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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규원 May 20. 2023

소설의 세계

<출신> 샤샤 스타니시치 / 은행나무

소설이 재미없어지기 시작한 지 좀 됐다. 결혼하고 아이들 키우면서 부딪치는 현실적인 문제와 갈등, 삶의

방향에 대한 고민이 많아졌기 때문일 것이다. 위대한 작가의 고전이 아니고서야 소설의 세계란 진지한 생각에

도움을 주지도 않고 현실과 동떨어진 허구의 세계일 뿐이었다. 인간이 뭔지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알려주는 게 아주 부분적이어서 몰입할 수 없었다. 이 책은 거실 책장에 꽂힌 지 오래인데 어느 날 내 눈에

들어왔다. 남편이 무슨 이유로 구입했을 텐데 아직 손도 대지 않았고 읽을거리를 찾던 중에 펼쳐보게 되었다.

제목이 뭘 이야기하려는지 감을 잡기 어려웠다. 이제 지구상에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나라인 유고슬라비아의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출신 작가라는 점이 관심을 끌었다. 나도 젊어서부터 광주출신이라는 짐에서 자유롭지 않지만

집단적 사고는 벗어나 있기에 관심이 갔다.

표지를 보니 상상과 그가 실제로 겪은 일에 맞닿아 있는

독특한 세계가 그려질 것 같았다.


1978년에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의 작은 도시 비셰그라드에서 샤샤는 태어났다. 산 위에 쌓인 눈이 녹아내리고 드리나강 물이 머리 위까지 차올라 위태로워 보이는 3월이었다. 대학에서 공부 중인 어머니와 직장에 다닌 아버지 사정상 할머니(크리스티나) 손에서 컸다. 상상력이 풍부한 공산주의자 할아버지(페로)는 용을 퇴치한 전설 속 용사 성 게오르기오스를 숭배하던 마을 출신이다. 상냥한 낚시꾼 외할아버지는 마지막까지 인생을

즐길 줄 알았고 콩점을 잘하던 외할머니도 없어서는 안 될 존재였다. 이슬람교도인 어머니와 세르비아계인

아버지는 전쟁과 인종청소를 피해 샤샤를 데리고 독일로 갔다.

도피처인 하이델베르크에서 부모님은 육체노동을 하면서 제대로 된 집이 없이 어렵게 살았지만 샤샤에게는 새 출발을 위한 장소였다. 낯설지만 위협적이지 않고 안도감을 준 아름다운 고성(古城)을 좋아했고 돈이나

민족에 상관없이 아말감으로 충치치료를 해준 하이마트 박사에게 친밀감을 느꼈다. 2009년 할머니가 아직

정정했을 때 할아버지와 조상들의 무덤이 있는 오스코루샤 공동묘지를 방문하면서 그동안 대수롭지 않게

여기던 '출신'과 스타니시치 집안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다. 산골짜기 오스코루샤 같은 특정 장소가 어떤

의미가 있는지 할머니가 기억을 잃어갈 무렵 그는 기억을 수집하기 시작한 것이다.


"'나의 반항은 일종의 적응이었다.' 독일에서 이민자로 살아가야 하는 방식에 걸었던 기대에 적응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의식적으로 그 방식을 거부한 것도 아니었다. 나의 반항은 출신의 숭배뿐 아니라 민족적 정체성에 대한 환상을 거부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소속감은 지지했다. 나를 원하고 내가 있고 싶은 곳에서

소속감을 갖고 싶었다. 그런 소속감과 함께 우리의 가장 작은 공통분모는 '충분하다'였다." (p. 295)


부모님은 정상적인 삶이 보장되지 않은 독일을 떠나야 했지만 외국인청에서 일 이상의 일을 한 작가로 인정

받아 체류할 수 있게 된 샤샤는 하이델베르크 대학에서 슬라브학을 전공한 후 독일어로 자신의 이야기를 쓰는 작가가 되었다. 샤샤는 글 쓰는 것 말고 다른 일을 할 수 없고 가족관계나 가족의 단결보다 자신을 더 돌보는 이기적인 사람일 뿐이라고 자평한다. 문학이 행복을 다짐하고 분열을 중재하고 충격 전후의 삶을 그린 이야기를 한다고 해도 잡동사니일 수 있다는 자각도 있다. 그런 인식을 작가가 드러내니까 나도 계속 읽어나갈 수 있었다.


국내외 작가 대부분의 소설은 의도적으로 어느 측면을 부각해 관심을 가져보게 할 뿐이다. 작가가 경험한   

특수하고 개별적인 이야기가 인간 전체의 보편적인 문제에 접근할 때 공감의 폭이 생긴다. 흥미를 끄는 소설의 요소들보다 세상을 대하는 전체적인 시각이 보여야 다 읽을 맛이 난다. 샤샤는 적어도 인간의 근원적인 것에 대한 물음과 답을 추구하는 태도를 지니고 있다.

‘세상에 내 것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 얼마나 될까? ’

어떤 분야에 탁월한 재능이든 자기 마음대로 안 되는 기질이든 우리는 부모나 조상의 누군가로부터 받은 부분이 있다. 대부분 사람들에게 고향이 있지만 떠나서 살게 되고 그리워한다. 자유롭게 장소를 선택할 수 있어도 머물고 싶은 곳에서 머물 수 있는 사람이 또 얼마나 될까?

우리는 사는 동안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를 때가 있기도 한다. 그런 점에서 샤샤는 전통과 현대 고향과 체류라는 경계에서 방황하지 않는다. 조상과 출신에 대해 감동을 받고 그 모든 업적과 유산을 자랑스러워하는 마음을 전해주고 싶어 한 할머니와 친척인 가브릴로 노인처럼 샤샤도 그 모든 것이 사라져 버리지 않기를 바란다.

그래서 자기가 목격한 '공동의 자산'에 대해 기억하고 소중한 가치를 지키고 싶어 한다는 걸 조용히 말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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