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매우 깊은 의미에서 꾸미고 만드는 존재다."
인류의 조상인 사피엔스가 15만 년 전부터 동아프리카에서 살다가 다른 지역으로 급속히 퍼지면서
다른 인간 종들을 멸종시킨 것은 불과 7만 년 전이다. 그 후 3만 년 전까지 배, 기름등잔, 활과 화살,
바늘(따뜻한 옷을 짓는데 필수 도구)을 발명했다. 새로운 사고방식과 의사소통 방식으로 '인지 혁명'이
촉발되었고 예술품이나 장신구라고 불릴만한 최초의 물건들, 종교와 사회의 계층화가 일어났다.
<사피엔스, 유발 하라리 >
기원전 12,000년경 농업혁명 후 250만 년간 사냥과 채집에 의존하던 인류의 삶이 달라졌다. 정착한
마을이 도시에서 왕국으로 발전했다. 그동안 제국들의 출현과 새로운 통치에 맞춰 신들과 종교 또한
체계화할 필요가 있었다고 보았지만, 1995년 터키 동남부 지역 괴베클리 테페에서 발견된 기념비
(높이가 약 5미터) 유적지는 수렵채집인들이 세운 것으로 밝혀졌다. 기원전 2500년의 발달된 농경사회
사람들이 건설한 영국의 스톤헨지보다 훨씬 연대가 거슬러 올라간다. 실용적 목적이 전혀 보이지 않는
이 구조물들을 세운 이유는 무엇일까? 수천 명의 수렵채집인들이 막대한 노력과 시간을 들여 협력하기
위해서는 종교나 이데올로기 시스템이 아니면 유지될 수 없었을 것이다.
'괴베클리 테페가 시사하는 것은 먼저 사원이 세워지고 나중에 그 주위에 마을이 형성되었다.'
칼 야스퍼스는 조로아스터교, 유대교, 유교, 힌두교, 불교가 모두 탄생한 시기를 '축의 시대'라고 명명했다. 사실 인류는 오랫동안 서로 죽이고 약탈하는 무자비한 폭력과 전쟁을 거치게 되었다. 그러면서 영적인
각성이 일어나고 마침내 야만에서 문명이 시작된 것이다. 나와 가족, 부족이 아닌 다른 인간도 외모만
비슷한 것이 아니라 똑같이 고통과 슬픔, 기쁨과 행복을 느끼는 존재라는 의식이 생겨났을 것이다.
그런데 왜 인간이라는 생물종만이 종교에 이처럼 강하게 얽매였을까? 자연에 대한 두려움에서 벗어나기
위해 시작된 제의는 점차 '자비'와 '윤리'가 행동의 원칙이 되는 방향으로 진전되었다. 인류가 공멸할
위험을 느꼈기 때문일까? 영속적이고 초월적인 신과의 관계는 인간의 삶이 문명화될 근거를 마련해
주었다. 자기를 인식하고 남에게 공감하고 자기를 성찰할 뿐만 아니라 기억을 지닌 덕분에 인간은 미래를
내다보면서 스스로를 자신의 과거와 통합시킬 수 있었다.
오늘날 우리가 느끼는 위기는 모든 생명과 삶에 대한 경외감, 진실과 고귀한 정신을 존중하는 태도가
사라져 간다는 데 있다. 또한 사회문제들에 대한 구체적이고 객관적인 지식이 심각할 정도로 훼손되고
있다는 점이다. 공익 미디어들이 엔터테인먼트 위주의 수입 업체로 전환하면서 정보의 질과 공공성의
원칙도 무너진 지 오래다. 조용한 성찰과 분별 있는 판단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한 상황에 우리는 살고
있다. 축의 시대처럼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것을 상상할 능력을 회복해야 한다. 칼 야스퍼스의 말대로
"인간은 매우 깊은 의미에서 꾸미고 만드는 존재이다." 이런 토대 위에 상상력은 칸트가 말한 '공통감'과
통할 수 있을 것이다.
기술의 발달과 물질주의가 팽배한 현대사회에서 그 어느 때보다 한 사람 한 사람을 신성한 존재로 보아야
할 필요가 커졌다. 일찍이 사회학자 뒤르켐이 인식한 대로 개인이야말로 선과 악을 구별하는 데 반드시
기준으로 삼아야 할 시금석이다. 신을 의식한 개인의 양심과 도덕에 따르는 삶이 사회적 힘의 중심이기 때문이다. 생각한다는 것은 자기를 돌아보는 반성력을 뜻한다. 자기 자신의 부족함을 알고 잘못을 돌이키려고
노력하는 것이 바로 자신을 가꾸는 것이다. 그래서 세상을 보는 지혜와 통한다. 나를 섬세하고 고상하게
가꾸는 지혜가 없다면 역사를 올바로 이해하고 진실의 문제를 판단할 수 없을 것이다.
#브런치 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