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행복을 바라고 살지만 '행복이란 진정 무엇인가'라는 개념 자체가 이미 사라져 버렸다.
남의 도움과 손길이 쾌적한 환경을 만들어 주면 편하고 좋을 것이다. 그러나 안락하고 여유로운
삶의 조건이 갖추어졌다거나 감각이 만족스럽다고 해서 행복할 수 있는가? 삶의 목적과 의미가
무엇인지 모르면서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 가능할까?
뭔가 살면서 중요한 것을 놓친 상태를 합리화하는 것에 불과한 “소확행”이 유행하고 있다.
'인생'을 잘 살아야겠다는 꿈이나 계획이 없이 소소히 많은 행복을 찾아 '하루'를 사는 방식이다.
괴롭고 힘든 일상을 그나마 소소한 만족감으로 채우고 견디어 나갈 힘을 얻는다는 데 뭐라 할 수는 없다.
탐욕과 허영에 휩싸여 사는 공허한 인생보다야 겉멋을 약간 부리더라도 '소확행'이 차라리 낫다.
아무튼 안타깝고 암울하기도 한 현실이다. 능력주의에 따른 승자독식이라고 하지만 부정과 편법이 사회의 근간을 흔들고 있으니 미래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렵다. 자기 자신의 감정과 생각을 표현하고자 하는 내적 요구에 의해 움직이고, 성실하게 작업하는 예술가도 살아남을 수 있을지 의문스럽다.
그렇다면 '커다란 행복'이란?
올바른 것을 추구하고 정당한 노력과 대가를 치를 때 주어진다고 본다. 또한 고통 속에 있다. 고통 자체는
무의미하지만, 진통을 겪으며 새 생명을 얻는 출산의 기쁨이야말로 커다란 행복이 아닐 수 없다. 고통에
의미를 두는 것이 아니라 고통은 웃을 수 있게 한다는 사실을 말하고 싶다.
누가 크게 웃고 즐겁게 떠든다면 고통의 쓴맛을 아는 사람일지 모른다.
'애통하는 자가 행복하다.'
전설적인 영국의 사냥꾼 짐 코벳의 말도 귀 기울여 볼 만하다. 자신이 걸어가는 길에 있는 것들에 관심이
없는 사람은 목적지에 도달해서도 행복하지 못하다고! 주위 사람들과 공감하고 호기심과 열정 속에
살아간다면 웬만큼 행복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무엇을 하고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는 매 순간 선택과 결단의 문제다. 인생을 살아가는 데 방향이 있어야 나아갈 수 있지 않은가? 개체인 내가 전체와 연결되어 있고 '영혼'이라는 존재의 중심이
있다는 의식이 필요하다. 그래야 '커다란 행복'에 잇대어 살아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