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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희미하더라도 끈질기게

<레이먼드 카버의 말>

by 명규원


레이먼드 카버가 글을 쓰고 싶다고 생각하게 된 계기는 뭘까? 이 책은 카버를 만나서

인터뷰한 내용을 정리해 놓았기 때문에 작가로서 그가 성취해 낸 작품세계와 삶을 제대로

알 수 있게 해 준다.

그의 아버지는 당신의 어릴 때와 아버지, 할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해주었고

자신이 경험한 일화도 들려줬다. 카버는 어릴 적 아버지와 같이 시간을 보내면서 그런

이야기를 듣는 걸 좋아했다.

워싱턴주 동부의 작은 시골마을에서 아버지는 제재소 일을 했고 이사를 다녀도 늘 침실

두 개짜리 작은 집에서 살았다. 가끔 아버지가 읽던 책을 읽어 주기도 했는데 사적인 영역을

전혀 존중하지 않는 분위기에서 아버지가 책을 읽는 건 지극히 개인적인 면이 있다는 걸

깨닫게 했다. 그는 아버지의 그런 면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됐고 읽는다는 행위 자체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지게 됐다.

카버는 일찍 결혼했는데 처가나 친척들도 모두 가난해서 두 아이를 키우기 위해 닥치는 대로

무슨 일이든 해야 할 어려운 형편이었다. 그래도 무언가를 쓰려고 애를 쓰면서 짧은 시간 안에

쓰고 마무리까지 지울 수 있는 형식을 취할 수밖에 없었다. 그가 시와 단편 소설을 쓰게 된 이유다.


세상엔 삶을 이어 나가기 위해 필요한 크고 작은 것들을 아무리 원하고, 그걸 이루기 위해

애를 써도 성공을 거두지 못하는 인생들이 있다. 카버는 자신들이 하는 행동이 어떤 식으로든

결실을 맺기를 바라지만 그렇게 되지 않으리라는 걸 아는 지점에 도달에 있는 인물들을 이야기한다.

예전에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일, 그걸 위해서는 목숨을 걸 수도 있다고 생각했던 일들이 좌절되고

서푼의 값어치도 없어진다. 꿈이 사라지고 욕망이 부서진 인생이다. 상황을 바로잡아 보고 싶어

하지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할 수 있는 만큼 해 본 뒤에 그럴 능력이 없다는 걸 깨닫는 사람들이

주인공이다.

자신도 경험했듯이 그는 성공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인생에 대해 써야 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글을 쓰고 싶지만 그럴 수 있는 시간과 장소가 주어지지 않을 거라는 불안감을 늘 안고 살아야 했던

카버는 알코올의존증 환자가 되었다. 삶이 자신의 꿈꾸던 것과 다를 거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 뒤부터

혼자 술독에 빠진 것이다.

그러나 가까스로 술을 끊고 재활과 작가로 성공한 그는 신앙이 있다고 할 수 없지만 기적과 부활의

가능성을 믿어야만 하는 입장이 되었다. 자신만의 길을 찾으려고 더듬거리고 있었을 때 파트타임

학생으로 등록한 치코대학에서 존 가드너를 만나고 그의 연구실을 집필 공간으로 언제든 사용할 수

있게 된 것은 행운이었다. 당시 아직 출판한 게 없던 소설가 가드너는 카버의 작가 인생에서 중요한

영향을 끼친 존재였다.

소설의 온전함과 정직성에 대해, 모든 것을 쉼표에 이르기까지 정확하게 정리해야 하는 것에 대해 그리고

그렇게 하는 일의 고통과 어려움에 대해, “작가가 지녀야 할 가치들과 기능”에 대해 가르쳐 주었다.

"가드너는 어떤 걸 쓸 때 스무 단어나 서른 단어로 쓰는 대신 열다섯 단어로 말할 수 있다면 열다섯

단어로 말하라고 했는데, 저는 그걸 즉시 받아들였어요. 그 말은 계시처럼 저를 덮쳤습니다."

작가로서 명성을 얻은 후 일을 하지 않고 집필만 하는 조건으로 기금을 받게 된 것은 더 좋은 글을 쓰고

싶도록 하는 원동력과 자신감을 북돋아 주는 계기가 되었다.


그는 예술을 오락의 한 형태로 본다. 정신을 풍요롭게 해주는 요소가 있고 심오한 경험일 수 있다.

그러나 예술이라는 게 그럴만한 시간이 있을 때 그렇게 할 만한 여유가 있을 때 추구할 수 있는 거라는

사실을 경험을 통해 이해하게 되었다. 아이들이 어리고 돈은 한 푼도 없던 시절, 아내와 함께 있는 힘을

다해 일했지만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던 시절, 시나 소설을 쓰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들이 있다는 걸

받아들여야 했다. 살기 위해 선택을 해야 할 경우 글쓰기를 미룰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식탁에 우유와

음식을 올려놓아야 하고 집세를 내야만 할 때 예술은 사치이고 생활을 변화시킬 수 없다는데 나 역시

공감한다.

그러나 문학과 예술이 우리 삶에 얼마나 중요한 역할을 하는지 그가 작가로 살게 된 사실이 증거 해 준다.

작품을 통해 현실을 직시하고 자신을 돌아보며 맞설 용기를 회복하거나 상처를 치유받기 때문이다.

소설을 통해 무언가를 바꾸는 것 정치적인 입장이나 시스템 자체를 바꾸는 것, 아니면 생존이 위협받는

어떤 생명체를 자연에서 구하는 것 같은 일은 가능하지 않다. 그는 개인적으로 소설이 이런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소설은 작가가 쓰는 동안 치열한 즐거움을 느낄 수 있게 해 주고

그 자체로 아름다우면서 세상을 견디고 오래 살아남을 수 있도록 만들어진 것이다. 소설은 그것을

읽는 데서 오는 또 다른 종류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도록 그저 그 자리에 있으면 된다.

아무리 희미하더라도 끈질기게 지속적으로 빛을 발하는 불꽃을 던져 주는 어떤 것으로서!

카버는 작가가 되고 싶은 젊은이들에게 자신이 중요하고 의미 있다고 생각하는 것을 진지하게 쓰라고

말한다. 그러면 언젠가는 관심을 끌게 되고 세상에서 빛을 보게 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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