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치기 작가

거리두기

by 명규원

더위와 싸우느라 보냈던 시간이 언제였던가 싶게 가을에 성큼 다가섰다. 서늘한 기운이 스며든 바람과 햇빛의 고운 가루들을 느끼다 보니 팔월 하순에 접어들었다. 오늘도 별 일 없이 지나가겠지만 내 머릿속은 복잡하다.

박완서의 산문 <시골뜨기 서울뜨기>에 "나는 제대로 된 시골뜨기도 못되고 딱 바라진 서울뜨기도 못되고 얼치기쯤 되는가 보다."라는 표현이 와닿는다. 나야말로 이것도 저것도 아닌 중간치기로 살아온 것이 아닐까?

그림을 그리고 개인전을 가끔 열지만 일상의 소박한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데서 더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글을 쓰고 있지만 콘텐츠를 빼면 글재주는 부족하다. 어느 한쪽으로 전념하고 진력을 다해도 부족한데 적당히 걸치고 있다. 자기만족을 위한 행위에서 벗어나기 위해 나름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는 이유를 찾고 의미를

부여해 보기도 한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제대로 잘하는 게 없다.

전시회를 하면 누군가 나를 '작가님'이라고 불러줄 때가 있는데, 듣고 싶은 말이라 약간 기분이 좋다가도 나를

돌아보는 시간이 되면 가라앉는다. 아직도 갈 길이 먼 얼치가 작가가 아닌가! 자신을 객관화하기 어려운 일이지만

책을 읽거나 사람들과 관계하면서 나를 알아가는 계기가 만들어진다. 글을 쓰는 것은 내가 지닌 어떤 감정과

생각에 대해 거리를 두고 바라볼 시간을 갖는 일이다.

나와 상대를 더 이해해 보려는 노력이기도 하다. 이해는 예측을 가능하게 하고 조심성과 배려를

지니게 해 준다


나 스스로는 침착한 성격이라고 생각하지만 그이의 눈엔 '엄벙덤벙'에 가깝다. 말보다 행동이 급하게 나오기 일쑤니까. 크게 욕심부리지 않고 산다고 생각했는데 때론 급박한 상황에서도 잘하고 싶은 마음이 앞서서 실수하게 되는 거다. 그냥 대수롭지 않게 넘기지 못하는 꼼꼼한 성격을 가진 사람과 사니까 일을 완벽하게 못하고 대충 한다는 지적을 받았다. 그런 지적질이 참 싫었지만 살면서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었고 조금씩 신경을 더 쓰다 보니 나아져 가는 중이다. 나를 변화시키는 것은 어려운 일이고 나와 거리 두기도 힘들지만 함께 살아가는 가족이 있기에 그나마 가능해졌다. 그동안 아이들을 남보다 많이 낳아서 키우느라 그렇다는 핑곗거리도 있었는데, 이젠 더 이상 숨을 데가 없다. 세 딸은 물론 늦둥이 아들도 다 컸으니 진짜 나를 보여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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