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의 본질은 무엇인가?

<거룩함과 예술> 마르틴 하이데거

by 명규원


현대 철학자들 중에서 가장 중요하면서도 가장 논쟁적인 하이데거는 "시인의 시인"으로

휠더린을 말한다. 우리가 시를 진지하게 받아들일 것인가의 여부와 시의 힘 아래 서게 될 때

필요한 전제들과 제휴할 것인지의 여부, 그 정도

여하를 결정하도록 만드는 시의 본질이 구현되었다.

오직 휠더린의 시(詩)만이 시의 본질을 명백하게

기록하는 시인의 사명에 의해 태어난 것이다.


휠더린은 시를 쓰는 것은 "모든 일 중에서 가장 결백한 것"이라고 했다. 시가 다루는 언어는

"모든 재산 중에서 가장 위험한 것"이다. 언어는

그의 작업 속에 존재자를 명확히 나타내고,

아울러 보존해야 할 사명을 가지고 있다. 그 안에서 가장 순수한 것, 가장 깊이 감추어진 것,

그리고 아울러서 가장 복잡한 것과 인상적인 것이 표현될 수 있다.


휠더린은 '한 번도 믿어본 일이 없는 그대 속죄자여'로 시작하는 미완성 시의 초고에서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인간은 많은 것을 배웠다.

우리가 하나의 대화였던 이래

서로서로로부터 들을 수 있게 되었던 이래,

우리는 많은 하늘의 존재들을 명명(命名)해

왔다.


그에 따르면 우리(인간)는 대화이다. 인간이란 존재는 언어에 근거한다. 대화는 언어가 실현되는 방식에 불과한 것이 아니다. 대화로서 존재할 때 언어가 인간에게 본질적인 것이 된다. '대화'는 다른 사람과 무엇에 관해 이야기하는 행위를 말한다. 아울러, 이야기는 상호가 접근하는 과정을 촉발한다. 들을 수 있다는 것은 다른 사람과 더불어 이야기하는 것의 결과일 뿐 아니라, 오히려 언어의 가능성이고 말하는 것과 똑같이 근원적인 것이다. 그러므로 대화와 대화의 일치는 우리의 존재를 뒷받침한다.


인간은 자신의 존재를 선언하고 자기가 무엇인가를 확증해야 살아갈 수 있다고 하이데거는 주장한다. 그 과정에서 인간의 존재가 분명하게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이때 각각의 사물들을 대립 속에서 분리시킴과 동시에 함께 하나로 묶는 자유와 속박은 '친밀성'에 속한다.

하이데거는 시인이 아니었지만 그때까지 한 번도 파악되거나 식별된 적 없던 경험의 측면들을 새로운 상황들에 적합한 언어로써 이름 짓는 일이었다는

점에서 시인들과 같았다.

"생각들이 우리에게 온다. 우리가 그것들을 생각해 내는 것이 아니다. ··· 생각은 선물, 또는 은총이며,

불시에 우리에게 닥쳐오는 사건이다."

이 말은 시들이 자신에게 '찾아온다'라고 생각했던 릴케와 하이데거를 연결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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