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의 메아리

<엄마의 말뚝>, 박 완서

by 명규원

아련한 과거의 풍경 속으로 걸어 들어가면서 가슴 한구석이 저릿했다. 낯설지만 정겹기도 해서 복잡한 감정을 느꼈다. 우리 역사 속에서 누군가의

유년기와 가족사를 들여다보는 일은 내 삶과 결부되기 일쑤여서 그렇다. 부모의 세대가 겪고 조모에게 들었던 사라지고 돌아오지 않는 세월과 인생이 책을 읽는 동안 겹쳐서 펼쳐졌다. 역사의 흐름에서 남겨진 고통과 회한, 그리움은 나이가 들수록 사무치게 되는 모양이다. 우리는 이 ‘뒤돌아선 미래’를 늘 마주하며 살아간다.

모든 식물은 뿌리를 내릴 곳, 근거가 있어야 뻗어 나아갈 수 있다. 가족을 위해 헌신한 엄마의 삶을 지켜준 말뚝'은 '근거'와 같다고 생각한다. 서울 변두리에서 삯바느질로 생계를 잇고 자식들을 공부시킨 이 땅의 자랑스러운 어머니 모습이 그려진다. 부족함을 모르던 개성 박적골에서 서울로 오긴 했으나 4대문 안 중심에 소속되지 못한 채 ‘나’는 겉돈다. 명석하고 떳떳한 인품의 오빠에 비해 철없이 굴었던 ‘나’의 세세한 기억과 이야기 속 '괴불 마당집'은 엄마의 삶에 말뚝이 되었다. 가난을 이기며 가장 힘든 시기를 살았던 기억은 오히려 엄마를 지켜주는 힘이었다.


프로이트의 '주둔군 이론'은 군인이 전투에서 밀리면 가장 어려운 전투를 치렀던 고지로 후퇴하는 것처럼 인생의 어려운 고비를 넘길 때 심리적 주둔군을 남기고, 어려울 때 그 시절을 떠올리며 위로를 받는다는 것이다. 전쟁 중 점령한 고지에 얼마씩 주둔군을 배치하는데 전력을 잃고 후퇴해야 할 상황에는 가장 치열한 전투를 했던 고지를 찾게 된다. 그곳에 주둔군을 가장 많이 남겨두기 때문에 안전하게 휴식을 취하고 병력을 빨리 보강하여 다시 전투에 나설 수 있다.


나 역시 유난히 힘들었던 그 지점에 심리적 주둔군이 있었다. 나도 모르게 마음속에 자리한 병력이 있어 나를 일으키고 지탱해 주었으니까. 멋모르고 시작한 시집살이와 결혼생활을 견디면서 어둡게 보냈던 80년대, 청춘의 시기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당시 살아남은 자라는 '부채의식'으로 나 자신을 시대적 당위 앞에 몰아세우다 못해 심신이 피폐해지고 말았다. 삶에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관념에 치우쳤던 상태에 비하면 소중한 아이들과 책임질 가정생활이 있으니 훨씬 나았다. 가난하고 학벌이 부족하다며 부모가 반대한 결혼을 한 친구도 비슷했다. 불편하던 신혼 단칸방과 이사해서 떠난 동네를 가끔 찾아간다고 이야기했을 때 언뜻 이해하지 못했다. 나중에야 사람들은 행복했던 경험을 떠올리며 자기 회복 기능을 발휘하기보다 오히려 쓰라린 기억들을 통해 자신을 방어하려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러나 소설 속 엄마의 말뚝이 된 괴불 마당집은 인생의 막막함 속에서 어떻게든 자식들과 함께 살아보려고 했던 절박함, 열정과 노력이 남아있는 곳만이 아니었다. 엄마를 구원해 줄 경험과 기억의 이면에 오랫동안 묻어둔 참혹한 전쟁의 상처가 고스란히 남아있기도 했다. 일제시기를 거치면서 청년 지식인들이 대부분 좌익사상에 경도되었듯이 화자의 오빠도 그랬다. 6.25를 겪으며 목적을 위해 수단을 가리지 않는 행태를 보고 참을 수 없었던 오빠는 몸과 마음이 만신창이로 돌아오게 된다. 서울을 떠나 피난 갈 수 없는 처지고 전쟁의 광풍을 감당하기 힘든 상황에서 엄마는 고난의 시절을 버티게 한 근거지로 자식들과 숨어든다.

그러나 현저동 꼭대기는 안전하지 않았다. 미심쩍어하던 보위부 군관에 의해 엄마의 신과 같은 존재인 오빠는 죽음을 맞이하고 말았다.

