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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규원 Mar 14. 2023

이 싸움이...

<헬렌>-내 영혼의 자화상-


2년 전 이맘때 절제된 톤으로 고요하고 차분한 내면세계를 그린 북유럽 대표 여성 화가 헬레네

세르프백(1862~1946)을 영화에서 만났다. <헬렌>은 라켈 리에후가 쓴 전기소설이 영화로 만들어

지면서 핀란드의 뭉크로 불리는 그녀를 세상에 알려지게 했다.

4살 때 계단에서 굴러 다리를 절게 된 헬렌은 일찍 아버지가 죽고 가난한 살림을 어머니와 함께

하면서도 그림 작업을 쉬지 않았다. 미술아카데미를 다닐 때 교수로부터 학비를 지원받고 장학생으로

파리에 유학하는 등 다행히 재능이 불러들인 도움을 받기도 했다. 몇 번의 수상을 통해 그림을

인정받는 행운을 누렸던 화가였고 미술교사로 재직하기도 했지만 건강상 이유로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그녀는 1천 여 점이 넘는 작품을 남겼는데 사실주의에서 인상파의 영향을 받고 추상화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기볍을 실험하며 평생 그림 작업을 했다.   

영화에서는 젊은 아마추어 화가 에이나르가 찾아오고  함께 지낸 시간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짧지만 한 사람에 대한 온전한 애정과 헌신이라는 사랑의 경험이 화가의 심상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

헬렌을 내밀하게 파고들면서 노을 진 들판, 소담스러운 풀밭과 풀꽃 등 명화 같은 장면과 함께 그림

작업과 연결시켜 남다른 인상을 주었다.  


 '50년 동안 건강했던 날이 단 하루도 없다. 이 싸움이 너무나 피곤하게 느껴진다.'

그런데 그녀가 남긴 메모를 보니 여러 가지 생각이 든다. 신체의 장애뿐 아니라 고독과 고립된 삶을

견디며 살아가기 위한 싸움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오직 예술에 대한 애정과 열정으로 간신히 버티며 살았단 말인가!

고통에서 벗어나기 어려운 삶이 꼭 불행한 것은 아니다. 고통이 없는 삶이 행복할 수 없듯이.

담백한 색감에 단순한 붓터치로 그려진 그림들의 표현이 신선하고 좋다. 특히 그녀가 스스로를 응시한 자화상은 렘브란트와 비교해 볼 때 더 정직하고 친근하게 다가온다. 총명하게 빛나던 눈동자를 지닌 젊음이  나이가 듦에 따라 생기를 잃고 노쇠해 간다. 결국 기괴한 추상적 형태로 변하면서 죽기 얼마 전까지 그린 것이다. 40여 자화상 중에 <검은 배경의 자화상>이 가장 마음에 든다. 당시 52세로 병에서 회복 중이던 그녀의 모습은 모든 욕심을 버린 듯 예술가이자 순교자처럼 영혼의 빛을 발하고 있다.(그 자화상을 보여주고 싶은데 잘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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