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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규원 May 05. 2023

살아있는 짓거리

어제 오후 가랑비를 맞으며 개를 데리고 산책했다. 밤에는 자다가 깨어서 간간히 빗소리를 들었다. 오늘은 아침에

굵어진 빗줄기가 거센 바람 소리와 함께 음악처럼 흐르고 있다. 일어나면 어항 속 구피들에게 밥을 주고 FM 라디오를 켜놓는데 오늘은 하지 않았다.

가장 듣기 좋은 소리는 빗소리가 아닐까? 새소리 바람소리 계곡에 흐르는 물소리, 파도소리 같은 자연의 소리는 인간의 마음을 즐겁게 하거나 편안하게 한다. 간혹 슬프게 들리기도 하지만 우리가 자연의 일부이기

때문에 언제든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게 된다. 그런데 피아니스트가 아파트에서 살게 되면 살내를 방음처리해야 한다. 아무리 아름다운 음악을 연주하더라도 주변에는 소음으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미성의 노랫소리도

반복되면 마찬가지니 참 아이러니다.

한편 아름다운 음악을 듣거나 빗소리에 귀 기울일 때, 은은한 꽃향기를 맡을 때 눈을 감는다. 시각의 간섭

작용이 유별나기 때문이다. 연인과 입맞춤을 하거나 맛을 음미할 때도 어느새 눈을 감는다. 시각이 청각이나

후각보다 인지기능에 미치는 영향력이 크다는 증거다. 눈을 감으면 가물가물하던 기억이 떠오르고 내면을

들여다보기 쉽게 만들어준다. 그런 점에서 좋은 그림을 그린다는 것이 중요한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살아있다는 짓거리이기도 하고.


우리의 감각 신경은 끊임없이 정보를 받아들이고 반응한다. 생각도 거의 멈추지 않고 행동을 유발한다.

그런데 어느 정도는 안간이란 생물이 살아있다는 것으로 용인하지만 과도하게 몰입하고 에너지를 쏟는 것은

어리석어 보인다. 소위 마니아라는 사람들은 전체가 아니라 지극히 작은 한 부분에 몰입한다. 인간의

근원적인 것에 대한 관심과 거리가 있다. 취향뿐 아니라 과거 시대의 감정과 의식에 갇혀서 쓸데없는 것에

시간 낭비를 하고 있다. 뭐 대단할 것도 없는 일에 기회비용을 들이면서 변하는 세상과 진실을 눈감고 외면해 버린다. 단순하게 개념화시키고 시시비비를 가리지 못하는 것이다. 이런 무비판적인 집단의식은 사회의 발전을 가로막는 장애물이다.

살아있다는 것은 어느 한 곳에 고인 물처럼 정신이 썩도록 내버려 두지 않고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도록

끊임없이 진실을 찾아나가는 것이다. 자신을 돌아보는 자세로 상대를 이해해 보려고 노력하기 위해서다.

인간이란 별 것 아니라는 자각과 한계를 의식하면서 거짓과 악행에 물들지 않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

우리는 자신의 관점을 지니고 옳은 것을 찾으며 나름대로 인생을 꽃피워야 한다. 시작과 끝이 있다는 것을

알고, 살아있다는 것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사랑하며 타인을 존중하는 것이  매일 우리의 짓거리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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