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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규원 Oct 14. 2024

나비의 시간들

<나비> 헤르만 헤세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은 무엇이나 표현이다. 자연은 그림이자 언어며 빛깔을 지닌 상형문자다."


지난여름을 생각하면 요즘 이런 날씨가 꿈만 같다. 아침저녁으로 서늘하고 햇살은 온화하게 스며든다.

어느 때보다 가을 날씨를 만끽하며 산책하는 즐거움이 배가되고 있다. 가끔 나비가 주위에 머물다가

사라지는 순간은 헤세가 느꼈듯이 황홀과 기쁨이다. 얼마 남지 않은 생의 찬란함을 누리려는 노랑 나바들의 날갯짓이 바람에 흔들리는 꽃처럼 아름답다. 반짝임과 덧없음이 교차한다. 아름다운 것이 얼마나 빠르게 사라지는지…!

나도 나비 같은 시간들을 맞이하고 있다.  

산책할 때 풍경과 함께 추억과 사물이 내 안에 들어온다. 자연의 선물에 꼼짝없이 매혹당하고 만다.

아름다움을 느끼게 하는 대상은 순간적으로 충만한 행복감을 준다. 그런데 그리운 사람을 떠올리는 것과

마찬가지로 모두 가슴을 아프게 한다.

어떤 것이라 할지라도 지난 시절에 대한 생각은 삶을 풍요롭게 하고 근원적인 빛이 된다. 나를 지탱해

주고 돌봐주는 소중한 자산이 아닐 수 없다. 한때 그리도 빛나던 광채는 사라졌지만 여전히 희미하게

빛나고 있다.

헤르만 헤세가 신경쇠약 때문에 정원사 일을 하고 수채화를 그리면서 정서적 안정을 되찾았다는 걸

알았지만 나비를 좋아하고 수집하는 취미가 있었단 사실을 몰랐다. 지구의 힘 있고 무거운 것, 거친 것들에

대해 나비의 존재가 갖는 의미는 크다. 헤세에게 나비가 없다면, 민들레의 화관이 없다면 견딜 수 없었을

것이다. 단 한 미리의 나비는 지구의 무게를 지양하고 무로 변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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