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명규원 May 11. 2023

새로운 'mental habit'

<고딕건축과 스콜라 철학> 엘빈 파노프스키

책이나 신문에 실린 글이라고 그대로 다 믿어서는 안 된다. 거의 백 년 전 엘리엇이 쓴 <황무지>가

시에 대한 전체적인 이해도 없이 첫 줄만 반복적으로 유포되는 것이 답답해서 블로그에 글을 올리게

된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422행에 이르는 장황한 시에 대해 알지 못한 채 거듭 재인용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도 방대한 분량의 6권 중 첫대목(마들렌과 차에 관한)

이 잘 언급되곤 하는데, 직접 읽지 않고 재인용한 데서 실수가 발견되기도 했다.

그동안 내가 알고 있었던 것과 사실이 다르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이 가끔 있다. 몇 년 전 신문을 읽다가

미술 이론에서 '도상해석학'의 분야로 학문적 지평을 넓힌 파노프스키에 대해 다시 찾아보게 되었다.

과거에 읽었던 책에서 그가 독일의 부유한 가문의 장남이었으나 가업 계승을 포기하고 평생 원하는 책을

사달라는 조건을 내세워 동생에게 상속권을 넘겼고, 여러 분야의 수많은 책을 다 읽고 하고 싶은 공부를

마음껏 할 수 있었다는 것으로 기억하는데 아니었다!

독일 최대 무역항인 함부르크의 바르부르크 은행家의 3대 장남인 '아비 바르부르크'가 실제 인물이었다.

그는 오스트리아 제철업 재벌 가문의 자손인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처럼 빼어난 지성을 갖추고 예술과

학문이라는 정신적 가치를 발전시켰다. 문화사 학자이자  미술사학자로서 도상학(圖像學) 연구의 길을 연 인물이 되었다. 파노프스키는 그 '바르부르크 학파'에 속했고  <서양미술사>로 잘 알려진 곰브리치도 그

뒤를 잇는다.

파노프스키는 독일 하노버에서 태어나 미술사를 공부하고 함부르크 대학에서 강의하던 중 나치스의 유대인 공직 추방 때 미국으로 이주해 프린스턴 대학 고등연구소의 교수로 있었고 뉴욕대학에 미술학부를 만들었다. 이탈리아의 미술사가인 뵐플린이나 리글리의 형식주의가 미술작품의 내용적 측면을 배제하고 '시각의 역사'로 보는 입장과 다르게 그 시대의 정신에 따른 문화의 상징적 표현으로 이해했다.

"의미를 담지 않은 형식적 가치란 있을 수 없다."

이런 그의 주장은 양식(형식)의 변천보다 내용(의미)을 파악하는 것에 중점을 둔다. 예술작품이 정신적

산물이라고 할 때 미술작품의 대상물이 해당 문화의 관습과 결부되어 있고 특정 내용과 의미를 지닌다는

도상학의 관점에서 더 나아간 것이 도상해석학이다. 도상학적 분석의 목적이 관습적인 주제에 있다면  도상해석학은  도상의  본질적인 의미를 해석하고 그 내용과 형식 간의 관계를 종합적으로 연구한다. 그의 저서 가운데 <고딕건축과 스콜라 철학>(1951년)은 건축양식과 스콜라 철학을 통해 사회 현상과 예술작품, 역사학 등의 관계성을 논한 것이다. "스콜라 철학의 시기와 고딕 건축의 시기는 일치한다."라는 명제를 증명하기 위해 많은 문헌자료와 도판이 나온다. 스콜라 철학을 습성의 원인으로 또는 습성의 표현으로 간주하든 전성기 중세를 규정하는 역사적 사회적

심적 습성이 분명히 존재했다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서다. 건축가들이 사제들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고 건축 양식에는 당시 사람들의 '심적 습성'이 반영되어 있다. 이렇게 미술작품에서 작가의 정신과 경험을 읽어내는 것이 '도상해석학'이다.

