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어서야 할 존재
인간은 '넘어서야 할 존재'라고 니체가 말했다. 삶을 긍정하되 비루하거나 추한 것을 극복하고, 고귀하고
위대한 것으로 향하는 움직임을 멈추지 말라고 했다. 즐거움을 얻기 위해서는 고통을 직시하고 극복해야
한다는 것도!
우리는 위선과 자기기만에 빠지기 쉬운 오류투성이라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그래서 죽기 직전까지 노력
해야 할 사명이 있다면 바로 자기 자신을 극복하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인간이 '죄'를 의식하고 사는
것도 바로 '선한 것'을 위해 분투해야 한다는 데 의미가 있다. 스스로 만족하지 않고 나를 넘어서기 위해
필요한 것이다. 인간은 잘못을 인정하거나 반성하기보다 끊임없이 자신을 합리화하려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자긍심이 낮을수록 남이 잘못되는 것에 대한 '고소함'의 빈도와 강도는 높아진다고 한다. 자신의
위치나 신분에 위협을 가할 수 있는 '성공한 힘센 사람'이 무너지는 모습을 보면서 안도감을 느낀다면
저열한 것 아닌가? 부도덕하고 악행을 저지른 자가 응징을 받게 되어 공정성이 복원된다는 쾌감을
느끼는 것과 다른 차원이다. 우리는 각자 자존감을 회복해서 나와 같은 인간으로서 상대방을 인정하고
그 삶과 생명, 진실을 존중해야 한다. 내가 중요하다면 상대인 타자도 그렇게 생각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레비나스가 '윤리학'을 철학의 중심 과제로 삼은 이유도 마찬가지다. 그의 대표작 <전체성과 무한>(1961)은 "진정한 삶은 여기에 부재한다. 그러나 우리는 세계 안에 있다. 이런 알리바이 속에서 형이상학은
생겨나고 유지된다."로 시작한다. 그는 주체와 타자의 문제에 집중했고 '타자의 얼굴 앞에 선 주체'를
내세웠다.
과거 서양철학은 존재론, 인식론, 윤리론으로 위계를 세워서 나를 자각하고 너를 알게 된 후 네게 선한 행동을 한다고 보았다. 그러나 나치의 만행으로 자신의 가족을 잃는 아픔을 겪은 레비나스는 비참하고 고통받는 타자를 먼저 의식하게 되었다. 존재론에 기반한 철학은 '인격'을 상대화하고 인격을 가진 개체로서 '나'라는 고유한 의미를 상실한 것이다.
인간은 익명적 질서의 부분이 아니다. 타인도 인간이라는 의식이 없이 오직 나 자신만을 고려한 자유의
행사는 '악'이 될 수 있다. 약자와 타자를 돌보는 것은 '동정'이나 타인에 대한 '이해'를 전제로 하지 않는
즉각적인 반응이고 '응답'이다. 나의 자유는 '할 수 있음'에서 오는 '힘'의 행사로서의 자유가 아니다.
타자의 고통에 반응하고 책임을 지는 일이다. 책임은 어떤 특별한 사람, 몇몇 엘리트들의 전유물이 아니라
인간을 인간이게 하는 주체의 조건이다. 그렇다면 사회적 정의와 불의에 대한 대결이나 정치적 이념보다
우리 옆에 고통을 당하는 가족과 이웃의 문제를 파고들어야 하지 않을까?
우리는 세계 안에서 자신의 존재를 유지하고자 나름대로 애쓰고 있다. 그런데 나는 자신의 존재 유지에
관심을 둘 뿐이니라 자기를 실현하기 위하여 타인이 가진 존재 경향과 자유의지를 어떤 방식으로든 제한
하려고 한다. 이런 나의 자기 중심주의는 자칫 타인을 수단으로 삼고 나의 지배 아래 두고자 하는 욕망을
부추기고 갈등을 빚는다. 가장 가까운 가족끼리 상처를 주는 말이나 행동을 하기 쉬운 이유도 거기에 있다. 스스로 자제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만일 조금이라도 우월한 위치에 있거나 충분한 권력을 지닌다면,
폭력은 물론 무자비한 학살까지도 행사할 수 있게 되는 것이 인간이다.
인간이 살아가는데 엄청난 용기나 인내, 희생이 요구되는 것은 아니다. 나에게 주어진 인생이 풍요하건
가난하건 고통을 벗어나 살기 어렵다. 삶을 다정하게 사랑하고 나에게 속한 모든 가능성을 성숙시켜
보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나를 포함한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거나 악행을 저지르지 않는 한 타인을 용납
하고 존중하려는 기본 선도 지키도록 노력해야겠다. 그래야 조금이라도 나를 넘어선 존재가 될 수 있지
않을까?
#브런치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