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사 누스바움 <시적 정의>
“훌륭한 사람은 해를 입지 않는다.”
소크라테스가 이렇게 말한 것은 덕과 사유만이 진정한 가치를 가진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철학자가 바람직하게 생각하는 현명한 이는 자신의 덕이 가리키는 확고한 항로에서 일관되고
안정된 기쁨을 취하는 자이다. 그런데 이성적인 사고와 그에 따른 올바른 행동은 과연 우리 삶에서
얼마나 이루어질 수 있을까?
찰스 디킨스는 <어려운 시절>을 통해 공리주의가 지배하는 산업사회에서 인간적인 감성과 상상력의
가치를 회복시키려 했다. 저자는 문학이 오락이나 개인의 감정적 위로를 넘어 공공적 사유를 촉진시킨
예로 계속해서 언급한다. 사회 속에서 개개인의 다양성과 특별함을 보지 못하고 효용이 지배하는
곳으로 보는 공리주의를 소설이 비판하고 있다는 것이다.
감정은 규범적 의미에서 비합리적이고, 공적인 숙고 과정의 지침이 되기에 부적절한 것인가?
감정은 대상에 대한 지각을 포함하지도 않고 믿음의 의거하지도 않는 맹목적인, 충동인가?
그러나 일반적인 생각과 달리 감정은 그 자체 내에 대상을 향한 방향성을 내포하고 있다.
분노는 단순히 피가 들끓는 충동이 아니라 누군가를 향해 있는 것이다. 사랑도 맹목적이지 않다.
사랑은 그 대상을 특별한 경이로움과 중요성이 부여된 것처럼 지각한다. 다시 말해 대상을 지각하는
이러한 방식은 감정의 특성에 있어 본질적인 것이다.
감정은 또한 대상에 대한 특정한 믿음과 긴밀한 관련이 있다. 화가 났다는 것은 내가, 나에게 소중한
사람이나 사물이 다른 사람의 고의적인 행동에 의해 모욕을 당하거나 해를 입었다는 믿음을 필요로
한다. 그런데 그런 복합적인 믿음의 중요한 부분이 성립되지 않고 나의 시각이 바뀐다면 누그러지거나
방향이 바뀔 수 있는 것이다. 공포나 연민에 대한 감정도 마찬가지로 가치나 의미와 관련이 있는 것들은
한 개인의 심리에 깊이 뿌리 받고 있기에 이를 제거하는 것은 쉽지 않다. 어떤 믿음 없이는 감정도
뿌리를 내릴 수 없는 것이 분명하다.
우리가 지닌 감정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아야 한다. 두려움이란 미래에 일어날 수 있는 커다란 나쁜 일이
있고 그것을 예방하기에는 개인이 역부족이라는 생각을 내포한다. 비애란 누군가에게 지극히 소중한
사람이나 사물을 잃어버렸다는 생각을 담고 있으며, 분노는 큰 가치를 부여하는 어떤 것이 다른 사람에
의해 심하게 손상되었다는 생각을 함축한다. 또 연민이란 타인이 스스로의 잘못에 의한 것도 아니고
그들 자신의 책임 너머에 있는 것들에 의해 명백히 고통을 받고 있다는 믿음을 내포한다
이런 다양한 감정들이 인간 삶을 결핍되고 불안전한 것으로 만들어 문제의 빌미가 될지도 모르는 어떤 것을
담고 있는가? 오히려 감정의 인지적 측면을 볼 때 주체로 하여금 특정 종류의 의미나 가치를 지각할 수 있게
한다는 점이 중요하다. 누군가에게 진정 가치 있는 것일 때 감정은 온전한 윤리적 시각을 위해 필수적인
것이 된다. 선량한 '인성'과 자연에 순응하고 인내하는 '자연주의' 교육을 주장한 루소는 이렇게 말했다.
‘... 인간을 사회적 존재로 만드는 것은 인간 존재의 약함이다. 우리의 마음에 인간애를 갖게 하는 것은
우리 모두가 공유하고 있는 고통이다. 우리가 인간이 아니라면 인간에 대한 의무를 지지 않을 것이다.
모든 애착은 부족함의 표시이다. … 우리의 약함 자체에서 우리의 더 없는 행복은 생겨난다. “
-<에밀> 4권 ‘도덕과 종교 교육’중에서-
감정이 가까운 것들에 대해 편파적인 판단을 내린다고 생각하지만 다른 사람의 처지에 대해 생생하게
감정을 이입하는 상상력 없이 진정 정의로울 수 있을까? 감정은 보다 포괄적인 시야를 위해 필수적인
부분이다. 상식이 무너지고 법과 정의가 강자의 힘에 굴복해 버린 이 시대에 법철학자, 정치철학자인
마사 누스바움의 책이 얼마나 관심을 끌 수 있을까? 민주화 운동권이 정권을 잡고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들고 있으니 전혀 기대하기 어렵다. 우리가 그래도 희망을 버리지 않고 인간을 이해하기 위해
소설을 읽듯이 저자도 시카고 대학 로스쿨 학생들과 소포클레스, 플라톤, 세네카, 찰스 디킨스의 작품을
함께 읽고 토론했다.
소설이 불러일으키는 공감, 상상력, 연민의 감정이 합리적인 공적 판단을 내리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애덤 스미스도 인간적인 요소들 중 하나인 '공감'이 도덕적 길잡이의 원천과 관점을 갖게 해 준다고
보았다. 그는 <도덕 감정론>에서 ‘분별 있는 관찰자’의 존재를 통해 판단과 대응에 있어서 공적 합리성의
패러다임을 제공하고자 한다. 감정은 배제할 것이 아니라 분별력 있게 잘 써야 하는 것이다.
“ 관찰자는… 가능한 한 자신을 상대방의 입장에 놓고 상대에게 고통을 주고 있는 모든 사소한 사정까지도
진지하게 느껴 보려고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는 자신의 친구가 처해 있는 모든 사정을 아주 사소한
일까지 모두 받아들여야 한다. 그리고 그의 공감의 기초가 되는 역지사지를 최대한 완전히 하려고 노력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