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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규원 Dec 11. 2022

오직 진실만이

<바로크와 '나'의 탄생 -햄릿과 친구들>, 윤 혜준 /문학동네

오늘날 우리 사회의 문제와 인간의 영혼을 구원하는 길을 생각할 때 무엇이 중요한가?

왜 바로크와 연결해 보아야 하는가?


그 시절 청춘기는 터널에 갇힌 채 출구가 보이지 않아 힘들어했다. 괴테가 <파우스트>를 통해서

"영원히 여성적인 것이 인류를 구원한다"라고 한 말이 빛을 던졌다. 사회변혁이라는 당위성 앞에

스스로를 부정하며 시대적 '의무'의 자동 기계로 되어갈 때, 그 말이 뭔가 출구를 열어 주었다.

당시 나는 사회주의 이념에 경도되어 자신을 역사의 톱니바퀴에 부속품처럼 여기며 중성적 존재로

살았었다. 영혼이 고갈된 나머지 실존 자체가 위태로운 지경으로 내몰린 상황까지 갔다.

가까스로 내 안에 있는 '여성성'을 인정하고 회복하면서 마침내 삶을 감내할 수 있는 길을 찾게 되었다.

바로 생명체를 돌보고 보살피는 능력과 상대의 욕구에 민감하게 소통할 수 있는 모성적 자애로움을

지닌 존재로 나를 회복하고 성숙해가면서 사랑할 수 있었다.


세월이 많이 흘렀고 바라던 변화가 어느 정도 이루어졌다. 그러나 세상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변화를 주도했던 세력들이 타락해서 온통 거짓 투성이고 위선과 기만이 판치고 있다. 인생에서

진정으로 좋은 것, 이름다운 것, 소중한 것들이 가치를 잃고 있다. 자유, 정의, 인권, 민주주의를

위한 그동안의 고생이 빛없이 되고 말았다. 중요한 이념들이 오래된 책처럼 종이가 바래져서 누렇고

볼품 없어진 채 책장 맨 아래쪽 구석을 장식하는 것 같다.


'바로크'도 이처럼 이미 다 알고 있고 지나간 것들이라 꺼내서 확인할 필요도 없어진 것인가?

앞길의 전망도 어둡고 뒷길도 지옥이었다면 어디로 가야 할까? 머뭇거리고 주저앉아 있으면

구세주라도 나타난단 말인가? 어떻게든 빠져나갈 방법을 찾고 살아야 하는데, 누군가가 아니라

내가 해야 한다. 집단의식에서 벗어나 개개인이 각성할 필요가 있다. 언제나 그랬듯이 출구는 어쩌면 외부가 아니라 우리 마음속에 있는지 모르겠다.

괴테도 오직 진실만이 우리를 구할  있다고 했다.


내 영혼과 모두를 구할 수 있는 길은 진실밖에 없기 때문이다. 비록 불편하고 아무리 잔혹한 것일지라도

사람은 진실을 받아들여야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가능하다. 오래전 바로크 시대를 살면서 이와 비슷한

한계를 느낀 사람들의 심정도 그랬을 것이다. 17세기는 종교적 진리의 절대성이 깨어져 버린 시대였다.

신대륙이 발견되고 천문학이 발전하면서 지금껏 알고 있던 세상과 세상의 범위도 변했다. 근대 과학의

영향으로 더 이상 지구조차도 신이 창조한 우주의 중심이 아니라는 사실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오랫동안 믿어왔던 상식, 관습, 종교, 진리 등 가치관에 대한 의심과 혼란을 느낄 수밖에 없도록 만들었던 시기여서 허무와 절망, 두려움도 컸을 것이다.


이러한 혼돈과 허무 앞에선 개인의 자기의식은 “나는 무엇을 아는가?”라는 몽테뉴의 유명한 명제 속에서

다시금 울려 퍼진다. 영원하고 절대적인 것이 존재하지 않으며 변화한다는 점과 그것이 인간 존재의 가장

절대적인 한계라는 것을 깨닫게 되는 순간, 허무가 생겨난다. “죽음을 기억하라."라는 냉정하고 엄정한

말 역시 인간과 인간의 시간의 한계, 운동과 변화의 끝에 대한 인식을 반영하며 ‘바니타스’ 회화로 나타났다.


나는 이 책을 통해 종교개혁이 바로크의 원천이라는 사실을 새로이 알게 되었다. 햄릿은 존재와 구원,

죽음, 내세의 문제를 자기 스스로 판단하고 해결해야 하는 종교개혁 및 그 이후 시대 ‘나’의 고독과 번민을

독백의 형태로 표현하고 사색한다. 여기서 독백은 해결까지는 아니어도 그 부담은 해소하는 기능을 한다.


독백은 나 홀로 심원한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중재자를 제거한 종교개혁과 밀접한 연관성이 있다.

