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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규원 Feb 23. 2023

모든 아름다운 것의 이름

<신의 존재에 대한 괴델의 수학적 증명> 현우식 / 경문사

우주가 왜 생겨났는지 알 수 없는데, 나라는 존재는 더 말해서 무엇하겠는가. 우리는 세상이 불완전하다는 것과 인간의 한계를 느끼면서 존재의 근원에 대해 질문한다. 그래서 신이라는 존재를 생각하게 되고

과학적 방법과 철학적으로 접근해 보지만 신을 알기 어렵다. 신의 존재는 삶의 의미와 가치를 생각할 때

뗄 수 없는 관계에 있다. 신적인 경험을 한 오래전 진술에 대해 관심을 갖고 성서를 보면 신이라는 존재를 알기 위해 인격적으로 이해하고 다가간다는 점에서 결정적인 도움을 준다.


요즘 <신의 존재에 대한 괴델의 수학적 증명> 이란 책을 보게 되었다. 괴델은 20세기 가장 위대한 수리논리학자로 평가된다. 분석철학에 영향을 주었던 프레게 이후 수학자들은 수학 내부의 부분적 문제를 넘어 수학

자체를 다루는 문제를 풀기 위해 고심해야 했다. 수학의 과제라기보다 밑바탕에 깔려 있는 과제인 메타수학이다. 괴델의 불완전성 정리와 일반연속채가설의 무모순성 정리 등의 업적은 바로 이런 메타수학의 정리라고 한다. 그의 천재성은 아인슈타인과 27년의 나이 차이에도 불구하고 각별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친구였던

점에서도 알 수 있다.

그 내용은 일반인들이 잘 모르지만 ‘불완전성 정리’는 수학 전공자들의 전유물이 아니라 진리를 탐구하는

현대 지성인들 사이에 끊임없이 주목받는 자산이 되었다. 현대 양자역학의 기초를 확립한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 원리'도 마찬가지다.  

괴델은 수학이 감각의 기준을 넘어서 실재하는 대상을 서술한다고 생각했다. 수학의 의미와 진리가 공리와

규칙에 의해 운영되는 형식체계에서는 발견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추상적인 집합도 실재하는 수학적 대상

으로 물리적 물체들의 존재를 믿는 것만큼의 충분한 이유가 있다는 것이다. 그는 우리가 생각에 의해서 질적으로 새로운 요소들을 창조할 수는 없고 단지 주어진 것들을 결합하고 재생산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 개념의 의미가 인간이 만든 무엇이라고 주장되거나 단지 의미론적 규약이라고 주장되는 것은 잘못입니다.

진리는 이러한 개념들이 형성되는 개념 자체의 객관적 실체라고 나는 믿습니다. 객관적 실체를 만들거나 변경

할 수 없으며, 단지 지각(perceive)하고 기술할 수 있습니다."


괴델에게 진리는 개념의 의미가 객관적 실재(신?)와 일치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진리는 발명의 대상이 아니라 발견의 대상이다. 그의 수학적 직관은 존재론을 함의한 것이었고 인간의 감각을 넘어선 수학적 대상들이 실재한다는 것이다. 그는 모순이 없는 형식 시스템이 불완전함이 있음을 증명하였고 컴퓨터과학과 천체물리학 등의 발전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신의 존재를 논리적으로 증명하려는 시도는 11세기 안셀무스로부터 시작되었다. 그는 신은 '그것보다 더 큰 것이 인지될 수 없는 어떤 것'이다라고 하면서 신의 존재론적 증명을 시도했다. 데카르트나 라이프니츠에 의해 발전된 것을 수학자 괴델도 다섯 공리를 통해 수학적으로 증명하려고 했다. 이들이 신을 ‘가장 완전한 존재’로 정의한 반면 괴델은 완전성을 구성하는 하나의 요소인 ‘긍정성’을 사용하여 증명했다. 이 점에서

라이프니츠보다 견고한 논리적 도구를 사용했는데 결국 완전성의 논리곱을 의미하는 효과였다. 괴델이 정의한 신은 ‘모든 긍정성’을 가진 존재다. 어떤 대상이 존재해서 긍정성을 본질로 가지고 있다면, 그리고 신의

정의를 만족하는 대상이 존재가 가능하다면 결국 그 대상은 필연적으로 존재함이 증명된다. 이 증명을 위해

그가 사용한 도구는 논리식으로 표현한 다섯 개의 공리(axioms)와 세 개의 정의(definitions)와 두 개의

정리(theorems)였다.

괴델은 칸트를 의식하면서 칸트가 비판했던 신에 관한 존재론적 증명을 시도했다. 칸트가 세 가지 ‘선험론적 개념’을 설정할 때 ‘신’도 포함된다고 하면서 ‘무한’과 관계된 이율배반으로 유도되므로 존재론적 증명이 불가능하다고 주장했다(<순수이성비판> 제3장 4절).  그러나 괴델의 수학적 증명에 새롭게 도입된 ‘긍정성’ 개념에는 도덕적 의미와 미학적 의미를 포함한다. 괴델은 ‘바름’과 ‘아름다움’의 전제 위에서‘진리성‘을 탐구했다.

그는 30년 이상을 연구했던 이 증명에 대하여 흡족했다고 한다.


          '실재로서의 신은 존재한다.

                       그리고

           신에 대한 우리의 인식은 불완전하다.'


그렇다면 인간이 찾는 '아름다움'은 과연 존재할까? 소크라테스는 여제사장 디모티마를

따라 '보편적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사람에 대해 한 아름다운 사람에서 시작해야 하고,

그다음에 하나에서 둘로 가고, 그다음에 모든 아름다운 사람에게 가는 식으로,

"천국으로 가는 사다리를 하나하나씩 올라야 한다."라고 설명한다. 플라톤의 <향연>에서

신의 존재 문제와 비슷한 생각이 나온다.

그런데 오랜 시간 동안 경험과 기억, 지식을 쌓고 넓히면 아름다움을 알게 될까?

그래서 마침내는 인간이 아름다움 자체, 아름다움이 무엇인가에 도달할 수 있을까?


인간의 '공통감'에 대한 칸트의 철학을 말하지 않아도 아름다움이 있다고 할 때,

부정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아름다움은 추상적인 것이기 때문에 규정하기

어렵다. 거기에 '모든'이란 부사를 붙였으니···.  바로 이 모든 아름다운 것의 이름을

'신'이라고 하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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