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소설의 위대한 전통>, 프랭크 레이먼드 리비스
시인 T.S. 엘리엇 말고 조지 엘리엇이라는 소설가가 있단 걸 알았지만 본명이 메리 앤 에번스라는
여자 작가인 줄 몰랐다. 조지 엘리엇의 대표작 <미들 마치>에서 인간의 약점과 평범성을 다루지만
경멸의 대상으로 보지 않고 일상의 아주 사소한 배려의 행위가 지닌 중요성을 다룬다. 바로 악에 맞서는
신성한 싸움의 일부일 뿐 아니라 세상을 보호하고 더 나은 곳으로 만드는 데 일조한다는 것이다.
마리나 반 주일렌은 <평범하여 찬란한 삶을 향한 찬사>를 통해서 이 점에 주목한다. 이런 훌륭한
여성 작가를 알게 되어 직접 작품을 읽고 싶었는데 아직 번역된 책이 없었다.
보통 성공적인 삶의 모습과 달리 이야기의 저변에 삶을 건강하게 해주는 작은 열망에 대한 예찬이 흐르고 있다는
것은 모든 인간과 삶에 대한 긍정적 시각이다..
주인공은 아니지만 허황된 야망보다 자신의 잠재력과 자신만의 본성을 따르는 주변 인물이 주제를
대변한다. 소소한 열망과 야망을 가진 사람들 중 프레드만이 ‘가치 있는 한 가지를 열망’ 하기 때문이다.
엘리엇은 야망이란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니라 뭔가 밖으로 드러나지 않는 것, 즉 자기 자신에게
가장 충실하려는 노력이라고 역설했다. 자신의 한계를 인식하고 너무 높거니 멀리 있는 목표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단순한 일상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삶의 자세인 것이다. 결국 고귀한 목표에 이르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이 목표의 성취보다 더 큰 의미를 가진다.
’ 우리의 노력이 우리를 만든다.'
20 세기 영국의 대표적 비평가 리비스는 서구 문명에 대한 비판적 대응에서 문학적 사유와 문학 전통이
갖는 중요성을 성찰하고 규명하는 데 평생을 바쳤다. 제인 오스틴에서 시작되어 조지 엘리엇, 헨리 제임스,
조지프 콘래드를 거쳐 DH Lawrence로 이어지는 작가들에서 중요하게 발견해 내는 면모가 있다. 바로
삶에 대한 개방적이고 진지한 탐구와 도덕적 열정이 기법적 실험 정신과 하나가 된다는 점이다.
리비스는 인생과 사회, 역사에 대한 깊은 통찰과 만나며 삶과 예술의 통일적 관계를 작품으로 성취해 낸다는
점을 위대한 전통으로 꼽는다. 이러한 소설의 역할과 중요성이 지금도 계승될 구 있을지 의문이 들긴 하지만···
<영국 소설의 위대한 전통>에서 조지 엘리엇의 소설을 인용한 부분을 읽을 수 있었다. 소설을 직접 접할 수
없지만 리비스를 통해 탁월하고 고결한 정신의 소유자인 조지 엘리엇을 조금이나마 더 알게 되었다. 특히
그녀의 작품들을 읽고 영향을 받은 헨리 제임스는 지적 탁월성을 지닌 엘리엇의 소설을 높이 평가했다고 한다.
그래서 자신의 단편소설 <대니얼 디론다: 한 회화>에서 이렇게 말한다.
"… 엘리엇의 글을 읽을 때 저는 항상 작가의 지성을 즐깁니다. 그 지성에는 멋진 풍경처럼 여유 있는
공간과 신선한 공기가 들어 있거든요.”
“… 엘리엇의 자연스러운 역할은 인생을 관찰하고 느끼는 데, 놀랍도록 깊이 느끼는 데 있거든요. 성찰과
공감, 믿음 이런 것이 엘리엇의 천품이었다고 해야겠지요. 만일 오래된 신조들의 열렬히 찬동하는 시대에 태어났더라면, 지금보다 더 완벽하고 더 일관되며 순조로운 발전을 이룩하는 일도 가능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한마디로 헨리 제임스는 작중 인물과의 대화를 통해 ”너무나 깊고 너무나 진실하고 너무나 완전하며,
심리적 세목에서도 너무나 풍부하니, 가히 대가의 솜씨 이상이지요. “라고 탄복한다. 그는 모든 악의 뿌리에는 욕망이 있으며,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라는 문제는 욕망을 어떻게 표현하고 통제하는지에 달려 있다고 보았다. 이제 더 이상 신을 의식하고 살지 않는 시대에 욕망을 다루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해졌기 때문일 것이다.
이렇게 밝은 지성의 기록으로 다가오는 조지 엘리엇의 소설은 전통적인 도덕적 감수성을 드러낸다. 인간과 세상에 대한 이해를 갖게 하던 소설에서 과거처럼 확실하고 적극적인 기준을 세울 수 있을까? 문학이 제
역할을 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인지하면서 한강의 노벨상 수상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우리는 누구인가?'
라는 공동체적 사회적 의식이 희박해진 세상에서 소설을 통해 독자들에게 명료하고 사심 없는 시선으로
그려낸 인간 군상의 일원이라는 느낌을 주는 작가를 찾아보기 어려워진 것은 분명하다. 지금 시대에 개인은
더욱 원자화되고 사소한 취향들로 삶의 의미가 대체되는 것이 아닐까 염려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