햄릿은 대학 친구 호레이시오에게 “우리 삶의 방향을 정하는 것은 신성한 영역이다"라고 말하는데,

하느님의 예정과 섭리는 개신교 신학의 바탕을 이루는 중요한 요소이다.

“참새가 떨어지는 데도 특별한 섭리가 있는 법일세”라고 자신의 믿음을 고백한다.


햄릿이 “나는 정말 막돼먹은 농노나 다를 바 없지 않은가?”라며 신속한 행동을 취하지 않는 심리를

반성하는 것도 개인이 ‘하느님 앞에서 자신을 성찰하는(coram deo)’개신교적 모습이다. 자신이 주저하는

이유를 비겁함이 아닌 ‘유령’의 신빙성 문제와 결부시킨 것 또한 온갖 중세적 미신을 타파하고 믿음의

영역을 오직 성서에 근거한 합당성 및 이성적 합리성의 범주로 제한한 종교개혁과 무관하지 않다.


‘나는 누구인가?’는 “To be, or not to be”의 또 다른 의미로 ‘to be what’, 즉 ‘남들이 원하는 내가

될 것인가(복수의 화신) 아니면 말 것인가?’를 함축한다. 문제 제기와 해답의 모색이 대답으로 이어지지

못해도 그 과정 자체가 ‘대안’이 될 수 있는 세계는 몽테뉴의 <수상록>(제목을 말뜻 그대로 옮기면,

‘탐색’,‘시도’)에서 지속적이고 반복적인 글쓰기로 구축된다. 종교개혁의 여파로 칼뱅파 귀족들과 정통

가톨릭파 귀족들 간 왕권을 둘러싼 무력 충돌이 본격화되기 시작한 1562년에 루앙 포위 전투에 참여했던 군인이자 ‘파를망’(최고 의회 겸 법원)의 일원이고 보르도 시장에 선출된 정치인으로서 몽테뉴는 전통적

질서를 유지하려는 쪽이었다. 시대적 혼란과 전쟁의 참상을 겪었고 평생 소중한 벗 에티엔 드 라 보에시를 잃었다. 영혼의 교감을 나눌 수 없는 상태가 되자 침묵과 고독 속에서 ‘나를 찾으려는 시도들’을 하게

되었다. 우정은 “나 자신보다도 더 확신을 갖고 그에게 나 자신을 맡겼을 정도였다"라는 이상적인 ‘(luy)’는

나를 맡기고 쉴 수 있는 피난처이자 나의 참된 ‘집’, 절대자이면서도 인간인 내가 닮아가야 할 이상적인 나, 예수 그리스도로 나아간다.


몽테뉴가 신념과 실행 사이의 거리를 너무 쉽게 좁혀버린 종교전쟁 시대를 비판하면서 자신의 생각과

견해를 절대화할 수 없기에 머뭇거리고 주저하는 것은 고유한 ‘나의 몫’이 무엇인지 행동의 정당성을

회의하는 햄릿과 같다.


“그 영혼 전체가 악으로 기울어 있기 마련인 인간이 선한 의지를 갖는다는 것은 순전히 은총 덕분”

이라고 종교개혁자 칼뱅은 <기독교강요>에서 말한다. 믿음은 은총이고 하나님의 일방적 선물이라고

할 때 나의 믿음이 진짜인지 철저한 회의로 해결해 보려는 데카르트의 <성찰>은 생각하는 존재로서

인간 ‘나’를 인식한다. 나의 신체와 감각을 포함한 모든 대상의 ‘있음’을 의심하는 순간 생각 속에서

그러한 의심을 하는 ‘나’는 분명히 ‘있었음’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런데 ‘생각하는 어떤 것’으로서 존재하는

나의 생각은 참인가? 그것이 진실이라는 보장은 ‘나’가 아닌 초월적 존재가 해주어야 한다.


나는 세상을 만들지도 않았고 ‘생각하는 나는 있는 나이다’는 생각도 내가 만든 것은 아니다. 만약

“내 생각 중에 어떤 것이건 그 객관성이나 사실성이나 완결성”이 워낙 뛰어나고 분명하다면, 그 생각의

원천은 의혹과 회의에 시달리는 ‘나’ 일 수 없을 것이다. “내가 이 세상에 홀로 있는 것이 아니라, 나 말고

또 다른 존재가 그러한 생각의 원인으로 존재한다."라는 증거가 된다. 감각적 세계, 내 신체, 외부 대상

모두를 철저하게 회의할 수 있는 ‘나’는 절대적 ‘무’를 사유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절대적 무한성을 사유할

수 있다. 나아가 ‘나’는 절대적 하느님의 존재를 생각할 수 있다.


