하고

있다. 최근 공공장소에서 히잡을 착용하지 않은 젊은 여성들의 강제 연행과 죽음은 거센 반발과 체제 저항

운동으로 번지고 있다. 히잡은 이슬람의 역사만큼 오래된 것으로 모든 권리가 제한된 여성이 매매되던 풍습에서 정조를 중시한 것과 관련되어 있다. 이슬람 율법 샤리아로 통치하는 신정(神政) 정권은 구시대의 유물인 히잡 착용 등 여성을 남성의 부속품으로 전락시키는 차별정책을 강행해 왔다. 전근대적으로 신체와 표현의 자유를 탄압하고(도덕 경찰에게 끌려가서 두들겨 맞고 감옥에 갇히는) 히잡을 착용하지 않으면 강간해도 아무 처벌을 받지 않는 사회가 아직도 존재한다.

한편 세계에서 가장 큰 국가인 중국은 이런 세계 자본주의 경제의 혜택을 누리며 발전했음에도 불구하고

민주주의와 거리가 먼 공산주의적 전체주의 사회로 남아있다. 시진핑 현 공산당 총서기는 연임에 성공해서 권력의 초강력 집중으로 마국과 맞서려고 한다. 마오쩌둥(모택동)이 식량증산에 신경 쓸 당시 참새들이 쌀알을

먹는다고 손가락질해서 잡아 죽인 후 병충해로 흉작이 들고 무려 4000만 명이 굶어 죽기도 했다는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공산당의 숙청은 지금도 자행된다. 중국의 통치 이데올로기는 중국 중심의 패권을 노리면서 약소민족의 독립에 대한 요구는 과거 티베트를 무력으로 짓밟았듯이 신장 위구르 지역 역시 거대한 강제수용소를 통해 억압하고

있다. 중국은 여전히 정의나 인간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에 대해서 아무런 거리낌도 없다. 한동안 계속된

홍콩 시위는 영국식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를 경험한 사람들이 더 이상 자유를 빼앗길 수 없다는 절박한 행동이고, '하나의 중국'이라는 이념과 통치 스타일에 대한 저항이었다.

중국이 이란 석유의 최대 수입국이고 북한과 함께 정치적으로 가깝다는 사실은 노골적인 미군 공격과 상당히 잔혹한 행위를 일삼던 이란 군부 지도자에 대한 몇 년 전 미국의 응징으로 드러나게 되었다. 북한과 마찬가지로 이란은 핵무기를 추구하며 세계를 위협하는 국가다. 중동지역의 테러단체를 지원해 온 이들은 1500여 명의 자국민도 학살했다고 한다.


오늘날 모든 인간이 평등하고 존엄하다는 생각과 자유가 보장되어야 한다는 것을 부정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마치 공기처럼 당연하게 여기는 사실이지만, 백여 년 전만 해도 우리나라는 신분질서에

따른 노예제도가 있었다. 지금도 북한은 조선 시대의 연장으로 혈통과 성분에 따른 계급사회를 유지하고

반인륜적인 독재자가 전권을 휘두르는 나라다. 탈북민들의 증언을 통해 알 수 있듯이 북한 주민 대부분은 노예나 다름없이 살고 있다.

그런데 민주 사회와 정치의 근간이 되는 정신은 서양의 기독교 전통에서 왔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고대 사회는 가족과 집단을 우선시했기 때문에 관습을 중요시하고 개인의 자유나

선택은 생각하기 어려웠다. 기독교 사상의 핵심은 '신 앞에 홀로 선 개인'이라고 할 수 있다. 한마디로

'양심의 중요성'을 의식하게 되면서 개인이 도덕적 행위자로서 사회적 역할을 하게 된 것이다.

서양에 대한 선망과 질시를 넘어서 인류 문명이 이루어 온 가치를 지키고 공유할 필요가 있다. 우리도

민주주의를 실현할 역량이 미성숙한 단계에서 서구의 민주주의를 올바른 정치체제로 받아들이고

발전시키기 위해 노력해 왔다. 그러나 얼마 전까지 우리나라는 조작과 선동으로 정권을 잡은 무리들이

자만과 속임수로 권력의 견제 기능을 마비시키며 악행을 일삼았다. 인간으로서 가장 기본적인 도덕적

능력이 없는 지난 정권은 우리나라의 발전을 가로막고 특정 이념과 이해관계를 따라 움직였다. 중국과 북한의 눈치를 보고 나라를 통째로 넘기려 하는 것이 아닌지 의심스러웠다. 아직도

국회를 장악해서 직권을 남용하고 국민을 우롱하고 있으니 참으로 개탄할 일이다.


공정한 경쟁의 법칙을 깨고 좀 더 유리한 위치에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고자 하면서도 조국처럼 스스로를 정의롭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있다. 행동은 자유지만 책임이 따른다는 기본을 무시하면 사회가 제대로 나아갈 수 없다. 다른 사람의 수고와 고통을 모른 채 하고 쾌락을 누리거나 자기 잇속만 차리면 될까? 살아가는 동안 진실을 추구하고 고귀한 목적을 위해 노력하는 것보다 더 보기 좋고 유익한 것이 있을까?

개인의 생명과 자유는 보장되어야 하고 거짓과 불법은 법의 심판을 받아야 한다. 이란과 북한뿐 아니라 모든 영혼의 운명에 대한 걱정이 앞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