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영혼을 찾아서

문학의 새롭고 놀라운 세계

by 명규원

지난 금요일 그이가 서울로 휴가를 떠났다. 남아있는 나와 아이들도 당연히 휴가를

갖게 되었다. 가족은 같이 있는 것만으로 힘이 되기도 하지만 이런 더위에는 한 사람만

집을 비워도 숨통이 트인다. 더구나 존재감이 큰 사람이라면···.

며칠 동안 집의 공간은 더 여유롭고 공기마저 가볍게 느껴졌다. 편안한 마음으로

여행 대신 다와다 요코의 <영혼 없는 작가>라는 산문집을 읽기 시작했다.

최근 신문기사에서 '2025 세계작가와의 대화' 행사를 위해 방한한 다와다 요코가 "침묵은

매우 위험하다고 생각한다"며 "여러 가지 주제를 놓고 서로 대화하고 수다를 떨지 않는다면

모든 사람의 의견을 어떻게 수렴할 것인지 의문"이라는 작가의 말에 관심이 갔다.

비슷한 연배의 작가가 경험한 낯선 세계와 삶의 방식이 남다르고 초현실적이어서 놀라웠다.

모국어가 불러일으키는 자연발생적인 사고방식에 항거하며 독일어로 글을 쓰는 작가다.

와세다 대학 러시아어과 1학년을 다니다가 모스크바를 거쳐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타고 독일로

갔다. 생소한 언어를 접하고 언어 자체와 사물, 사람들을 관찰하는 데서 흥미를 느끼게 된다.

"모스크바, 모스크바, 모스크바로!"


젊어서 안톤 체호프의 연극 <세 자매>를 인상 깊게 본 부모가 그 대사를 자주 옮겼다. 답답한 현실과

지방 도시를 벗어나고픈 표현이었는데 부모 역시 뭔가 간절히 원하지만 불가능해 보일 때 그렇게 말했다.

“모스크바, 모스크바, 모스크바로~”하던

말이 씨가 되었다. 책 읽기를 좋아하고 많은 이야기를 들려준 어머니와 서점을 열고 싶어 한 아버지의

영향이 있었다. 그녀가 20대 초반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타고 모스크바를 거쳐 유럽을 여행한 것은

자신의 인생을 변화시키고 경계를 탐구하게 된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 그녀는 독일로 이주해서

일본어와 독일어 어느 한쪽이라도 능숙하게 구사하는 것을 의도적으로 지양하며 글을 쓴다.

모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것은 아무런 성찰 없이 자동화된 생각에 머물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작가에게 흥미로운 것들은 '사이'에 놓여 있다고 한다. 단어들 사이, 사람들 사이, 문화들 사이를

새로운 감각으로 인식하는 것이다. 인디언들의 이야기에 '영혼'은 천천히 움직인다는데 처음 유럽에 올 때

시베리아기차를 타고 가면서 작가는 영혼을 잃어버렸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러시아를 거쳐 간 길고 먼

여행의 시간에서 매우 큰 감동을 받은 모양이다. 그 후 비행기를 타고 모국인 일본과 다른 여러 나라를

오고 가는 사이 어느 즈음에 자신의 영혼이 놓여 있다고 본다. 스스로 영혼을 놓치게 된 작가는 이제

영혼을 찾아서 여행하듯이 살아가는 것 같다. 예상과 달리 <영혼 없는 작가>라는 책의 제목이나 내용이

다와다 요코를 잘 대변해 준다.


작가의 이야기는 줄거리나 사건이 있다기보다 기억과 고찰, 민담과 신화가 섞여 있다. 사물의 물성과

언어 자체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으며 여러 차원을 오가며 다채로운 이야기를 전한다.

작가의 생각이 중심에 있지만 주장하기보다 공동체 속에 있을 때와 다른 눈으로 세상을 보는 방법을

알려준다. 나도 여행하는 기분으로 그녀의 과거 경험과 현재의 시간을 따라가며 흥미를 느꼈다.


"사람들은 모국어 안에 있을 때는 비겁하고 무력하다."

인도계 미국인 작가 줌파 라이히의 <축복받은 집>을 몰입해서 읽었는데 그녀가 이탈리아어를 새로

배우고 글을 쓰기 위해 눈물겹도록 분투했다는 소식은 들었다.

어쩌면 그녀처럼 모어의 바깥으로 나가는 것이 두렵게 여겨지지만 대화가 잘 통하지 않더라도 그녀가

경험한 것처럼 새로운 친구를 만나고 삶의 가능성이 커질 수 있을지 모른다. 세상에는 다양한 모습과

문화를 지닌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는데 다른 점보다 인간으로서 공통점이 더 많을 것이다.


“글짓기의 명수는 없다. 입으로 이야기할 때 나오는 제 나라말도 글로 쓸 때는 외국어가 되는 것이다.. “

- 사르트르 <말> -


소설을 쓰기도 어려운데 다른 나라 말을 익혀서 글을 쓴다는 것은 장벽을 넘어야 헌다. 일찍이 나보코프가

그럴 수 있었던 것은 부유한 가정환경에 자라면서 영국인 가정교사로부터 영어를 배웠기 때문에 가능했다.

다와다 요코도 전체 스토리를 통해 이야기하고 싶은 게 많을 때는 일본어로, 독일어는 좀 더 추상적인 사상을

얘기할 때 철학적 산문처럼 쓴다고 했다. 이 책은 당연히 독일어로 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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