“내가 의심하고, 뭔가 내게 부족함을 인지하고 이를 아쉬워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눈에 보이는 실상이

허상일 수 있다는 의심은 왜 하는가? 그것은 보다 높은 차원의 실체, 보다 완벽한 존재의 가능성을 감지

하기에 가능한 것 아닌가? 데카르트는 ‘하느님’이란 말을 무한하고 영원하고 불변하고 독립적이고 전지

전능한 실체로 이해한다. 나와 존재하는 다른 모든 것이 존재한다면, 그로 인해 창조되었다고 생각하는

실체인 것이다. 나는 불완전한 속성인데 하느님에 대한 개념이 내 정신 속에 들어올 수 있음을 보면 완전

하고 모든 결함으로부터 자유로운 존재가 있음을 인지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데카르트적 ‘코기토’에서 신으로부터 독립하여 인간 이성에 합당한 세계를 구축하려는 의도가

잘못된 방향으로 나가고 말았다. 서양철학은 존재론을 출발점으로 "나는 생각한다"에서 지식과 앎은

대상을 조종할 수 있는 나의 '자유'와 '힘'의 행사가 되어버렸다. 인간은 인격적 개체로서 고유한 의미를

상실하고 익명적 질서의 부분이 되었다. 바로 나치에 의한 유대인 학살은 전체성 속에 개체로 흡수된

타자의 비극, 데카르트가 주체로서 나를 자각할 때 신을 전제한 것과 다른 결과를 낳게 된 것이다.


아무튼 우주와 물리를 수리적으로 탐구하고 계몽주의의 원조로 숭배되는 과학자 데카르트가 반종교개혁

시대 칼뱅의 숙적이던 “소르본의 궤변론자들”에게 이 책을 헌정했다는 사실을 우리는 주목해야 한다.


바로크는 서양의 한 시대((16세기 말에서 17세기) 반종교개혁과 가톨릭의 부활, 절대왕정이라는 특수한

조건들이 만들어낸 문화, 예술, 사상의 경향과 구조를 지칭한다. 르네상스처럼 인간을 이상화하지 않고

인간을 있는 그대로, 원죄로 인해 망가져 있을 수밖에 없는 일그러진(‘바로크’한) 존재로 본 측면이 있다.

개혁 종교는 이러한 인간상을 인정하고 하느님 앞에 엎드릴 때 은총으로 일순간 구원에 이를 수 있다는

복음을 전한다. 바로크 시대 ‘나’의 에너지는 ‘나 홀로’ 만들어 낸 것이 아니다. 바로크적인 우울과 허무

속에 있는 ‘나’는 동시에 절대자 하느님을 의식했기에 개인으로 탄생할 수 있었다.

저자가 에필로그에서 말하듯 바로크는 지금, 여기의 문제다. 역사는 일회적이고 역사적 사실은 유일성이

그 특징이다. 그러나 연속성과 유사성도 역사의 속성이라는 점에서 역사는 '반복'한다는 것이다. 인간성과

인간 조건이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바로크는 과거의 이름이지만 여전히 이 시대는 인간의 재능에 도취

하고 투지와 야망, 욕망, 기교, 기술, 도전, 도발 등 ‘르네상스’적 유산을 물려받았고 동시에 그 폐해와 모순, 잔해와 파괴를 목도하는 ‘바로크’적 국면을 갖고 있다. 그러므로 ‘바로크’적 가치는 이 두 축 간의 갈등과

대립에 담겨 있다.

인간의 이성에 기초한 계몽주의나 합리주의적 시도만을 서구 근대사상의 주력으로 받아들일 때, 또 그것을

비판, 전복, 대체했다는 현대 사상들에 의지해서 과연 우리를 압도하고 위협하는 문제들에 대응할 수 있을까? 모든 가치와 질서를 해체해버리면 무엇이 남는단 말인가? 세상살이를 통해 빛과 어둠을 명확히 나눌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는 것처럼 르네상스와 바로크도 불가분의 관계다.


20세기 최고의 미술사학자 파노프스키는 바로크를 '르네상스 문명'의 단계 중에서 "내재적 갈등"을

은폐하거나 회피하지 않고 직시하는 가운데 그 모순을 "주관적 에너지"로 전환시켰던 국면으로 보았다.

근대적 인간은 이제 산업혁명으로 '인간과 자연' 대신 '대중'과 '기계'가 들어선 새로운 역사적 단계에서

'나'를 직시하는 자기 성찰과 독백의 용기가 필요한 것이다. 무엇보다 바로크는 현대사회를 사는 우리가

다시금 개인으로서 자기를 새롭게 만날 수 있도록 한다.

인간은 어떤 원리나 이념에 의해서 움직이는 존재일 수 없다. 오늘날 진짜와 가짜를 구별하지 못하고 가치판단이 전도된 사회에서 주체적인 '나'‘와 나’의 관점을 지니는 것은 너무나 시급하고 중요하다. 항상 진지한 자세로 살아가야 한다는 점에서 바로크는 지금도 유효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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