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신비
겨울 추위 속에서 크리스마스에 대한 기대와 기쁨을 나눌 준비가 되었는가? 세상 모든 사람들을 위한
크리스마스 분위기는 언제부터인지 사라져 가고 없다. 유년기에 각인된 따뜻하고 행복한 기억, 마음속에
크리스마스와 연결된 풍요로운 호수의 물이 말라버린 것 같다. 이 계절 아무런 관심도 감동도 흥미도
없이 그냥 지나간다는 것은 안타깝고 슬픈 일이다.
선하고 좋은 것을 경험해 본 적이 없는 사람은 사랑 때문에 신이 인간의 모습으로 우리 곁에 오셨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믿을 수가 없다. 키르케고르에 따르면 이 세상에 비천한 자의 모습으로 오신 이유는
어떤 인간도 자신은 제외되어 있다고 생각하지 않도록, 또 인간이 신에게 다가갈 수 있는 것은 인간의
명성이나 인간들 사이의 신망을 통해서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시기 위해서다.
그런데 과거 영국과 미국의 청교도들은 크리스마스 축제를 금지했다고 하니 놀랍다. 예수 탄생일이
12월 25일이라는 성서적 근거가 없기 때문이다. 그날을 평일로 지정해서 적발되는 사람에게 벌금까지
부과했었다고 한다. 당시 많은 주민들은 유럽의 오랜 전통에 따라 겨울 동지 축제를 구실 삼아 술에 취해
흥청거렸는데 크리스마스도 핑계가 되었다.
교회가 온갖 노력을 기울여도 그런 전통을 뿌리 뽑지 못하자 12월 25일을 기독교 명절로 전용하게 되었다.
'메리 크리스마스'는 이런 과정에서 무례한 민중이 술에 취해 고함치던 인사말이었다. 19세기 들어 이런
흥청거림과 세속적 산물이 분위기를 들뜨게 해서 소비를 부추기려는 상업주의와 만나게 되었다. 마침내
가장 선호하는 구호가 되어 전 세계로 퍼져나갔고 20세기 후반에는 기독교적 표현 대신 'Happy Holidays'로 바꾸게 되기도 했다. 'holiday'는 'holy day(성스러운 날)'에서 비롯된 것이긴 하지만.
기쁘고 즐거운 날을 서로 기억해서 축하의 인사와 선물을 나눈다고 세상이 좀 더 살만해지는 것은 아니다. 어쩌면 크리스마스는 동화에 나오는 이야기이고 동화 같은 세상을 꿈꾸는 사람들에게나 해당하는 것인지 모른다. 오늘날 물질적 풍요 속에 살게 된 사람들은 감정에 대한 경시, 기쁨에 대한 조롱으로 희망의 근원
마저 짓밟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아주 사소한 일이 세상에 미치는 영향을 간과할 수 없다. 크리스마스의
의미를 생각하고 기다리는 일들이 계속된다면 세상은 좀 더 평화로워질 것이 분명하다.
이천 년 전에 아주 작고 보드랍고 나약한 아기가 베들레헴에서 태어났다. 사가랴의 예언대로 어둠과 죽음의 그늘에 앉은 자에게 돋는 해가 위로부터 임하신 것은 하느님의 긍휼 하심 때문이었다. 참빛이 세상에 왔다! 예수의 탄생은 생명이 죽음보다 강하고, 사랑이 두려움보다 강하고, 희망이 절망보다 강하다는 사실을 보여준 사건이다. 우리는 그 역사를 통해 신앙의 근거를 갖는다.
크리스마스의 신비는 우리의 간절한 희망과 마음의 소원을 이루어주는 하느님의 역사가 바로 그 연약한 생명에서 시작됨을 깨닫는 데서 비롯된다.
사랑 때문에 신이 인간이 되었다. 사랑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치고 싶은 충동을 느껴 본 적이 없는
사람은 우리 가까이 온 하느님의 마음을 알 수 없을 것이다. 이런 깊은 사랑과 생명의 신비를 이해한다면 크리스마스는 영원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