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하고 아름다운 것들을 경험해야 한다.
예술가가 되고 싶다면 우선 자신에게 익숙한 수단이나 재료, 작업 방식을 찾아내는 것이 중요하다. 그것은
예술가의 정신의 연장이 된다. 어떤 대상에 대한 관심과 관찰 그리고 주제에 대한 탐구를 하다 보면 어느 순간 표현으로 이어지게 된다. 그리고 어떤 특정한 형식에 대한 자신만의 원리를 터득하게 될 때 작품을 창조해
내기가 수월해진다. 훌륭한 창작의 관건은 많은 작품들을 창작하는 데 있다고 하지 않는가!
작업 공간과 시간을 확보해야 가능한 일일까? 그러나 물리적 조건을 갖추었더라도 재능이나 창작욕구가 받쳐주지 못한다면 소용없다. 그런데 재능이란 것도 불굴의 인내와 노력 없이 빛을 볼 수 없는 것이고 보면, 무엇보다 예술에 대한 애정과 헌신적인 자세가 요구된다. 내 경우를 볼 때 자라는 과정에서 선하고 아름다운 것들을 경험하지 못했다면 그림을 그리는 일이 불가능했을 것이다. 물질적 풍요를 누리는 세상이 되었지만 과거에 떠올릴 만한 좋은 감정이 없고 부정적인 경우에는 희망을 믿을 수 없게 된다. 인간적인 따스함을 느끼거나 선의 기억이 결핍된 탓이다. 아름다움과 선은 같이 있다. 진정으로 우리를 부요하게 만들어 주는 것이다. 예술이 우리 내면에 숨겨진 그 기억들을 되살려 내고 우리가 선한 것들에 대한 기억을 나눌 수 있다면, 현실의 어려움이 있더라도 미래가 불안하지 않고 희망의 문도 열 수 있게 할 것이다.
예술 창작에서 가장 힘든 부분은 자신의 작품이 창작되는 방식으로 생활할 수 있느냐 하는 점이다. 예술창작에 삶의 모든 의미를 부여할 때, 예술작품으로 표현될 수 있는 확실하게 유용하고 생산적인 방식의 생활이
가능하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작가 프루스트가 그 모범을 보여주었다! 단편을 썼으나 주목받지 못했고
그의 어머니 이외에 아무도 문학적 재능과 가능성을 알아보지 못한 상태였다. 예술의 가치를 발견하고 예술이
영원할 수 있다는 생각에서 한량같이 보냈던 젊은 시절과 작별한 계기는 어머니의 죽음이었다. 자신을 신처럼 떠받들던 어머니를 천국으로 보낸 후 나머지 인생을 문학작품의 완성을 위해 온통 쏟아붓기로 마음먹었다. 일상에서
아무런 즐거움도 찾지 않고 시간을 아껴가며 오직 자신의 작가적 사명을 다하는 데 충실했다. 그는 인간의 현실을
많은 사람들에게 이해시킬 수 있는 방법은 오로지 예술과 문학작품을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보았다. 놀라운 집념과 구도자적 자세로 ‘행복하기 그지없는 순간’을 찾았다.
인간을 탐구하는 섬세하고도 관대한 감정, 선의와 동정심으로 깊이 있게 그려냈다는 점에서 그의 시선은 남다르다.
예술적인 생활 태도는 단순한 창작 과정을 넘어 작품에 자신만의 고유한 사고와 미학을 심어주는 행복한 순간이 찾아오게 한다. 몸과 머릿속을 관통하는 생각과 느낌 말고는 어떤 자극도 필요하지 않고 욕망도 사라진다. 바로 예술작품의 형식과 감정을 연결해 주어 예술 창조를 가능케 해주는 과정이 유지되는 것이다. 순수함과
진실을 지니고 진지하게 계속 작업해 나갈 수 있어야 한다. 쇼팽의 마주르카가 내면의 어두운 분위기와 대조적인
경쾌한 곡조로 된 것처럼, 창작을 통해 자신감을 갖게 되면 예술가는 집중할 수 있고 열정과 진실을 작품에
스며들게 할 수 있다. 삶 속에서 창작 과정에 따르는 불안과 고통이 있을지라도 인간의 정신을 고양시키는
예술의 심원한 세계에서 스스로 얻는 확신과 기쁨을 맛보게 된다. 그보다 더 큰 보상이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