과거 종교화나 신화를 주제로 한 그림은 인물과 사물의 코드를 알지 못하면 제대로 감상하기 어렵다. 또한 작가가 자신의 생각과 표현이 끼어들 여지가 적다. 그러나 작품에는 사회적 변화나 가치관의 변화를 반영하고 작가의 '심적 습성'이 나타나 있다. 작가의 정신과 경험을 읽어내는 도상해석학은 작품보다 작가에 더 초점을 맞추어 작품에 담긴 의미를 깊고 풍부하게 해설할 수 있는 이론적 토대를 만든 것이다. 예술품을 보는 시각 자체를 작품에서 작가로 바꾼 것은 중세, 르네상스, 현대 미술에 까지 유효한 접근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과거의 수많은 ‘창조적 행위’의 의미와 그 결과물(작품)의 의미를 작가의 인격과 더불어 이해하는 것이

해석이다. 그런데 시각 예술을 통해 주제 및 개념으로 표현된 당대의 보편적 성향이나 특성을 해석하기 위해서는

철학적 깊이는 물론 종합적 직관이 필요하다. 20세기 최고의 미술사학자가 인본주의 관점에 따라서 쓴 책과 그의 도상해석학은 독보적인 만큼 접근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 문제다.


우리가 이미 알던 지식이나 이론은 이제 별 가치가 없는 것으로 폐기될 지경에 이르렀다. 인간의 지능과

인식에 대한 언어학, 인지 심리학, 신경과학, 인류학, 철학, 인공지능 등의 다학문적 연구분야가가 통합한

인지과학은 주요한 학문분야가 되었다. 뇌과학이 심층심리학, 진화심리학보다 우세하다. 세상이 어찌나

빠르게 변하는지 따라잡기 힘들다. 생성형 AI인 챗GPT가 업그레이드되면서 폭발적인 관심사가 되고

있다. 수개월만에 지적된 한계들을 해결하고 대중화하고 있다.

새로운 것을 계속 받아들이려면 익숙하던 것에서 떠나고 버려야 한다. 요즘 직접 찾아보고 확인해야 직성이 풀리는 스마트폰 세대들과 살면서 아이들과 대화를 하다 보면 내가 알고 있는 것이 정말 맞는지 조심스러워진다. 아들에게 뭘 좀 설명하려 들면 동영상으로 보는 게 빠르다고 거절한다.


"세계를 이해하는 능력과 관련해서 사상 처음 세대 간  위치가 변환됐다. 많은 어른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반면, 청소년들은 현재 상황을 정확히 감지하고 돌아가는

상황을 어른들보다 더 빨리 포착한다."


사회학자 울리히 베크는 "우리가 사는 세상은 단순히 변화하는 것이 아니라 탈바꿈 중"이라고 말했다.

챗GPT가 웬만한 인간의 인식 수준 이상의 문제들에 대한 답을 내놓게 되었으니 디지털 생태계의 현실에

몸담게 되었다. 지금까지 내가 경험한 세상과 달라졌고, 삶의 가치나 의미에 대한 성찰도 젊은 세대에게

별 공감을 얻지 못하는 것 같다. 파노프스키가 말한 '심적 습성(mental habit)'을 재해석해서 세상을

대하는 지적 태도의 변화를 꾀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 반드시 직접 찾아서 원문을 읽어보거나 사실 여부를 확인하는 작업이 습관화되어야 한다. 누가 그런다고 해서 별생각 없이 그대로 이야기를 옮겨서도 안된다. 우리가 가져야 할 심적 습관과 정신적 자세는 우선 쉽게 단정 짓지 않는 것이어야 한다. 주변의 이해관계나 분위기에 휩쓸리지 않고 판단을 신중히 해나가는 것이 필요하다.

특히 어떤 프레임에 갇힌 사고나 집단적 사고는 경계해야 한다. 또한 대충 안다고 생각하는 버릇을 버리고

재확인하거나 충분히 습득해야겠다. 다음 세대에게 올바로 전달하려는 책임감을 지니는 것도 우리의 중요한 몫이다. 단순하고 순수한 직관에만 의존하는 것은 위험하다.

작가의 이전글 살아있는 짓거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