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에서 영원까지

영원성의 역사는 현실의 실상을 무시하지 않고...

by 명규원

'영원'은 전혀 다른 무엇을 향한 갈망이 담겼다. 닿을 수 없고 사라질 수 없는 세계이기도 하다. 꿈이고

그리움이다. 시간의 흐름은 결코 이러한 영원한 실체에 영향을 줄 수 없다. 고향을 떠난 사람은 가슴

한구석에 고향을 품고 산다. 이루어지지 않은 첫사랑도 그렇다. 고향이 영원한 것처럼 진실한 사랑과

우정도 변함없이 영원하기를 바란다.

영원이란 "어떤 경험으로도 잡히지 않는 말"이라고 한 보르헤스는 비록 감지할 수 없지만 영원을 상상할

수 있었다. 그래서 모든 것이 변하고 사라져 버리는 고통을 문학을 통해 위로해준다. 우리 인생을 알 수도

없지만 내가 ‘영원'이란 말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영원성의 역사>에서 확인했다. 보르헤스는 '영원성'의

이미지는 무한한 가설로 풍요로워진 난감한 말이고 시간에 내재된 '불확정성'이라고 했다. 책 제목에 끌려

읽으면서 왜 보르헤스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는지 생각해 보았다. 사실 영원은 인간이 결코 알 수 없는

영역이다.

우리가 자연의 일부로 살아가면서 경험하는 통상적인 시간을 끝없이 늘려서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순간순간 섬광이 스치듯이 떠오르지만 신 앞에서 선 순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은 저마다 다른 시간을

갖고 있어도 그 시간들은 실제로는 하나의 거대한 시간의 일부이다. 문학이나 예술작품, 혹은 영화를 통해

다른 시간 속으로 얼마든지 들어가 볼 수 있다. 우리의 삶이 역사적이고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분리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까마득한 옛날이나 먼 미래에도 인간의 근본은 달라질 수 없기 때문이다.

성서의 시편에는 ‘영원하신 하느님'을 고백한다. 세상이 형성되기 전 영원부터 앞으로도 영원히 하느님은

있을 것이다. 인간의 한 순간처럼 지나가는 생애와 대조되는 표현이 나온다. 인류가 오랜 과정에 걸쳐 끊임

없이 묻고 재해석을 통해 찾아온 삶의 의미는 우리에게 어떻게 다가올 수 있을까? 인생을 무엇이라고 확연

하게 말하기 어려운데, 시인은 "신속하게 지나가는 삶에서 그들의 자랑은 '수고'와 '고통' 뿐"이라고 한다.

이런 아포리즘과 경구는 니체의 표현대로 '영원을 위한 형식'처럼 보인다. 하느님 없이는 인간의 노동은

고통이 되고 수고한 것도 헛될 수 있다는 의미를 강조하기 위한···.

먹기 위해 일하고 일하기 위해 먹는다면 덧없고 무의미하다. 인간이 자기 자신의 노력으로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다거나 자기 자신만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태도는 위험하다. 자신의 뜻과 자신의 즐거움만 찾는 사람은

올바른 인간관계로부터 떨어져 나가고 결국 실망으로 끝나게 되어 있다. 인간은 복잡해서 욕망은 끊임없이

변한다. 모든 즐거움이 계속되기를 바라지만 쾌락의 추구가 지속될 수 있을까? 우주의 기원과 발생으로부터

우리의 거주 공간인 땅이 더 이상 존재하지 못하게 될 때까지 신의 영원성과 비교하면 인간적인 모든 것이

무익하고 의미가 없다. 하느님의 영원성은 시인의 가슴속에 놀라움과 두려움을 일으킨다. 세상에서 중시하는 재물, 건강, 그리고 행복 같은 축복을 바라거나 고통과 불행을 겪은 데 대한 보상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자각이 깔려있다. 만일 우리가 하느님 안에서 거쳐를 갖는다면, 하느님을 즐겁고 기쁘게 경험한다면, 세상을 새롭게 볼 수 있다. 덧없는 것이 영원한 것이고 불행스러운 것이 영광스러운 것이며, 의미 없는 것이 의미가 있는 것이 된다. 복이 없는 사람이 복 있는 사람이다. 모든 것이 영원의 빛에 뒤덮여 있다.


보르헤스의 반복되는 주제는 '영원성', '시간의 무한성', '증식하는 미로'등 주요 키워드에서 나타난다.

우리가 알고 있는 현실이 확실하지도 완전하지도 않다는 사실을 문학작품으로 일깨워 준다. 그는 영원성과

무한에 대한 그리움을 간직한 사람인 것 같다. 그는 이제 '과거가 아닌 미래를 기억하고 싶다'라고 한다. 우리는 모두 순간과 영원 사이에 선 인생의 순례길을 걸어가고 있다. 보르헤스의 이야기 속에서 그 빛을 조금은 느낄 수 있다.

"절대로 양립할 수 없는 희망들이 아무런 충돌 없이 공존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영원성은 욕망의 방식이다."

"기억은 격정에 사로잡혀 초월적 시간성을 향해 기운다. 우리는 과거의 행복을 하나의 이미지로 모은다.

내가 매일 오후 바라보는 다채로운 붉은 낙조가 기억 속에는 단 하나의 낙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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