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토요일 늦잠에 빠져 있던 큰딸이 일어나길 기다리다 점심을 차렸다.
냉동 베리와 요거트를 후식으로 먹으며 오전엔 시원한 바람이 불어와서
휴양지가 따로 없다는 이야기를 하다가 임플란트 한 치아가 안 좋다고 했더니
큰딸이 KTX 업그레이드 표가 두 장 있으니 바람도 쐴 겸 다녀오기를 권했다.
N수생 아들의 도시락 두 개를 싸는 일이 막중해서 집을 떠날 생각도 못한 참이었는데
다 알아서 할 테니 걱정 말라고 하며 자기 일처럼 기뻐해 주었다.
그렇게 뜻밖의 시간이 허락되어 서울과 광주를 다녀오는 휴가를 갖게 되었다.
서둘러 빨래를 해놓고 간단히 짐을 챙겨서 청룡 특실에 타고 호텔 방에
앉아 있는 기분으로 서울에 도착했다. 둘째 딸이 마중 나와 주었고 밤늦게까지
와인 잔을 기울이며 이야기를 나눴다. 다음날 나를 위해 준비한 애그타르트와
단호박치즈 깜빠뉴를 드립 커피와 같이 먹었다. 몸과 마음의 쉼이 가능한 공간에서
둘째 딸의 환대를 받으니 좋았다.
서울에서 볼만한 전시를 찾다가 덕수궁 미술관에서 한국근대 초현실주의 회화 전을
보고 인사동 ‘갤러리 밈’으로 가기로 했다. 전통적인 장지기법에 현대적인 감각을
살린 김 선두 전시회는 셋째 딸도 합류해서 보았다.
점심을 먹고 커피 마실 곳을 찾았는데 서울은 어디나 붐비고 웨이팅을 걸어야 했다.
인사동과 안국동을 벗어나 공간 사옥 반대편 길로 조금 더 가니 평범한 건물 7층에
자리 한 카페가 있었다. 셋째 딸이 뷰가 좋다고 하더니 역시나 만석이라 겨우 귀퉁이에
앉을 수 있었다. 복도 양쪽 룸 한쪽은 창덕궁이 보이고 한쪽은 남산타워가 보였다.
탁 트인 창밖 풍경은 하늘과 산, 전통적인 건축물과 현대적인 건물이 숲의 공간과
어우러져 있어서 보는 것만으로도 휴식이 되었다. 카페가‘비움공간‘이던가, 종아컵에 ’텅‘의
‘ㅌ’이 감각적으로 디자인되었고 커피 맛도 괜찮았다.
월요일 아침 딸이 출근한 뒤 서둘렀는데 겨우 용산역에 도착해서 다시 ktx 특실을 탔다.
광주에 계신 친정어머니를 뵙고 친구 치과에 가서 치료를 받으려는 게 주목적이긴 했다.
이틀 사이 여름의 시작부터 폭염 주의보가 내리고 연일 34° 안팎으로 광주가 뜨거웠다.
친구들과 만나서 점심을 먹고 아시아 문화전당 가까이 어머니댁으로 갔다. 한동안 건강이
좋지 않던 어머니는 많이 호전되어서 편안한 모습으로 맞아 주었다. 요양보호사가 매일
방문해서 가사를 하고 정서적으로 돌보아 주니 어머니가 안정감 있고 쾌적한 환경 속에
지내게 되었다. 몇 가지 지병에 동맥류가 있어서 심근경색으로 쓰러지기도 했는데 정부
지원을 받게 되었으니 정말 다행이다.
어머니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잘 몰랐던 어려운 문제들을 해결해 나간 일에 대해 알게
되었다. 몸이 몇 개라도 다 감당하기 힘든 상황에서 다섯 자식들을 챙기지 못했고 원성을 듣게
되었던 이야기를 반복하는 것은 엄마 노릇에 대한 아쉬움이 아직도 가슴에 남아 있기
때문이다. 나도 애를 셋 낳도록 바로 어머니 얼굴 보기가 힘들었지만 해마다 광주의 5월은
어머니가 벗어날 틈을 주지 않았으니 이해할 수밖에 없었다. 어머니가 살아온 이야기는
아직도 새로운 부분이 있고 되돌아볼수록 놀랍다.
“죽기 살기로 해라 “
크게 노력하도록 격려하면서 어머니가 자주 말한 대로 어머니는 간호사로 30년 넘게 직장생활을
했고 민가협과 시의원(3선) 활동을
하면서 가정을 꾸려야 했다. 자식에 대한 모든 어머니의 마음을 똑같이 가졌는데…!
우리는 세상에서 가장 가까운 사이이지만 정치적 입장차이가 상당히 크다. 어머니의 건강을
생각해서 가능한 내 생각을 발설하지 않으려고 조심하다가 가끔 곤란해질 때가 있다.
앞으로 어머니를 얼마나 더 만날 수 있을까?
이제 여생을 감사와 기쁨 속에 보내게 되었으니 고단했던 인생 살이 만큼 보상받으셨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