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의 서> 페르난도 페소아
"사는 법은 어느 누구나 비슷하지만 그 안에 담긴 풍요로움은 같을 수 없다."라고 <남아있는 나날들>에서 가즈오 이시구로는 말했다. 인간으로서 소소한 행복과 보람, 즐거움으로 채워진 삶? 그러나 고통을 잘 모르고 산 사람은 자신에 대해서 알기 어렵고 다른 사람은 더욱 이해할 수가 없다. 단지 성공이나 물질적인 풍요만으로는 내적이고 정신적인 부요함을 맛볼 수 없다. 사물의 가시적인 것 밑에 놓인 형이상학적인 표층을 발견한다는 것이 쉬운 일일까?
목표와 의지가 넘치는 삶은 현실적으로 성취하는 것도 많을 것이다. 그러나 사회적 지위, 명성, 권력 같은 것을 평생 추구하다가 바람을 잡는 일처럼 헛되다고 나중에야 깨달을 수 있다. 뭔가를 이룬 듯 성공적인 이면에
가려진 공허한 실존의 모습, 실체성이 있는 것이다. 나는 삶에 대해 기대나 환상을 갖지 않는 편이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 지적 정직함 때문이 아니라 세상에 대한 욕구를 최소한으로 끌어내리고 살 수밖에 없는 형편이기
때문이다. 인생에 꿈을 가져야 한다고들 한다. 그런데 나는 어릴 적에 꿈꾸는 것이지 인생을 알고 나서도
꿈을 꾼다는 것이 맞지 않다는 생각을 했다. 페소아도 "원한다는 것은 이룰 수 없다는 의미다."라고 한다. 그 말이 맞다! 정말로 노력하지도 않으면서 삶의 목표를 유지하고 있다면 비루하다.
"자신이 원하는 바를 이룬 자는 그 일을 이룰 능력을 갖춘 뒤에 그것을 원하는 것이다. 먼저 원하는 자는
영원히 이룰 수 없다. 원하는 행위로 인해 자기 자신을 잃기 때문이다."라고 페소아는 일기에 적었다.
그는 어떤 형태로든 작품을 쓰려고 하지 않았다. 다만 작가라는 의식을 가지고 글을 썼을 뿐이다. 그동안
내가 타인을 지배하려 들거나 나의 바탕을 이루는 것들에 대해 뭔가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데서 벗어나
살 수 있게 된 것은 페소아의 생각대로 다행스러운 일이다. 이 세상에 대해 비교적 자유롭게 살게 된 것은
나 자신이 보잘것없고 무력하기 짝이 없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세상에서 이해관계에 얽매일
필요가 없다. 어느 편에 속하지도 않는다. 그렇지만 아무것에도 굴복하지 않고 어떤 인간, 사랑, 이념에도
항상 거리를 두고 독립을 유지하는 삶은 결코 쉽지 않다. 페소아처럼은 아니지만, 그런 삶은 생각 없이는
살 수 없는 정신적이고 내적인 삶이다. 개개인이 지향해야 할 올바른 상태인데, 고독하고 외롭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라는 말씀처럼 보이는 세계 어딘가에 속한다는 것은 진부함을 의미한다. 하나의 견해를 갖는 것도 조야하다. 존재란 자유롭게 있는 것이다. 타인으로부터는 물론이고 우리 자신으로부터도 자유로워야 한다. 오히려 보이진 않지만 삶의 궁극의 목적을 생각하고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이런 생각을 가졌던 페르난두 페소아는 정말 특별하다. 그는 삶에서 보통 사람들이 쉽게 얻는 것을 눈물로
소원하며 살았다. 뛰어난 감성과 지적 능력을 지녔지만 삶 자체에는 무능력했던 것이다. 그가 의식한 것은
사람들이 아니라 신이었다. 그는 진정한 품위를 지닌 인간으로서 자신의 부족함을 알고 늘 노력하는 사람인 귀족이 되려고 한다. 그는 자신이 결코 혼자가 아님을 한순간도 잊지 않기에 늘 진지했다. 나 자신이라는 목격자와 신에게 주시를 당하므로 항상 외양과 태도를 가다듬고 함부로 행동하지 않도록 하며, 삶을 섬세하고 고상하게 가꾸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어디서나 능숙하고 그늘 없는 거동도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 차분하면서도 허세와는 거리가 먼 소박함! 이런 생각에 나도 공감한다. 그는 고독하고 답답한 현실을 하루하루의 노동과 글쓰기로 견디어 냈다.
오랜 세월 속에 무르익고 연륜이 빚어낸 고상하고 아름다운 존재, 따르고 싶은 취향을 이어가는 사람을
만나기 어려운 세상이다. 어디서 찾을 수 있겠는가? 페소아는 그야말로 내가 따르고 싶은 취향을 가졌다. 주변 상황에 흔들리지 않도록 자신의 영혼을 다스리는데 모든 노력을 기울인 그의 신앙까지도.
그는 정말로 세상에 대해 바라는 것이 없었을까? 그의 글에 나타난 것은 아름다움이라고 느끼는 그 무엇인가를 창조해야 한다는 예술적 욕망이 전부다. 그에게 예술은 목적을 가진 모든 삶의 활동으로부터 빠져나옴을 의미한다. 세상의 평판을 의식하거나 인정을 받는 것과 거리가 있는 삶이다. 그는 예술 자체가 목적인 진정한 작가였다. 일상에서 조금밖에 표현하지 못한 과도한 감성이 그의 예술작품을 창조했다. 그는 오로지 자신에게 집중하고 자기 세계 속에 살았다. 아름다움의 본질과 가치를 구별할 줄 아는 능력으로 삶의 우아함을 추구했던 것이다. 그 아름다움은 빛날 뿐 아니라 진실이 담겨 있는 것이다.
페소아의 말대로 인생은 육체와 세상이라는 집에 머무는 것과 같다. 언젠가 떠날 때까지···. 내가 애착을
느끼는 자식들도 때가 되면 나 없이 잘 살 것이다. 이사하듯이 마음의 짐을 정리하고 내려놓을 준비를 해야
한다. 비록 먼지 같은 존재여도 살아가는 동안에 자신에게는 다른 사람에게 나눠 줄 자원이나 에너지가 없다고 생각하면 안 된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은 모두 각자가 하나의 동네, 신비의 도시를 이룬다. 내 마을의 특산품은 무엇인가? 나도 페소아처럼 순도 높은 고요와 우아함, 그리고 평온함을 그림에 담아서 한두 점이라도 남기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