자식 앞세우고 남부끄러우리만큼 오래 살았으면 됐다던 엄마는 대퇴골 수술을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민간요법인 '산골'을 기억해 냈다. 괴불 마당집에 살 때 엄마는 추운 겨울날 청량리 나무 장에서 조금 싸게 구입한 장작단을 이고 귀가하다 얼음판에 몇 번 굴렀는지 팔뚝이 부러졌었고 오빠의 효심으로 구한 산골의 효과를 보았다. 그런데 몹쓸 ‘뼈아픈 고통'보다 엄마의 가슴에 남은 공포와 상처가 더 컸다. 마취가 풀리자 쇠약한 몸에도 불구하고 몸부림치게 만든다. 끔찍한 일이 일어났던 과거는 그날의 저기에 있지 않고 엄마의 내면에 뽑히지 않은 말뚝이었다. 살아가기 위해 의식적으로 잊은 척했지만 세상에서 무엇으로도 보상받을 길 없는 원한이 되었던 것이다.

부처의 마음을 닮아서 늙어갈수록 아름답던 엄마는 환각 속에서 원한의 울부짖음과 독한 악담으로 무서운 얼굴이 된다. 그동안 겉으로 보기에 운명에 순종하고 한을 지그시 삭히며 이겨낸 것처럼 보인 다소곳한 여자 티가 없어지고, 피투성이인 채로 매 순간 고동쳤던 슬픔과 괴로움을 맹렬한 기세로 드러낸다. 여기서 우리는 6.25라는 민족의 비극이 한 여성과 가족을 통해 생생하게 증언되는 현장을 목격할 수 있다. 문학이 한편으로 사실에 대한 기록이라는 점을 발견하고 의미를 부여하게 되는 대목이다.


작가의 자전적 이야기에서 남편과 아들을 잃은 엄마는 죽을 수도 살 수도 없는 곤경을 겪었다. 남편은 급체인지 맹장염인지 대처의 양의에게 보일 수만

있었으면 쉽게 나을 병인데, 무당집에 의지하다 잃었다. 박적골을 천하로 삼던 시댁에서 층층시하와 봉제사의 의무, 무지를 떨치고 도시로 나오지 않을 수 없었다. 자식들의 교육을 유일한 희망처럼 붙든 엄마에게 자유롭고 독립적으로 살고자 한 신여성의 면모가 보인다. 엄마는 막다른 비참함 속에서도 주변 사람들을 바닥 상것으로 업신여기며 우월감이라는 숨구멍을 틔고 살았다. 너나없이 악착같이 살아가야 하는 세상이지만 인간의 도리나 예의, 올바른 삶에 대한 존중감을 지녔기에 가능한 터무니없는 귀골스러움이 아닐까? 비록 유교적 세계관을 벗어나지 못했을지라도 가난한 삶을 지탱해 준 자존심이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엄마의 인생을 그린 화자는 어떤 삶을 살고 있는가? 엄마가 끈질긴 집념으로 일구어낸 삶과 비교할 수 있을까? 연로한 엄마에게 대퇴골 골절로 인한 후유증(뻗정다리)은 아들의 뼈를 뿌렸던 고향땅이 보이는 바닷가와 친척집을 방문하기도 어렵게 만들었다. 엄마의 삶은 결코 집착하지 않고 행복하게 늙어간 것처럼 보였지만 내적으로 끝나지 않는 기나긴 전쟁의 여정이었을 것이다. 그런 엄마의 삶이 작가로 하여금 글을 쓰게 만들지 않았을까? 중산층 전업주부로 살면서 엄마가 딸의 행복을 바라던 그 '신여성'이라는 가슴 벅차고 뭉클한 감동을 간직한 것인지 스스로 돌아보게 만들었을 것이다.


우리의 어머니들이 살아온 삶에 비해서 초라할 수밖에 없는 내 모습도 예외는 아니다. 그 시대의 어머니들이 절실하게 희망하며 살았던 덕분에 우리가 안락함과 풍요로움을 누리게 되었다. 더 나은 미래를 바라보면서 역경을 무릅쓴 앞선 세대에게 우리는 큰 빚을 졌다. 과연 나는 후대에 부끄럽지 않은 삶을 살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가? 산다는 것은 세계 내에서 우리 자신을 발견하고, 우리가 무엇으로 존재하고자 하는가를 끊임없이 결정하는 일이다. 올바른 가치를 지켜내고 진정한 행복의 가능성을 펼칠 수 있는 세상이 되도록 내 몫을 해야 하지 않을까? 내 안에 울리는 자성의 메아리는 책을 덮은 후로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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